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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외부세력과 싸운다

기습적 직장폐쇄와 용역경비 투입 이후 공권력 투입까지 예상되는 ‘비정규직 없는 공장’ 갑을오토텍 아산공장 노동자들과의 1박2일
등록 2016-08-16 10:43 수정 2020-05-02 19:28
8월7일 갑을오토텍 공장을 찾은 아들이 엄마와 입맞춤을 하고 있다. 갑을오토텍지회 제공

8월7일 갑을오토텍 공장을 찾은 아들이 엄마와 입맞춤을 하고 있다. 갑을오토텍지회 제공

8월3일, 충남 아산시 탕정면 산업도로 뒤편, 논둑길을 따라 경찰버스가 길게 늘어섰다. 경찰병력이 밭두렁부터 회사 정문까지 공장을 겹겹이 에워쌌다. 정문 가까이 다가가자 녹색 티셔츠에 검은색 형광 조끼를 입은 젊은이들이 줄 맞춰 서 있다. 경찰복을 흉내 낸 용역경비다. 위협적인 체구에 살기 서린 눈빛으로 공장 안을 주시한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까 싶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앳된 얼굴도 보인다.

여닫이 철문 양쪽으로 쌓아올린 바리케이드 위에서 노동자들이 경찰과 용역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노조 사무실 옥상에서도 망원경으로 동태를 살핀다. 공장 앞마당, 조합원 100여 명이 경찰과 용역을 마주 보며 대치한다. 노동자와 용역경비 사이. ‘평화지킴이’로 나선 아산시의원들이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로 앉아 있다.

7월26일 기습적인 직장폐쇄, 8월1일 용역경비 투입에 이어 공권력 투입설까지 공장엔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돈다. 시원한 바람을 찾아 바다와 계곡으로 떠나는 휴가철, 자동차 에어컨을 만드는 갑을오토텍은 22년 만의 폭염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회사 자빠뜨린 경영진, 회사 30년 지킨 노동자

공장 언덕길을 따라 양옆으로 늘어선 농성천막. 대형 선풍기는 굉음을 내며 더운 바람을 뿜어낸다. 언덕을 오르자 두 동의 건물이 나란히 있다. 갑을오토텍과 김치냉장고 딤채를 만드는 대유위니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회사의 같은 동료였던 이들인데 위니아는 여름휴가를 떠났고, 갑을오토텍은 공장을 지키고 있다.

건물 입구, 가득해야 할 부품 상자들이 텅 비어 있다. 포장을 뜯지 않은 대형 코일이 덩그러니 서 있다. 콘덴서 가공라인, 에바(자동차 에어컨의 부품 중 하나로 액화된 냉매를 증발하는 증발기) 완성라인을 지난다. 한 노동자가 기계를 매만진다. 공장이 멈춘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짐작과 달리 생산라인과 부품들이 말끔히 정돈돼 있다. 언제든 시동만 걸면 시원하게 라인을 돌려 차량 에어컨을 쏟아낼 태세다.

에어컨 에바의 알루미늄을 용접하는 유희용(51)씨는 1987년 만도기계 안양공장에 입사해 올해로 꼭 30년을 근무했다. 갑을오토텍은 당시 만도기계 아산공장이었다. 그는 안양공장이 청산되면서 2000년 2월 이곳에서 에어컨을 만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만도기계는 대한민국 1위 자동차부품 회사였다. 이곳 아산공장은 만도기계 중에서도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당시 재계 순위 12위이던 한라그룹의 한라중공업이 삼호조선소에 8천억원을 쏟아부으며 단기자금을 끌어 쓰다 부도를 맞았고, 우량 계열사인 만도까지 자빠뜨렸다. 회사를 거덜 낸 한라그룹 회장 정몽원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동생인 정인영의 아들이다.

경영진 잘못으로 부도가 났는데, 아무 죄도 없는 노동자가 가만히 앉아 정리해고를 당할 수는 없었다. 만도기계 7개 공장 노동자들은 점거파업에 들어갔다. 신자유주의 해외 매각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던 김대중 정부는 1998년 9월3일 전투경찰 4500명을 투입해 농성 중이던 2432명을 연행했고, 41명을 구속했다. 정부와 경영진은 만도기계 7개 공장 중 4개를 해외자본에 내다 팔았다. 만도기계 아산공장은 스위스은행(UBS) 자회사 UBS캐피털→씨티벤처캐피탈(CVC)→모딘코리아→갑을상사그룹으로 팔려나갔다.

