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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섹스를?

인공지능 ‘섹스 로봇’ 등장…

‘성적 소외자 위해 필요한 산업’ vs ‘성 상품화 심화’ 찬반 논란
등록 2018-03-15 16:47 수정 2020-05-02 19:28
인간의 성 경험을 지원하는 ‘성인 기술 산업’이 커지고 있다. 사람처럼 표정 짓고 작동하는 로봇 성매매 업소까지 등장했다. 한겨레

인간의 성 경험을 지원하는 ‘성인 기술 산업’이 커지고 있다. 사람처럼 표정 짓고 작동하는 로봇 성매매 업소까지 등장했다. 한겨레

2018년 2월, 프랑스 파리에 이상한 집이 문을 열었다. 성매매 업소이긴 한데 사람이 없다. 사람 같은 인형이 있을 뿐이다. 이곳이 물론 처음은 아니다. 영국과 네덜란드에 이미 비슷한 가게가 있다.

중국 엑스돌(EXDOLL)에선 인공지능 스피커 ‘샤오디’가 탑재된 인형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처럼 표정도 짓고, 스마트홈에 연결된 가전기기로 작동할 수 있게 개선할 예정이란다. 일본에선 성인 가상현실(VR) 영상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영국에선 인공지능 여성형 로봇 ‘사만다’를 팔기 시작했고, 미국에선 로봇 ‘하모니’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들 로봇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가 앱으로 성격을 부여할 수 있다. 사용자의 취향 같은 개인정보를 기억하는 기능도 있다. 이렇게 인간의 성 경험을 지원하는 기술을 ‘성인 기술 산업’(Sex Tech)이라 한다.

우리에겐 낯선 이야기고 국외에서도 음지로 치부하는 영역이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창업지원기관 ‘500스타트업’의 트리스턴 폴록은 시장 크기가 0.5조달러, 기업 가치는 300억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런 로봇이나 인형이 만들어지는 이유로, 미국과 영국은 높은 이혼율을 내세운다. 하모니를 만드는 ‘리얼돌’의 사장 매트 맥멀런은 이혼율이 50%에 육박하는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는 이성관계에 대한 요구가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인형들이 더는 살아 있을 이유를 못 느꼈던 남자들의 삶을 구했다는 것이다. 엑스돌 사장 차오우는 ‘1자녀 정책’으로 인한 중국의 남녀 성비 불균형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이 산업으로 성매매와 성폭력이 줄었다고도 주장한다.

반대 의견도 많다. 로봇공학재단(FRR)에선 ‘로봇과 함께하는 성의 미래’(Our Sexual Future With Robots)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성을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산업일 수도 있지만, 여성 비하나 인간관계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섹스 로봇 반대 캠페인’에서는 로봇과의 관계에 익숙해지면 결국 어린이와 여성을 물건 취급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기술에는 만든 이의 의도가 녹아 있으므로 남성 중심 사고를 강화한다거나, 로봇이 드러내는 가짜 감정에 익숙해지면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로봇에 기록된 개인정보가 해킹될 위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할까? 찬반 의견 모두 로봇이 등장하면 많은 것이 바뀔 듯이 말한다. 여성용 남성 로봇이 나오면 남자가 필요 없게 된다거나, 어차피 이런 로봇은 특정 성향의 남자들이 살 테니 다른 여성들은 그런 남자들에게서 자유로워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폭력을 쓰게 된다는 말처럼 재미없다. 엘리어스는 자신의 책에서 ‘문명화 과정’을 본능에 충실한 삶을 억누르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 세련된 예절에 길드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기술보다 무거운 것은 사회적 합의다. 사회적 조건은 우리 행동의 뿌리다. 우리는 계속되는 합의 수정과 교육을 통해 한 사회를 유지해간다. 지금은 관계에 대한 규칙을 바꾸고, 새로운 합의를 끌어내야 할 때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술 사이에 어떤 관계를 배치할지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는 지금의 불행한 관계가 인간과 기술 사이에 재현되는 것을 두려워하겠지만, 어쨌든 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시장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기술 제품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끌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참고로 여성용 시장도 생각보다 크다. 즐거움을 찾는 일에 남녀가 따로 있지 않으니까.

이요훈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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