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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벨트’ 동해안 ‘안전 벨트’가 없다

일본 원전 사고 기준으로 ‘모의실험’ 했더니 고리 원전 주변 급성 사망자 4만8천 명 추정
등록 2016-04-14 08:29 수정 2020-05-02 19:28



‘핵무덤’  후쿠시마  5년,  희망은  어디에


①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② 희망은 없다, 그러나 만든다
③ 봄이 와도 핵 평화는 없다
*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2014년 12월 전남 영암군 홍농읍 한빛핵발전소 앞에서 ‘부실 부품을 사용한 원전 3·4호기 가동 정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당시까지 한빛원전에서 발생한 사고 160회를 상징하는 ‘십자가’ 160개 뒤로 원전 건물이 보인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2014년 12월 전남 영암군 홍농읍 한빛핵발전소 앞에서 ‘부실 부품을 사용한 원전 3·4호기 가동 정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당시까지 한빛원전에서 발생한 사고 160회를 상징하는 ‘십자가’ 160개 뒤로 원전 건물이 보인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그해 봄은 잔인했다. 1986년 4월2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원자로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우크라이나 국토의 5%, 벨라루스의 25%가 방사능에 오염됐다. 방사능은 유령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사람들의 거주가 금지된 땅 넓이만 2600km²에 이른다. 핵심 오염 지역에서 개와 고양이, 가축, 야생동물이 모조리 도살됐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거나, 갑상샘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일상에 불과했다. 심한 피폭을 당한 이들의 얼굴에선 피부가 떨어져나갔다. 일부 여성들은 기형아를 출산했다. 사고 이후 6년 만에 방사능의 영향으로 8천여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의 봄도 그랬다. 일본 관광국이 “사과·복숭아가 1년 내내 수확되고 바다의 진미를 즐길 수 있다”고 소개할 만큼 한때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대지진 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다. 1만8천여 명에 이르는 사망·실종자는 3·11 대지진과 쓰나미 탓이라고 해도, 사고 5년 뒤인 최근까지 이재민 수가 13만 명에서 줄지 않는 것은 원전이 토해낸 방사능 때문이다. 최근 일본 등에 따르면, 유령도시가 된 이 지역에서 기업 18.5%가 도산하거나 휴·폐업했다. 학교가 ‘휴교령’을 내리면서 지금도 학생 수천 명이 수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심각한 수준의 갑상샘 질환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전세계 ‘대형 원전단지’ 40% 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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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450여 기 원전 가운데 체르노빌, 후쿠시마를 비롯해 3기에서 5등급 이상 원전사고(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수준)가 발생했다. 산술적으로는, 원전 1기마다 사고 발생 확률이 0.7%다. 국내에선 24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6번째로 많다. 이 때문에 원전 사고에 대한 우려가 국내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비슷한 상황이 국내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반경 30km 거리가 주요 피난 지역이 됐다. 후쿠시마는 16만 명, 체르노빌은 13만5천여 명이 강제 이주 대상이었다.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반경 30km 이내에 341만 명이 산다. 일본의 원전 사고 프로그램으로 고리 원전 ‘모의 사고 실험’을 했더니, 바람의 영향에 따라 인근 주민 가운데 급성 사망자가 4만8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이때 경제 피해액이 600조원에 이른다.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취재를 위해 현장에 있었다. 사고 지역에서 벗어나려는 피난민 차량이 왕복 2차선 국도에 뒤섞여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 고리 원전 반경 30km 거주민은 후쿠시마의 20배가 넘는다. 국내 인구의 5%가량이 이 지역에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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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리 원자력발전소에는 원자로 8기가 집중돼 있다. 캐나다 브루스원전과 함께 한 지역에 모여 있는 원자로 대수(원자로 집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고리뿐만 아니다. 국내에는 고리를 포함해 전세계 ‘대형 원전단지’ 10곳 가운데 무려 4곳이 포함됐다. 대형 원전단지는 원자로 6기 이상이 밀집된 지역을 의미한다. 어디서든 핵연료에 문제가 생기면 초대형 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고리 외에 한울, 한빛, 월성 원전(이상 원전 6기)이 모두 대형 원전단지다. 월성단지 반경 30km 거주 인구가 130만 명, 한빛과 한울은 각각 17만 명, 8만 명이다.

아직 대형 재난으로 연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미 우려를 낳을 만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누리집에 공개한 ‘나쁜 원전 이야기’를 보면, 2012년 이후 한국의 원전 고장·사고는 수십 건에 이른다.