유희용 조합원은 “맨 처음 UBS로 넘어갈 때까지만 해도 수익성이 아주 좋았고, 위니아와 같이 있을 땐 딤채와 에어컨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며 “좋은 회사가 다섯 번 매각되면서 이놈 저놈이 알짜배기를 빼먹고 껍데기만 남아 이 지경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튼실한 그룹을 말아먹은 지 10년 만인 2008년 정몽원은 만도를 사들여 회장으로 등극했는데, 30년 넘게 회사를 지킨 노동자는 이 나라, 저 나라 자본을 난민처럼 떠돌고 있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갑을상사그룹은 2010년 모딘으로부터 162억원에 회사를 인수했다. 이후 갑을그룹은 갑을메탈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갑을오토텍에서 140억원의 현금을 가져갔고, 450억원의 지급보증을 섰다. 갑을합섬에 200억원을 빌려줬고, 중국과 인도 등 해외 부동산 인수 및 공장 설립 비용 130억원도 갑을오토텍에서 빼갔다. 그런데도 회사 인수 뒤 누적 순이익이 290억원에 달할 정도로 아직 건실하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고액 연봉으로 적자가 심각하다고 주장하면서, 2014년 주요 임원의 임금을 12억원에서 24억원으로 100% 인상하고, 70억원의 주주배당을 했다.

“노조 파괴 위해 특전사·경찰 출신 신규 채용”
8월4일 새벽 6시 공장 정문 앞에 모인 조합원들이 기상집회를 하며 동료들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박점규 제공

8월4일 새벽 6시 공장 정문 앞에 모인 조합원들이 기상집회를 하며 동료들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박점규 제공

희용씨가 지난해 공장 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들려준다. 2015년 1월부터 주야 맞교대를 주간 2교대로 전환하면서 신규 채용을 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회사는 60명을 채용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덩치가 장난이 아니었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현장에서 본 평범한 노동자, 장갑 끼고 일하는 순박한 얼굴이 아니었다.

회사가 노조를 깨기 위해 용병(특전사와 경찰 출신)을 채용한 것이라는 제보가 노조에 접수됐다. 갑작스레 기업노조가 만들어지더니, 용병들이 삼삼오오 다니면서 조합원들을 위협했다. 현장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고 조합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회사가 2011년 노조 파괴로 악명을 떨쳤던 창조컨설팅 출신의 노무사와 5억원 넘는 용역계약을 맺어 노조 파괴를 추진한 것이었다.

그때 조합원 3명이 현장에서 “용역깡패 물러가라” “민주노조 사수하자”라는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하루 이틀 지나고 한두 명씩 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100명이 넘었다. 지켜보던 이들도 미안한 마음에 합류하면서 침묵시위 인원은 200명을 넘어섰다. 다른 회사로 파견 나간 직원들을 빼면 현장 조합원의 70% 이상이 참여했다.

새벽에 출근해 피켓시위를 하고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두 달 동안 계속됐다. “누가 시켰으면 아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예요. 회사에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모두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외부세력’에 맞서 조합원들이 뭉치자 전세는 역전됐다. 지난해 6월23일과 8월10일 노사 합의를 통해 노조 파괴를 위해 채용했던 용병들의 채용을 취소하기로 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지난 7월15일 갑을오토텍 박효상 전 대표이사를 검찰이 구형한 징역 8월보다 형량을 높인 징역 10월을 선고하며 “이런 범행은 노사 간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헌법에 보장된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밝혔다. 박효상은 현 대표이사 박당희의 동생이다.

5년 뒤 반복된 창조컨설팅 노조 파괴 시나리오
8월3일 밤 공장 정문을 지키는 갑을오토텍 노동자 너머로 용역경비들이 보인다. 박점규 제공

8월3일 밤 공장 정문을 지키는 갑을오토텍 노동자 너머로 용역경비들이 보인다. 박점규 제공

늦은 밤, 노조 간부들이 상황실에 모여 기자회견 자료를 검토한다. 법률사무소 ‘새날’ 김상은 변호사가 박효상 전 대표이사의 재판기록을 입수해 분석한 자료다. 갑을오토텍 노조 파괴 문건 ‘Q-P 전략 시나리오’에 “경영위기 상황임을 직접 인식하게 해 위기감 조성”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회사는 지난해 10월 비상경영체제 돌입을 선포했다. 또 문건에는 ‘경비 업무 외주화’를 “노조에서 비정규직 전환의 시발점으로 인식… 파업 유발의 수단”이라고 쓰여 있다. 파업을 유도해 직장폐쇄→공권력 투입→노조원 선별 복귀→제2노조 설립→노조 와해 등의 순서다.

갑을오토텍 회사는 지난 1월3일 정규직이던 경비원을 생산직으로 전환하고 경비 업무를 외주화했다. 이어 7월26일 직장폐쇄를 강행하고 용역경비를 투입했다. 문건 그대로다. 2011년부터 창조컨설팅이 벌인 노조 파괴 시나리오와 똑같다. 유일한 차이는 여론에 밀려 아직까지 공권력 투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뿐이다.

