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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입뒤 해고 10년...KT노동자 조태욱 이야기

‘이동걸 뜻대로’ 간 KT노조에 두 번 해고당한,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
등록 2020-05-16 05:22 수정 2020-05-20 05:33
KT 해고노동자인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이 서울 청파동 사무실에서 ‘국가정보원 노조 파괴 공작’ 재판기록을 보고 있다. 박승화 기자

KT 해고노동자인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이 서울 청파동 사무실에서 ‘국가정보원 노조 파괴 공작’ 재판기록을 보고 있다. 박승화 기자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에 힘을 쏟았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댓글부대’를 운영한 것이 확인된 원세훈 국가정보원은 그 1순위였다.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가 2017년 6월 출범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등 13개 주제를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이 ‘원장 지시·강조 말씀’에서 전교조 와해와 민주노총 탈퇴를 지시했다는 내용이 확인됐지만, 국정원의 ‘노조와해 공작’은 적폐청산 조사대상에서 빠졌다. 

그가 국정원 재판 법정을 지킨 이유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었다. 2017년 8월22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 적폐청산 조사대상에서 노조파괴 공작을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 쪽은 “조사기간(6개월) 때문에 정식 주제로는 채택하지 못하지만, 내부감찰조사를 하겠다”고 알려왔다. 그 감찰조사 결과물이 국정원이 검찰에 보낸 노조파괴 공작 의혹 관련 감찰자료인 ‘수사참고자료’다. 이를 바탕으로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2018년 6월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검찰에 소환되고 고용노동부 등이 압수수색 당했다. 조씨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장문의 의견서를 보냈다.

결국 검찰은 국정원의 국민노총 출범에 국정원 자금을 지원한 혐의(국고손실)로 원세훈 전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간부들과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동걸 전 고용부 장관 보좌관 등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언론의 관심이 시들했다. 하지만 조씨는 텅빈 법정을 지켰고 검찰 쪽 증인으로도 나섰다. 2020년 2월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이 전 보좌관을 빼고 모두 실형이 선고됐다. 5월8일 서울 청파동 KT노동인권센터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며 조씨는 책상 위 가득 쌓여있는 재판기록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문건들 재판과정에서 다 봤어요. 전율이 느껴졌죠. 의혹만으로 남아있던, 의심만 했던 것들이 문서로 드러나니까.”

내부고발, 해고, 복직, 승진 누락…

조씨는 KT에서 두 번 해고됐다. KT의 전신 한국통신에 1989년 입사한 그는 인천 지역 전화국에서 창구업무를 담당하며 KT노조 현장조직인 ‘민주동지회’에서 활동했다. 2003년 첫 번째 해고는 내부고발 때문이었다. 당시 KT는 PCS(휴대전화)를 대량으로 가개통한 뒤 유령 유선전화에 합산 청구하면서 PCS 기본료와 단말기 할부금을 불법으로 감면하고, 이를 직원들 명의로 할당했다.조씨는 이런 매출 조작과 상품 강매 사실을 언론에 알렸고, KT는 과징금 29억원에 포탈한 세금 618억여원을 추징당했다. 2003년 8월 회사는 이를 빌미로 조씨를 해고했지만 노동위 판정으로 복직했다. 하지만 ‘직원 퇴출 프로그램’(C-Player·CP) 대상자로 찍혀, 관리자에게 노조활동 등을 감시받았다. 근속승진도 6년이나 밀려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 했고 ‘부당 승진 누락’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조씨는 2008년 12월 노조위원장 선거에 ‘민주동지회’ 후보로 출마한다. KT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었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 회사에 협조적인 집행부가 계속 당선됐으며, 선거에 회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다. 조씨는 예상을 깨고 선거 1차 투표에서 42.79% 득표해, 1위보다 6% 남짓 뒤지는 2위를 차지한다. 엿새 뒤 열린 결선투표에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김구현 후보가 68.02%를 얻어 당선된다. 조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동안 노조위원장 선거를 회사가 세게 관리해왔는데, 당시 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등 뒤숭숭했어요. 그 때문에 사 쪽이 제대로 개입하지 못하면서 원래 ‘표심’이 드러난 거죠. 그런데 2차 투표를 앞두고 회사 쪽에서 결선투표 지침이 하달된 것으로 알아요. 그렇지 않고서는 3명이 겨룬 1차 투표에서 42%를 받았는데 (2명 나오는) 결선투표에서 30.9%로 (득표율이) 줄어드는 게 설명이 안 되지요.”

