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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군사 아닌 정치문제다

지소미아 갈등에서 확인된 미국의 본심
등록 2019-11-30 06:09 수정 2020-05-02 19:29
11월22일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유예 관련 브리핑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1월22일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유예 관련 브리핑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드는 군사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2~3년 전 한국과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다툴 때 중국 쪽이 보인 반응이다. 당시 한국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중국 쪽에 사드가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꾸준히 설명했다.

이런 식의 설명이었다. 첫째, 사드 레이더(AN/TPY-2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긴 전진배치모드(FBM)와 탐지거리가 짧은 종말모드(TM) 두 가지로 나뉘는데, 국내 배치된 것은 종말모드라 사드 레이더를 한반도에 배치해도 북한 지역까지만 탐지가 제한돼 중국에는 별 영향이 없다. 둘째, 실제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는 중국이 있는 서쪽이 아니라 북한을 겨냥해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결국은 중국

레이더 성능과 실제 운용에 기반한 한국의 군사적 설명에 중국은 “사드는 군사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라고 대답했다. 중국은 종말모드용 사드 레이더가 한반도에 배치되더라도 이를 전략적 위협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미국의 대중국 포위 압박 정책에 한국 가담’으로 본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과 사드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공통점은 `‘군사 문제가 아니라 (국제)정치 문제’라고 인식하는 태도다. 일부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알아서 협의하면 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미국이 왜 개입하냐고 하지만, 미국 처지에서 지소미아는 군사정보 문제가 아니라 국제정치 문제다.

한-일 지소미아 종료가 ‘조건부’ 유예됐다. 쟁점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조건부 유예 결정이 나온 것은 미국의 강력한 압박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많다. 정부는 미국이 한국만을 압박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합의를 독려했다고 설명한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11월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미국이 지소미아 건과 관련해 한국을 주로 압박하는 것으로만 비쳤지만, 실상은 미국 고위 인사들이 최근 일본과 한국을 방문해 한-일 간 합의를 적극 독려해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유예와 관련해 미국의 역할이 컸다고 전했다. 미국의 ‘압박’이냐 ‘역할’이냐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소미아 종료에 미국의 태도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연장 중단을 발표한 다음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크게 실망했다고 밝혔다. 종료 시점이 다가오자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한국을 압박했다. 11월에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이 잇따라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했다.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유예에 큰 역할을 한 데는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라는 측면도 있지만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구도와 관련지어 인식한 것으로 이수혁 대사는 봤다. 미국의 전략적 구도는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중국을 견제하는 핵심 수단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태도는 마크 밀리 합참의장의 발언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밀리 합참의장은 11월13일 일본 도쿄에서 과 한 인터뷰에서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중국과 북한이 이득을 보게 된다”며 한국에 협정 종료 결정 재검토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11월25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이번 일(지소미아 종료 유예)을 계기로 한-미 간 신뢰와 상호소통이 강화된 만큼 이를 토대로 앞으로도 방위비 분담 협상, 북핵 문제 공조, 역내 협력 강화를 모색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대에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1월25일 일본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지소미아와 방위비 협상은 별개”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압박이냐 역할이냐

지소미아 논란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거치며 한-미 동맹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이 나오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 유예 과정에서 나타난 미국의 움직임을 두고 한-미 동맹의 성격을 바꾸려 한다는 시각이 있다. “한-미 동맹은 1953년 체결할 때 북한의 남침을 억지하기 위해서 미국과 한국이 협력한다 이거거든요. 그런데 지금 미국은 한-미 동맹을 반중 동맹으로 바꿔나가고 있어요. 미국은 이걸 더 강화해서 한·미·일 자체를 동맹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 11월13일 CBS 인터뷰)

국내 보수세력은 지소미아 유지,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 등 모두 미국 편을 들고 있다. 10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외교안보 정책 비전을 발표해,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라고 주장했다. 황 대표는 지소미아 종료 철회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도 주장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에 정부는 신중한 태도다. 11월25~26일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채택한 한·아세안 공동의장 성명 6항에 “대한민국의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에 대한 지지”가 명시됐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기조로 보인다. 6월23일 타이 방콕에서 열린 제34차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 성명에서 채택한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 관점”의 뼈대는 미국이나 중국의 일방적인 편들기 요구나 세력 확장은 거부하면서 군사·안보보다는 경제협력에 방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일본 우경화 등 동북아 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지소미아 논란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논란에서 드러난 미국의 본심을 잘 파악해, 한-미 동맹의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동맹 존재의 이유

“우리가 미국에 신세를 많이 졌지만, 이제 한-미 동맹은 보다 대등하고 동맹 안에서도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미국도 우리가 필요하니까 동맹을 맺은 것이다. 상호 호혜적인 동맹이 되어야 한다. 이번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의 본심’을 드러낸 것은 고맙다. 서로의 본심을 얘기하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11월20일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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