4년 전이었다. 경북 경주 발레오만도를 시작으로 낙동강을 따라 진격하며 금속노조의 핵심 사업장을 차례로 박살내던 창조컨설팅 주연 ‘노조 파괴 전쟁’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여름휴가를 하루 앞둔 2012년 7월27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모인 용역경비들은 (주)만도의 평택·문막·익산 공장과 안산 에스제이엠(SJM)으로 향했다. 용역경비들은 파업하고 휴가를 떠나 텅텅 비어 있던 만도 공장을 손쉽게 접수했다. 하지만 휴가를 포기하고 일터를 지킨 에스제이엠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용역경비들의 잔인하고 끔찍한 폭력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노조 파괴 전쟁’은 멈췄다. 올여름 갑을오토텍 조합원들이 공장을 비워두고 휴가를 떠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2010년 금속노조에서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벌였다. 외환위기 이후 일터의 하청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많은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을 사용했다. 청소·경비·식당에서 시작해 지게차, 물류 등 간접생산 부서로 넘어와 직접생산까지, 정규직이 하던 일을 사내하청에 넘겼다.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현대차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내려도 사내하청 사용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상시업무 정규직 채용’이라는 원칙을 지킨 ‘비정규직 없는 공장’도 적지 않았다. 갑을오토텍도 경비와 식당까지 정규직인 회사였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2016 고용형태 공시 현황’을 살펴봤더니, 비정규직 비율이 10% 미만인 금속노조 500명 이상 11개 회사 중 7곳에서 회사 주도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통한 복수노조가 만들어졌다(표 참조). 이 중 6개 회사는 라인이 끊기면 현대차 생산도 멈추는 자동차부품사다.

현대차가 직접 개입해 유성기업의 노조 파괴를 지시했다는 증거가 법원과 국회에서 잇따라 나왔는데도 현대차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현대차가 갑을오토텍 노조 파괴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을까? 창조컨설팅의 노조 파괴 유혈 폭력은 4년 전 에스제이엠에서 멈췄지만, 단죄하지 못한 범죄는 오늘도 되풀이되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는 지난 5년의 만행을 밝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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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찾아내 회수한 젊은 조합원들

“공장에 젊은 직원이 많아져서 활기가 넘쳐요. 힘들지만 젊은 후배들에게 좋은 일터를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유희용 조합원은 열심히 활동하는 젊은 후배들이 고맙다. 갑을오토텍 노사는 2011년 “정년퇴직으로 자연 감소한 인원에 대해선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한다”고 합의했다. 지난 5년 동안 지역에서 70여 명이 갑을오토텍에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청년들에게 이력서 받아 들러리 세워놓고 이미 내정한 경찰과 특전사 출신을 뽑아 사기친 거잖아요. 그래서 노조가 채용 당시 이력서 넣은 청년들을 채용하라고 요구했죠.” 한정우 대의원이 자랑스레 말한다. 대기업이 비정규직을 늘리고 있을 때 청년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만든 곳은 다름 아닌 갑을오토텍 ‘강성노조’였던 것이다.

며칠 전이었다. 그는 공장에서 농성하며 힘들 때면 동료들과 몰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직장폐쇄가 단행되자 노조 지도부는 ‘금주 명령’을 내렸다. 술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였다. 젊은 조합원들이 라인을 순회하며 김치냉장고에 숨겨놓은 소주를 찾아내 부식으로 바꿨다. 선배들은 술이 아쉬웠지만 아무 말 없이 후배들의 뜻을 따랐다.

밤 12시. 정문 경계근무를 마친 조합원들이 눈을 붙이러 들어간다. 새벽 2시까지는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온 노동자와 시민들이 정문을 지킨다. 해고됐다가 복직한 기아자동차와 동희오토 비정규직, 현대차·현대제철·동양시멘트 해고자들, 학생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100여 명이 정문 앞에 앉는다. 철창 너머 용역경비와 경찰도 교대한다.

지난해 갑을오토텍은 용병들을 채용해 노조 파괴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갑을오토텍을 인수·합병(M&A) 시장에 내놓기도 했다. 갑을이 조만간 ‘먹튀’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돈다. 40년 동안 자동차 공조기를 만들어온 전문기업, 이 회사의 외부세력은 도대체 누구일까?

오늘도 공장을 지킨다

새벽이 밝았다. 선잠을 자고 일어난 노동자 300여 명이 정문 앞에 모여 기상집회를 연다.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생이별한 신혼부부, 아들을 군에 보내야 하는 아빠…. 철망을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국민을 지키라고 세금으로 무술을 가르친 ‘태양의 후예’와 ‘투캅스’ 출신들이 노조 파괴 사냥개로 활약하는 나라,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오늘도 ‘외부세력’에 맞서 공장을 지킨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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