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멸종위기종이다.”
이것은 빙하가 녹아 얼음 조각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서 있는 북극곰 이야기도, 바닷속 산호초가 사라져 멸종 위기에 놓인 매부리바다거북 이야기도 아니다. 기후위기에 무관심한 기성세대에게 ‘인간’ 청소년들이 쏟아내는 ‘미래를 보장하라’는 다급한 외침이다. 또 기후변화로 인간이 맞게 될 위기는 머지않았고, 이를 계속 방치한다면 인간 또한 북극곰처럼 멸종위기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청소년들이 지구의 미래에 무관심한 정부에 책임을 묻고 나섰다. 청소년이 주도하는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기후행동)은 3월13일, “기후위기를 방관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대통령과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번 소송엔 기후행동 소속 만 13~19살 청소년 19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아시아에서 청소년이 낸 최초의 기후소송이다. 기후행동은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세계 청소년들이 연대해 만든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과 함께하고 있다. 은 3월17일 이번 소송에 원고로 참여한 김도현(17), 김유진(18), 성경운(19) 활동가와 한 화상 인터뷰에서 일상 속에서 느꼈던 기후위기와 헌법소원을 낸 이유, 이후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충격과 공포였던 2018년 폭염경운은 기후변화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들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곰이 살 곳이 없어지고, 어느 나라가 물에 잠긴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경운은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시급한 일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적어도 경운의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에서 맞닥뜨릴 일이라고 여겼다.
경운이 기후위기를 알게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경남 창원의 작은 갯벌에서 생물종을 관찰하는 봉사활동을 하던 경운은 도서관에서 바다생태 책을 보다가 ‘우연히’ 책 부록까지 읽게 됐다. 기후위기 심각성이 실린 부록을 보았을 때 느낀 “충격과 배신감”은 잊을 수 없다. “그 책이 번역본으로 2011년 한국에 출판됐다. 원서는 훨씬 전에 나왔다는 소리인데, 약 10년 동안 대체 뭐 한 건가. 당사자가 될 우리에게 이런 심각성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 경운은 지난해 여름 대입 수시모집에 쓸 자기소개서 작성도 미뤄놓은 채 기후변화와 관련된 책과 기사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알았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경운이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며 알게 된 기후변화는 전세계 공통의 위기이자 현실이다. 2016년, 폭염은 유럽과 중동, 아시아에 번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등지에선 한낮 기온이 50℃가 넘었다. 2019년 9월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지방에서 시작된 산불은 5개월 만인 2020년 2월에야 진화됐다. 이 화재로 남한 면적보다 더 넓은 땅이 잿더미가 됐다. 이탈리아의 수상도시 베네치아는 지난해 최악의 물난리를 겪었다. 북극곰이나 먼 나라 사람에게나 해당할 거라고 생각한 기후변화는 우리 일상과 가까워졌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일곱 차례의 태풍, 처음으로 세 차례나 온 가을 태풍은 기후변화가 아닌 다른 것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48명 사망자를 낸 2018년 폭염과 눈이 제대로 내리지 않은 올겨울은 기후변화의 연장선이다.
2018년 폭염은 헌법소원을 낸 청소년들에게도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충격적”(도현)이었고, “무서웠”(유진)고, 나기 “힘든 더위”(경운)였다. 선풍기로만 여름을 나던 도현의 집도 그해 여름을 겪은 뒤 에어컨을 샀다. “전례 없는 폭염 때문에 실외로 나갈 수 없었고, 학교에선 체육 수업이 취소됐다. 에어컨을 잘 틀지 않더라도, 우리 집은 에어컨을 살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더위를 피할 여력과 공간이 없는 사회적 약자는 무방비로 더위에 노출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도현에게 기후변화는 사회정의와 맞닿은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한 셈이다.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마주한 기후위기는 단순히 삶의 불편함이 아닌 실질적인 공포다. “창원에 있는 간척지는 비가 많이 오면 침수된다. (지구온난화로) 태풍이 잦아지면서 침수되는 날도 늘고, 침수 정도도 심해졌다. 자동차가 절반 정도 잠기는 날도 있다. (기후위기의) 가장 큰 두려움은 기후변화가 초래할 일상이 어떠할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경운) “기후위기로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이 무너질 거라는 두려움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산불을 보니, 당장 내가 가까운 미래에 자연재해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두려웠다.”(도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이들의 개인적 실천은 일상적이다. 도현은 하교할 때 전등과 에어컨이 켜진 교실을 돌며 전원을 끈다. 육식을 줄이고, 옷도 잘 사지 않게 됐다. 환경문제에 관심 있던 유진도 어릴 때부터 가족에게 “에어컨 틀지 마” “사용하지 않는 방의 불은 꺼” “물 아껴써” 같은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스스로 칭찬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실천”했다. 이 실천으로 가족과 친구들의 행동이 바뀌고, 그 바뀐 행동이 그들의 주변을 바꾼다면, 다 같이 아름다운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가 성인이 될 때쯤이면, 똑똑한 어른들이 지구온난화를 다 해결해줄 줄 알았는데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정책결정권자들은 기후변화 상황을 오래전부터 알았으면서도 청소년의 미래를 담보로 잡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개인적 실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더 큰 변화를 요구할 방법을 고민하던 유진은 기후행동 활동에 동참했다.
