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 피에타를 만난 건 몇 해 전 일본 오키나와의 사키마미술관에서였다. 극적 비애가 거기, 슬픔의 극점이 거기 있었다. 죽은 아기를 품고 죽도록 견디는 여인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왜 전쟁엔 피에타가 존재하는가.
제주 강정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이제 이곳을 반드시 찾는다. 지난봄 베트남전 42주기를 맞아 한·베 평화재단이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 한쪽에 세운 베트남 피에타 동상. 한국군에 학살된 어머니와 어린 아기를 형상화한 이 동상 앞에서 잠시 멈춘다. 우리에겐 지금까지 짓누르고 있는 역사 베트남전이 있다. 해서, 베트남 피에타는 한국인의 책임을 묻고 반성과 성찰을 하자는 의미다.
“나의 야만을 기억하고 기억한다/ 여기 베트남의 마지막 자장가가 한국의 자장가와 만난다/ 오 동아시아 파도소리여 너와 나의 파도소리여” ‘베트남 피에타’를 위해 시인 고은은 이렇게 썼다.
우리의 피에타가 어디 이뿐이랴. 아이를 가슴에 묻은 엄마의 모습은 측량할 길 없는 고통이다.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어떻게 헤아리랴. 베트남의 자장가를 생각하며 피에타를 대할 때면 왜 ‘비설’이 겹쳐지는 걸까. 제주시 봉개동 거친오름 자락, 제주 4·3 평화공원의 조각상 ‘비설’. “웡이 자랑 웡이 자랑 우리 아기 자는 소리….” 이 제주의 자장가가 새겨진 구불구불 돌담길을 돌면 슬픈 모녀상을 만나게 된다. 눈이 팡팡 쏟아지던 4·3 그해 겨울, 이 기슭에서 토벌대를 피해 도망치다 죽은 스물다섯 젊은 엄마가 두 살배기 딸을 품고 눈 위에서 죽어간 진실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전쟁 속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는 아마도 어머니다. 자식의 죽음을 껴안아야 했던 어머니. 아이에게 이름도 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늙은 어머니를 만난다. 죽은 아이를 위해 물 한 그릇 올려놓는다는 그들을 만난다.
“어떤 어머니는 자녀 9명이 다 죽었어요. 제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한데 그 죽은 자식들을 기억하기 위해 살아나신 게 아닌가 해요. 베트남에서는 향 연기라는 것이 있는데, 죽은 사람을 위해 향을 피우기 위해 어머니가 살아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십 대 소녀 시절 전쟁을 살았던 겁 없는 여자. 베트남의 종군작가인 레민퀘를 만났을 때 그가 한 말이다.
물론 피에타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 아니겠는가. 피에타는 저항하고, 견디고, 아픔을 어루만지고, 슬픔의 강을 건널 수 있게 손을 잡아주는 어머니의 얼굴이다. 이 땅의 도처에서 피에타를 본다. 세월호에서도, 오월 광주에서도, 유월 민주화운동으로 스러진 자식을 품은 어머니에게서도. 피에타는 진실과 정의, 평화란 무엇이냐고 묻는다.
비로소 새 정부에 바라는 피에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베 평화재단은 얼마 전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가 정의롭게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촉구했다. 한국 시민사회는 이미 1999년부터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벌여왔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과 베트남에 대한 사죄 운동이다. 이 문제를 미래 세대의 숙제로 남기지 않고 해결하기 바라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제 기행의 경험이 많아진 청소년들은 역사책에서 배우지 못한 참혹한 사실을 현지에서 날것으로 품고 온다. 아이들은 말한다. 평화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10여 년 전, 베트남 예술인과의 문화 교류 때 그곳 예술인들이 희망한 것도 하나였다. 베트남과 한국이 공유할 수 있는 두 단어, 하나는 진실이고 또 하나는 평화라는 것. 아픈 과거사 해결 문제를 앞에 놓은 우리가 또한 넘어서야 할 산인 것이다. 진정한 사과 후에 베트남 피에타를 베트남에 세워야 할 일 말이다. 끝내는 피에타가 세워지지 않아도 될 세상. 이 땅의 피에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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