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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의 시민권

김제동과 국정감사
등록 2016-10-11 09:01 수정 2020-05-02 19:28

방송인 김제동씨의 ‘농담’이 새삼스럽게 화제가 되고 있다. 김제동씨가 군 복무 중 행사 사회를 보면서 4성 장군의 부인을 ‘아주머니’로 호칭했다가 영창에 갔다는 얘길 방송에서 한 게 국회에서 언급됐기 때문이다. 김제동씨는 방송에서 “다시는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를 세 번 복창했다고도 말했다. 국방부 차관 출신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은 이를 군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김제동씨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시키겠다고도 했다.

‘개그를 다큐로 받는’ 의도야 뻔하다. 건전한 시민사회 상식으로 볼 때 백승주 의원이 하고 싶은 말은 ‘사드 반대 세력이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정부 비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걸로 추측된다. 즉, ‘사드 반대’에는 ‘의도’가 있다는 거다. 1980년대에나 정당화될 이런 논리가 설마 먹힐까 싶었다. 그러나 인터넷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김제동씨가 사실을 왜곡했다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꽤 눈에 띈다.

농담은 어디까지나 농담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스탠딩 코미디가 발달한 미국에서 어느 코미디언이 했다는 농담이 떠올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대뜸 욕을 하더라는 거다. 이에 반발하니 오바마가 “대통령이 코미디언에게 이유 없이 전화로 욕했다는 주장을 누가 믿겠느냐”면서 계속 욕을 했다는 게 이 농담의 핵심 내용이다.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백악관이나 민주당이 이 코미디언의 국회 출석을 요구했다는 얘긴 들어본 일이 없다.

형식이 ‘농담’이라면 어떤 주장을 해도 용서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농담을 평가하는 기준은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누구를 명예훼손했는지 따지는 일상의 어법과 달라야 한다는 거다. 앞에 언급된 미국 코미디언의 농담은 권력이 비상식적 행위를 대놓고 할 수 있는 사회 조건의 일면을 풍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김제동씨 발언도 마찬가지다. 그의 농담은 군대 내 부조리를 비꼰 걸로 볼 수 있다. 반드시 4성 장군의 부인과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군대 내 비상식적 일이 많다는 것에 대다수 사람들이 공감한다. 권력과 체제 풍자의 폭넓은 허용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문화적 요소다.

돌이켜보면 꽤 많은 연예인이 ‘거짓말 농담’으로 비난받았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연예인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품에 늘 속는다. 100원짜리 상품을 1천원을 주고 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품이 ‘나’를 속인 대가로 스스로의 이득을 취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흥미로운 것은 동시에 ‘나’를 성공적으로 속인 상품은 열광의 대상이 된다는 거다. 이 소비주의 메커니즘을 우리는 세계에 대한 모든 요소의 인식 과정에서 내면화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냉소적으로 작동하는 소비주의의 색안경을 이미 쓰고 있기 때문에 백승주 의원과 같은 시도가 정치적 효과를 거두는 것이란 이야기다. 이런 문화적 지체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 방법은 ‘불매’당하는 김제동씨를 다시 ‘구매’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김제동씨의 시민권, 즉 개그맨으로서 그의 정치적 권리를 논하는 것이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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