기후행동은 툰베리가 시작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지난해 3월, 5월, 9월, 11월 네 차례 했다. 현재 기후행동엔 청소년 공식 활동가 30명과 서울, 청주, 횡성, 김해, 산청, 제주 등에 느슨한 네트워크로 활동하는 90여 명이 함께하고 있다.
기후행동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선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헌법소원 청구서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기후변화의 치명적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대해 미흡한 대응을 하고 있다. 때문에 헌법에서 보장한 청소년들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문제 삼는 건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42조 1항 1호와, 시행령 제25조 1항 개정을 통해 2020년으로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폐지한 것 등이다. 소송의 원고가 된 청소년들은 “우리나라가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위 규모로 배출하는데도,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폐지했고, 바뀐 2030년 감축 목표로는 (기온 상승을 낮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화석연료 사용을 규제해달라는 기후소송은 전세계로 확산돼 170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엔 의미 있는 성과도 나왔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환경단체 위르헨다(Urgenda)가 낸 소송에서 “네덜란드 정부가 2009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25% 상당 감소된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집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콜롬비아에서도 청소년들이 “정부에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존할 것을 명령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기후행동이 이번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이유다.
한국 기후변화 대응 최하위 수준기후위기에 대한 사회·국제적 합의는 오래전 이뤄졌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정과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채택한 보고서를 통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최소 2℃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표에 합의했다. 또 “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유지하는 데 노력”한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기온 상승 폭이 2℃를 넘기면, 지구의 조절 시스템이 불안정해져 인류의 노력에도 지구 스스로 기온 상승을 가속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2019년 보고서는 2015~2019년 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전(1850~1900년)보다 1.1℃ 올랐고, 또 2100년엔 세계 평균기온이 2.9~3.4℃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제정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에서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5억4300만t으로 정했다. 2020년 배출 전망치보다 30% 줄인 수치였다. 하지만 감축에 매번 실패했다. 온실가스 초과 배출률은 2010년 2.3%, 2012년 4.5%, 2014년 4.9%, 2016년 11.5%까지 늘었다. 2017년엔 15.4% 늘어난 7억910만t을 배출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2020년 목표를 아예 폐지하고 ‘2030년 목표를 5억3600만t으로 낮추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시행령을 개정했으나 목표 배출량은 동일했다.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 배출 목표’ 5억3600만t은 유엔환경계획 2019년 보고서에서 제시한 세계 평균기온 2℃ 이하로 유지하기 위한 목표 추산치인 3억9100만t을 크게 웃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평가한 점수는 꼴찌 수준이다. 기후행동네트워크(CAN)가 낸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0’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61개국 중 58위였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59위,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노력은 61위였다.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 전반적으로 ‘매우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경운이 말했다. “(기후위기는) 모두의 문제이지만, 좀더 오래 짊어져야 할 사람은 청소년들이다. 개인도 노후를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하는데, 국가가 가까운 미래에 대해 준비하지 않는 것 같다.”
여름, 겨울만 있는 ‘2계절’학업을 병행하느라 점심시간에 발언문을 쓰고 하교 뒤 새벽까지 화상회의를 해서 버거울 때도 있다. 하지만 가장 속상한 건 청소년들이 집단행동을 한다는 싸늘한 시선이다. 청소년들이 공부 안 하고 거리에 나왔다고 비난하거나, 스펙 때문에 활동하냐는 소리를 들을 때 마음이 상한다. “우리가 외치는 문제의식에 집중하고, 청소년이라는 나이에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도현) 기후행동은 5월에도 결석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도현이 자조적으로 하는 농담이다. 한국에서 여름과 겨울이 너무 길어 ‘사계절’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서다. 청소년들이 묻는다. 기후위기를 방치한 채 언제까지 청소년의 미래를 담보로 경제활동을 할 거냐고. 그리고 결국 인간을 멸종위기종으로 만들 것이냐고. 선택은 당신 몫이라고.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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