사고 유형도 다양해서 냉각재 펌프 중단(한빛 2호기), 폐연료봉 추락(월성 4호기), 증기발생기 세관 누설에 따른 자동 정지를 비롯해 중성자빔 실험장치 화재(한빛 3호기), 제어봉 집합체 낙하(한울 1호기), 전력 공급 중단 뒤 비상디젤발전기 미작동(고리 1호기) 등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그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내부 전산망 해킹이나 한수원-민간업체 입찰 유착, 검증업체와 결탁 의혹, 강원도 삼척시 원전 유치 찬성 주민 서명 조작 등으로 각종 논란을 빚어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원전 해외 부품 가운데 9만7천여 건의 시험성적서가 위·변조돼 확인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됐다.

신규 원전, 경북·울산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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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원전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는 5월 신고리 3호기, 내년 3월에는 4호기가 준공될 예정이다. 가동 중인 원전이 26기로 늘어난다.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신한울 1·2호기 준공이 예정됐고, 2021년부터 신고리 5·6호기,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등 거의 매해 원전 1기씩 추가된다.

특히 정부는 원전이 집중된 동해안 일대를 아예 ‘동해안 원전 벨트’로 만드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운전 중인 원전 18기가 한울, 월성, 고리에 배치돼 있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원전 10기 역시 울산시 울주군, 경북 울진군, 경북 영덕군에 배치된다. 경북도는 이 지역에서 ‘원자력 인프라’를 활용한 글로벌복합단지로 만들겠다는 ‘원자력산업 클러스터 단지 사업’을 6년째 추진하고 있다. 원자력수소 실증단지, 원자력 수출산업단지를 비롯해 원자력 테마파크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2028년까지 12조7천억원을 쏟아붓는다는 계획이다.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국비 지원을 받는 셈이다.

국내 전력에서 원전 의존도는 지나치게 높다. 2014년 기준 연간 30%를 원전이 책임졌다. 가스(22%)보다 8%포인트 많고, 석탄(39.0%)보다 9%포인트 적은 수준이다. 추가 전력은 얼마나 필요할까? 시기에 따라 필요 전력량이 달라지지만, 기사를 작성하는 4월7일 오전 11시 현재 한국에너지공단 ‘전력 수급 현황’을 보면 전력 공급 예비율이 31.9%였다. 이날 새벽 시간대 예비율은 60%를 넘기도 했다. 절반 이상이 버려지는 것이다. 독일이 2022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하고, 국경이 맞닿은 프랑스에 ‘국경 인근 노후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등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추세에 ‘역주행’하는 것이다.

‘탈원전 필요성’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높아지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린피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해 3월3일부터 9일까지 부산 거주 19살 이상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원전 건설 관련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신규 원전 건설을 반대한다’는 대답이 50.7%로 절반을 넘었다. ‘찬성한다’는 27.4%, ‘모르겠다’는 21.9%였다.

특히 고리 원전과 가까운 지역의 주민들은 열 중 예닐곱이 적극적 반대의 뜻을 드러냈다. 부산 수영구 주민의 경우 ‘반대한다’는 의견이 무려 74.9%였다. 금정구와 기장군은 각각 63.9%, 62.7%가 반대 의견을 냈다.

놀라운 것은 이번 여론조사에서 시민 84.3%가 ‘정부가 고리에 신규 원전 건설을 승인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고리에 예정된 신규 원전이 건설되면, 부산 주민들은 2080년께까지 원전 30km 안팎에서 생활하게 된다. 장다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선임캠페이너는 “시민 대다수가 신규 원전 승인 사실을 모를 만큼, 정부가 정보를 전달하지 않은 상태로 원전 건설이 추진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라며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주어지면, 반대 여론이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이 확산되면서 정치권에 대한 탈원전 압력도 커지고 있다. 그린피스 조사에서 ‘4·13 총선 때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 나와 의견이 다른 후보에게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한 비율이 23.1%였고, ‘가급적 투표하지 않겠다’는 의견이 20%였다.

부산시 국회의원 후보 절반 “신규 원전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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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를 정치권도 의식하고 있다. 그린피스가 지난 4월1일까지 원내정당(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부산시 국회의원 후보 46명에게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입장을 물었는데, 절반 이상인 27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찬성은 2명이었고, 무응답이 15명이었다. 정당별로는 더민주(18명)와 정의당(4명) 후보 전원이 반대 의견을 냈다. 새누리당은 18명 후보 가운데 12명(무응답)이 답변을 회피했다. 유재중(수영구) 후보가 유일하게 찬성 의견을 냈고, “안전성 검증과 주민 협의가 더 필요하다”(손수조 새누리당 사상구 후보)처럼 기타 의견을 낸 이는 2명이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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