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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면 나도 소수자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따돌림은 같은 고통… 차별을 몸으로 겪으면 너그러워진다
등록 2015-12-03 21:05 수정 2020-05-03 04:28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의 인터뷰 기사에는 언제나 악플이 달린다. 귀화한 지 20년이 넘는 한국 사람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까. 정용일 기자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의 인터뷰 기사에는 언제나 악플이 달린다. 귀화한 지 20년이 넘는 한국 사람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까. 정용일 기자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의 인터뷰 기사에는 언제나 악플이 달린다. 정치인 기사에 달리는 악플이 새로울 것 없지만, 그 악플에는 항상 많은 ‘좋아요’가 함께한다. 인터뷰 내용은 상식적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그마저도 대부분 그녀 삶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사람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경쟁하듯 악플을 단다.

그 악플은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종교가 단일민족 신화에 기초한 민족주의고, 그 종교의 교인이 될 수 없는 이들은 내내 한국 사람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람이 아닌 경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귀화한 지 20년이 넘는 한국 사람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그 말에 적극적인 동의를 표하는 이들은 자신의 행위가 지닌 의미를 알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두 편의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차별이 왜 우리를 아프게 하는지에 대해, 또 하나는 차별이 어떻게 우리를 길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모욕과 차별은 왜 사람을 아프게 하는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나오미 아이젠버거 박사는 2003년 과학전문지 (Science)에 실험 논문 한 편을 발표한다. 작은 방에 실험 대상자가 1명 들어가면, 그 앞에 컴퓨터가 놓여 있다. 컴퓨터에는 3명이 삼각형으로 서서 공을 주고받는 게임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고, 공을 나머지 두 사람 중 누구에게 전달할지 선택할 수 있다. 실험 대상자는 모르고 있지만, 나머지 둘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실험을 시작하고 처음 몇 분 동안 3명은 사이좋게 순서대로 공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실험자에게 공이 전달되지 않는다. 실험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이 계속 서로 공을 주고받는 것이다. 컴퓨터상에서 함께 게임하던 이들이 아무 설명 없이, 그렇게 자신을 게임에서 배제하기 시작한다.

아이젠버거 박사 연구팀은 게임이 시작한 시점부터 실험자의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기계를 이용해 촬영한다. fMRI는 뇌의 어느 지점에 혈류가 모이는지, 그래서 뇌의 어떤 부위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계다. 실험 대상인 사람에게 공이 오지 않기 시작했을 때, 게임 동료인 줄 알았던 이들이 자신을 그 관계에서 배제했을 때, 피해자의 뇌가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했던 것이다.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컴퓨터상으로 진행되는 따돌림으로 인해 뇌 전두엽의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부위가 활성화됐다. 인간이 물리적으로 통증을 경험하면, 즉 누군가가 나를 때려 아픔을 느끼면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에 혈류가 모이는 것이다. 우리 뇌는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따돌림을 같은 뇌 부위에서 인식하고 있었다.

이 연구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그들을 물리적으로 폭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모욕과 차별을 경험하고 부당하게 공동체에서 배제될 때, 피해자의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해 보여주었다. 모욕과 차별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1968년 4월4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살해된다. 미국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지만, 백인만 거주하는 아이오와의 작은 시골 마을 리치빌에선 그에 반해 너무 조용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제인 엘리엇은 자신이 담임을 맡은 3학년 학생들에게 이 비극적인 죽음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다.

제인 엘리엇의 실험… 파란 눈 무시하기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제인 엘리엇이 10살밖에 안 된 순진한 아이들의 삶이 ‘차별’ 이후 어떻게 바뀌는지 실험했다. 다양한 피부색의 아이들이 한 보육실에 모여 있는 모습. 한겨레 윤운식 기자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제인 엘리엇이 10살밖에 안 된 순진한 아이들의 삶이 ‘차별’ 이후 어떻게 바뀌는지 실험했다. 다양한 피부색의 아이들이 한 보육실에 모여 있는 모습. 한겨레 윤운식 기자

초등학교 3학년 백인 아이들 28명이 모인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묻는다. “애들아, 흑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건 아마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거야. 한번 경험해보지 않을래?” 선생님의 다정한 권유에 아이들은 당연히 “예”라고 답한다.

엘리엇 선생님은 칠판에 피부색을 구성하는 색소인 ‘멜라닌’(Melanin)을 적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멜라닌이라는 색소가 몸에 있는데, 이 멜라닌이 눈·머리카락·피부색을 결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실은 이 색소가 더 많은 사람이 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에요. 여러분의 눈을 보면 갈색과 파란색, 두 가지 색의 눈동자가 있지요. 갈색 눈을 가진 사람이 멜라닌 색소가 더 많은 거예요. 더 똑똑하고 더 우월한 사람인 거지요.” 그리고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의 목에 작은 목걸이를 달아준다.

