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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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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글바글10-1057호

업&다운+이주의 숫자
등록 2015-04-14 08:01 수정 2020-05-02 19:27

01 “적극 검토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6일 세월호 선체 인양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제를 붙였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4월29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세월호 1주기’ 여론을 호의적으로 돌려놓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박 대통령은 신용카드를 쓸 일이 별로 없다. 더 좋은 ‘다목적 카드’가 있으므로.

02 “적극 행사하겠다.” 이석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해양수산부가 지금의 시행령안 제정을 강행하면 가만있지 않을 태세다. “위원장 판단에 따라 세월호 특별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공무원 파견을 요청하는 등 특위의 조직체계를 갖춰 활동을 개시하겠다.” 대통령 면담도 요청했지만 청와대는 묵묵부답.

03 해양수산부는 4월8일 세월호 사고 수습 비용이 모두 5548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고 유가족들을 ‘교통사고 피해 가족’으로 치부한 배·보상금은 1740억원. 선체 인양에는 121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연일 돈 얘기를 하느라 바쁘다. 배를 건져내기 위한 기술 검토도 끝나지 않았는데 서둘러 발표한 이유가 뭐냐는 여론의 질타가 뒤따랐다.

04 세월호 유가족 220여 명과 시민들이 4월4~5일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까지 1박2일 도보행진을 했다. 울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길. 빗길이었다. 숨진 아이들의 영정이 젖지 않도록 비닐로 감쌌다. 광화문광장에 도착하니 모인 시민이 2천여 명으로 늘었다. “도대체 정치를 왜 하는 거냐”는 유가족의 탄식, 삭발하는 부모들의 울음이 광장을 덮었다.

05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4월7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거둬들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전체 시행령을 철회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야당 추천 조사위원의 요구를 수용하고, 수용이 곤란한 부분은 다시 협의해 시행령을 수정·보완하겠다.” ‘넘버스리’(시행령)가 ‘넘버투’(법률)를 잡아먹는 형국이다.

06 세월호 유가족 150여 명은 4월6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려고 정부세종청사에 모였다. 청사에 들어가려는 유가족과 이를 뜯어말리는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여러 시간 이어졌다. 땅바닥에 쓰러지고 팔이 부러지고…. 청사 안 화장실을 쓰게 해달라는 요구도 경찰은 거부했다. 유가족 7명은 경찰버스에 갇혔다가 1시간 만에 풀려났다.

07 “피고인 이준석에게 사형을 선고해주십시오.” 4월7일 광주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경환) 심리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1심과 같이 이준석 세월호 선장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선장에게 징역 36년을 선고하면서 살인죄는 적용하지 않았다. 이 선장의 최후진술. “죽는 날까지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살겠다’.”

08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강원 춘천)의 세월호 인양 3불가론. 원형 보존 어렵고 돈이 많이 들고 추가 희생도 우려된다는 것. 자신의 트위터에는 “인양하지 말자. 괜히 사람만 또 다친다.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고도 휘갈겼다. 지난해 10월에는 실종자 수색 종료도 주장했다.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회 소속 의원의 윤리관이다.

09 4월17일 저녁 7시 서울광장에 ‘세월호’가 불을 밝힌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와 민주주의국민행동은 유가족과 시민 4160명이 촛불을 들어 세월호 형상을 만드는 행사를 열기로 했다. 온전히 촛불이 다 켜지면 가장 슬픈 기네스북 기록이 된다.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서울광장 잔디에 세월호 밑그림을 준비하고 있다.

10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에 나선다. 출국은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인 4월16일. 청와대는 “콜롬비아 대통령이 간곡히 요청했다”고 전했다. 4월17일 저녁 서울광장에 세월호 형상 촛불을 밝히는 순간, 대통령은 지구 반대편에 있게 된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시민 54.6%가 ‘1주기 추모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 다운


헵번 스타일
“인권의 문제다. 정치로 보지 마라.” 미국 배우 오드리 헵번(1929~93)의 아들과 그 부인, 다섯 자녀가 한국에 왔다. 넥타이·스카프·장갑 모두 노란색. 추모의 곡진한 빛깔. 이들이 낸 5천만원에 국민성금을 더해 1억원을 모아 ‘세월호 기억의 숲’이 만들어진다. 예정지는 팽목항에서 4.16km 떨어진 전남 진도군 백동 무궁화공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구호 활동을 했던 ‘헵번 스타일’의 아름다운 변주.

공안검사 고영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고영주 위원은 공안검사 출신이다. 4월9일 국무조정실 직원한테 트라우마센터 관련 보고를 받으면서 “떼를 쓰면 주고, 점잖게 있으면 안 주고”라고 말했다. 억장 무너지는 유가족들을 떼쓰는 사람들로 몰아붙였다. 야당 추천 위원이 곧장 반박하자 그는 “다른 참사보다 특별할 이유가 없다. 모든 참사에 공평해야 한다”고 대거리했다.




이주의 숫자 9


단원고 2학년1반 조은화, 2반 허다윤, 6반 남현철·박영인, 단원고 교사 양승진·고창석, 시민 권재근·권혁규 부자, 그리고 또 다른 시민 이영숙. 지난 1년, 호출하고 호명하고 호소하고 호곡(號哭)했지만 이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물 밖보다 세 곱절 넘는 수압에 눌린 이들의 몸은 벚꽃 한 송이 없는 어둠에서 단 1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맹골수도 뒤집어지는 물살에 시달리며 이들의 몸은 골수까지 한없이 젖고 있다. 가족들의 마음은 삼백예순닷새 촛농처럼 젖어 흘러내리고 있다. 15층짜리 아파트 높이 44m, 그 검푸른 바다 속에 아홉 사람이 아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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