이동걸 전 고용노동부 정책보좌관이 작성한 ‘KT노조 선거 관련 참고’ 문건

이동걸 전 고용노동부 정책보좌관이 작성한 ‘KT노조 선거 관련 참고’ 문건

KT 노조위원장 출신인 이동걸 전 고용부 정책보좌관이 작성한 ‘KT노조 선거 관련 참고’라는 문건(국고손실 혐의 재판기록 첨부)은 노조 선거의 회사 개입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이 문건은 조씨가 후보로 출마했던 2008년 12월 선거를 앞두고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KT 회사에서는 노조지부 단위를 책임지는 지사장·지점장의 (중략) 경영평가지표 중 비계량 목표에 노사관계 항목을 삽입. 각종 노사교섭에 따른 조합원 찬반 투표 결과, 각종 선거(대의원 및 지부장, 위원장)에서의 결과를 반영. 지사장·지점장 등은 본사의 지시에 따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조를 설득. KT노조 선거에 회사가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좌파(민주동지회) 등장을 반대했기 때문.” “민동회가 당선되지 않고, 회사 쪽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되는 이유: 본사 및 지역본부 조합원(7천여 명), 4·3급 과장까지 조합원이므로 회사 지지 후보 투표.” 결국 조씨가 소속된 민주동지회를 막기 위해 회사가 선거에 개입해왔다는 사실을 전 노조위원장인 이 전 보좌관이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 선거에서 당선된 김구현 전 위원장은 이 전 보좌관이 “회사 쪽 후보”라고 평가한 사람이다.결국 조씨가 소속된 민주동지회를 막기 위해 회사가 선거에 개입해왔다는 사실을 전 노조위원장인 이 전 보좌관이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 선거에서 당선된 김구현 전 위원장은 이 전 보좌관이 “회사 쪽 후보”라고 평가한 사람이다.

누리집 탈퇴 지지 성명도 “조정”

이 전 보좌관은 노조위원장 선거가 끝난 뒤 ‘KT 노사관계 선진화(민주노총 탈퇴) 실천 방안’을 작성한다. “대의원 선출(지부 단위)관련 회사 책임자 지정(지사장). 반드시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자를 대의원으로 추천 선출 유도. 현직 지부장·조합 간부 중 대의원대회에서 찬성 여론 유도는 물론 좌파와의 충돌에도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자로 선발.” 노조의 대의원 선출에서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선출되도록 회사 쪽 책임자를 뽑아왔다는 내용이다.

다시 조씨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조씨의 두 번째 해고는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와 관련 있었다. 그는 2009년 7월17일 민주노총 탈퇴 노조 투표를 나흘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 취임한 이석채 전 회장이 민주노총 탈퇴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그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고 경남 사천의 삼천포지사로 발령 냈다. 회사가 사택을 지급하지 않아, 지사 앞에 텐트를 친 뒤 그곳에서 잠자고 출근했다. 2010년 3월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 전보’로 판정해 원래 일했던 인천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회사는 복귀 닷새 만에 다시 징계위원회를 열어 기자회견에서 이 전 회장을 명예훼손했다는 혐의, 노숙농성 과정에서 회사 쪽 관계자와 실랑이를 벌이면서 폭행한 혐의로 조씨를 해고했다. 조씨는 해고가 부당하다고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조씨의 해고에 회사 뿐만 아니라 국정원이 연관돼있다는 사실은 그가 방청했던 국정원 국고손실 혐의 재판 법정에서 드러났다. 국정원이 ‘노조 파괴 공작’ 의혹을 감찰한 뒤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가 이 재판 법정에서 처음 나왔다. 국정원은 조씨가 출마했던 2008년 노조위원장 선거 때, “강성후보 선거 전략 및 동향을 파악해 온건후보에 제공하고, 강성후보 낙선을 위해 사 측의 노무관리 강화를 독려하는 등의 방법으로 온건후보의 당선을 지원”했다고 돼 있다. 또한 “민주노총 탈퇴를 설득하는 한편, 사 쪽에도 인사·노무 제도 개선 등 노조 요구 사항을 수용하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2009년 7월15일엔 전 노조 간부를 이용해 KT(노조) 누리집에 탈퇴 지지 성명 발표도 “조정”했다고 적혀 있다. 

 국정원이 ‘노조 파괴 공작’ 의혹을 감찰한 뒤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

 국정원이 ‘노조 파괴 공작’ 의혹을 감찰한 뒤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


‘특별명예퇴직’에 밀실 합의한 노조

국정원이 개입한 KT의 노사관계가 단순히 조씨 같은 이른바 ‘강성 조합원’에게만 악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2009년과 2014년에 각각 5992명, 8304명이 퇴직한 ‘특별명예퇴직’에 노조가 합의해줬고, 임금피크제 도입과 학자금 폐지 ‘밀실 노사 합의’도 있었다. 2018년 대법원은 이 합의로 피해 입은 조합원에게 노조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KT노조는 회사와 유착한 노무팀이 됐어요. 직원들이 기댈언덕이 없어진 거죠.”(조태욱씨)

KT 회사 쪽의 노조 선거 개입 정황 등이 재판기록에 나오지만, KT 회사 쪽은 <한겨레21>에 “회사가 노조 선거에 개입할 이유가 없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문건을 통해 회사의 선거 개입을 인정한 이 전 보좌관의 진술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감찰 결과에 대해서는 “KT가 알 수 없는 내용이고 진상조사를 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5월14일 조씨는 이번 재판기록 등을 토대로 2010년 자신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올해 59살, 정년을 한 해 앞둔 그는 복직할 수 있을까.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서울 청파동 KT노동인권센터에서 조태욱 집행위원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서울 청파동 KT노동인권센터에서 조태욱 집행위원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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