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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상품이다

플랫폼으로 연결되고 인정받는 시대에 우리 모두는 고객이자 상품
등록 2018-04-10 09:08 수정 2020-05-02 19:28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어쩌면 모두가 플랫폼으로 연결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AP 연합뉴스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어쩌면 모두가 플랫폼으로 연결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AP 연합뉴스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디어 학자 댈러스 스마이드는 TV 보는 행위를 ‘시청자 노동’이라고 했다. 방송사는 시청자에게 광고를 보여주고 돈을 버니, 시청자도 TV 산업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다. 실제 미디어는 많은 사람에게 ‘당신 광고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광고를 판다. 시청자가 바로 상품인 셈이다. 요즘 개인정보 유출로 어려움을 겪는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플랫폼 회사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이용자 데이터를 제공하고 목표 고객에게 정확히 광고할 수 있게 해주면서 광고비를 받는다. 미국 작가 세스 고딘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것을 공짜로 사용할 때 당신은 이제 고객이 아니다. 당신이 상품이다”라고.

이젠 모두 잊었지만 ‘공짜경제’라는 말이 유행한 때도 있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는 대신 사용자 정보나 명성, 평판을 얻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사업 유형이다. 파울루 코엘류 같은 유명 작가가 자기 책을 PDF 파일로 배포했던 일이나, 가수 싸이가 노래 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에게 저작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일,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 운영시스템(OS)을 무단 사용하는 개인 사용자를 단속하지 않았던 일, 네이버나 유튜브 등 광고만 보면 쓸 수 있는 서비스가 공짜경제에 속한다. 이용자는 자기 시간이나 관심,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해서 좋고, 플랫폼 회사는 시장을 장악하거나 정보를 이용해서 좋고, 광고주는 정확한 대상에게 상품을 보여줄 수 있으니 좋다.

같은 말을 하는데 우린 이쪽에선 ‘상품’, 다른 쪽에선 ‘이용자’ 혹은 ‘고객’이 된다. 우리는 플랫폼을 호객꾼처럼 취급하는데, 플랫폼 쪽에서 볼 때 우린 상품이다. 그토록 중요하다고 외치는 콘텐츠는 결국 상품을 불러모으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 사건도 따지고 보면, 기업이 앱으로 모은 개인정보를 다른 업체에 팔면 안 된다는 규정을 어긴 일과 그 정보가 정치 상황을 좌우하는 데 쓰였다는 것을 빼면, 보통 회사들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고객 정보를 수집해 표준화해서 성향을 파악하고, 목표 고객을 추출한 다음 그들에게 광고를 보여준다. 수많은 해킹으로 유출된 개인정보와 비교하면 대단한 정보도 아니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대충 어느 곳에 있는지 등이다. 따져보면 별것 아니라고 여겨지던 정보다. 별것 아니었기에 우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다른 앱들이 가져가도 괜찮다며 내버려뒀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개인정보 설정 페이지에 들어가본 사람이 없다고 확신한다.

이대로 좋을까? 미디어업계는 그동안 콘텐츠를 팔아 돈을 벌고, 광고를 팔아 돈을 벌어왔다. 보통 둘 중 하나만 하거나 둘 다 한다. 하지만 인터넷이란 증폭기와 데이터 분석 기술이 만나면서, 우리가 쉽게 누른 ‘좋아요’ 몇 가지만으로 우리 취향과 정치 성향이 파악되는 시대가 됐다. 단순히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던 광고가 분석된 결과로 우리 생각과 행동에까지 영향을 끼치려 한다. 아니, 이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린 알면서도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구,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플랫폼이 채워주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탈퇴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다들 소용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정말 어쩌면 좋을까? ‘쓰지 않는다’는 대안을 빼면 상품이 되지 않을 방법은 거의 없다. 다만 자신을 상품이라 생각한다면, 조금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자신의 권한을 확실히 행사하거나 사용 자체를 줄일 수 있다. 어쨌든 시작은, 우리가 상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순간부터다. 이 빠져나가기 힘든 빌어먹을 플랫폼의 시대에서.

이요훈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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