‘우월한’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은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들만 새로 만들어진 운동장의 정글짐을 이용할 수 있고, 그들만 쉬는 시간을 5분 더 사용할 수 있었다.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은 교실의 앞자리에,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은 교실의 맨 뒷자리로 밀려났다. 그리고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은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과 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규칙 몇 가지가 시행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빠르게 변화했다. 한 번도 산수 문제를 어려워하지 않던 파란 눈의 여자아이가 간단한 빼기 문제를 틀리기 시작했고,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얼마 전까지 친구였던 그 아이를 둘러싸고 말한다. “너는 열등한 아이니까 우리에게 사과해야 해.” 발랄하고 당당했던, 실험 이전이라면 다른 아이들에게 주눅 들 리 없었던 그 아이는 놀랍게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사과한다.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파란 눈의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자기 의견을 말하길 주저하며 매사에 소극적인 아이로 변하고, 갈색 눈의 아이들은 그렇게 변한 파란 눈의 아이들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인종차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무서울 만큼 명확히 보여준 이 실험은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된다. 실험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나누어진 교실’(A Class Divided)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되기도 하고, 관련 내용이 여러 공중파 TV에서 다뤄진다. 특히 1992년 제인 엘리엇은 에 출연해서 청중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진행한다.

그와 동시에 그는 거대한 윤리적 비난에 시달린다. 10살밖에 안 된 순진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그토록 가혹한 실험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제인 엘리엇은 한마디로 답한다. “당신이 백인 아이의 그 연약한 자아가 몇 시간 동안 경험하는 차별에 대해 걱정한다면, 평생 그런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흑인 아이에 대해서는 왜 그리 침묵하느냐?”

그 실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험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나서, 엘리엇 선생님은 말한다. “애들아, 선생님이 확인해보니까, 우월한 사람들은 갈색 눈이 아니라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규칙을 바꾸도록 하자.” 선생님의 이야기로, 두 집단의 위치는 역전되고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에게 부여됐던 특권이 고스란히 파란 눈의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한 번 피해자의 경험을 가진 파란 눈의 아이들은 ‘우월한’ 집단이 되어서도 ‘열등한’ 갈색 눈의 아이들에게 훨씬 더 너그러웠다. 제인 엘리엇은 그 경험 속에서 이 실험이 중요한 교육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차별을 받아보았던, 소수자가 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해 더욱 조심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차별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주는 교훈에 주목하고 이 실험을 노동자, 교사 등 다양한 집단에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행한다.

인종마다 다르게 차별하는 한국인

사람들은 흔히 한국의 인종차별이 2000년대 이후, 결혼이민에 따른 다문화 가족의 증가에 따라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있었다. 박경태 교수의 책 는 혼혈인이 한국 사회에서 오래전부터 어떤 존재로 취급됐는지 충실히 묘사하고 있다.

피부색으로 인해 한국인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던 한 혼혈인이 자신의 검은 피부를 바꾸기 위해 “어렸을 때 우유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이유는 어린 마음에 우유를 계속해서 마시면 피부가 하얗게 된다고 믿었던 거다”라고 하는 말이나, 혼혈인 중 75%가 넘는 이들이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다는 통계를 보면 한국에서 오랫동안 질기게 이어져온 잔인한 인종차별을 확인하게 된다. 인종차별은 있었으되, 다만 한국 사회가 그 문제를 무시하고 숨겼을 뿐이다.

지난 20년간 한국에 체류하는 이민자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은 국제결혼을 통한 이민자이다. 1990년 기준으로 전체 결혼의 1%(4710건)에 불과했던 국제결혼이 2005년 13.5%(4만2356건)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2013년에는 다소 줄어들었어도 여전히 전체 결혼의 8%(2만5963건)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 다문화 가족 실태 조사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결혼이민자 중 28.9%가 직장이나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고, 26%가 상점이나 음식점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중요한 사실을 가리고 있다. ‘과연 한국인들은 다른 인종을 동등하게 차별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데이터를 출신 국가별로 나눠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장이나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했던 이는 서구권 출신 남성에서는 27.8%에 불과하지만, 베트남·중국·필리핀 등 비서구권 남성 결혼이민자는 41.6%가 차별을 경험했다. 또한 서구권 출신 여성 중에서는 11.1%가 상점이나 음식점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나, 비서구권 출신 여성은 같은 질문에 대해 26.1%가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한국 사회는 비서구권 여성에게 가장 잔혹하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라는 설문조사가 있다. 전세계 국가에 같은 질문을 주기적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다른 인종의 사람이 이웃으로 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은 응답자 중 36.4%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시행된 설문에 참여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스웨덴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응답한 이들이 1.8%로 한국의 20분의 1 수준이며, 미국에선 ‘다른 인종을 이웃으로 못 받아들이겠다’는 응답자가 4.1%로 한국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진보적 복지국가인 스웨덴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미국 유학 경험에 비춰보면 미국인 중 4.1%가 ‘다른 인종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진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더 높을 것이다. 다만 미국인은 적어도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자신의 답변이 인종차별적이지는 않을까 조심하는 최소한의 교양을, 한국인에 비해 좀더 가지고 있던 것이라 믿는다. 물론 그 교양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 흑인민권운동을 통해 미국 사회가 습득한 것이다.

한국 36.4% “다른 인종 이웃 아니다”… 미국 5배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된 이민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과연 한국 사회가 세계화 시대에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되묻게 된다. 인터넷과 일상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들은 자신들 역시, 한반도만 벗어나면 소수 인종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정책관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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