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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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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과 한국 노동 현실

등록 2015-07-14 06:11 수정 2020-05-02 19:28

백종원을 방송에서 처음 본 것은 몇 해 전 이었다. 그가 심사위원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놀랐다. 아무리 ‘쇼’라지만 좀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외식 비즈니스에서 성공했으니 프로페셔널 요리인을 ‘심사’할 수 있다는 식의 안이한 발상이 영 마뜩잖았다. 백종원이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경영하는 몇몇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어본 적도 있다. 극도로 달고 짜고 매웠다. 강한 자극으로 미각을 둔하게 만들어 재료의 낮은 질을 가리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그 백종원이 요즘 대세다. 요리예능의 아이콘이자, 국민적 ‘요리 멘토’가 됐다. TV를 켜면 온통 “백 선생”이다. 환호만 있는 건 아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이렇게 말한다. “(백종원은) 요리사가 아니라 외식사업가일 뿐이다. 그의 음식은 그럭저럭 먹을 만한 거지 맛있는 건 아니다.” 당연하게도 황교익은 백종원 팬들의 거대한 역공에 직면했다. ‘같은 업계 백종원이 확 뜨니까 질투 나서 저런다’는, 늘 비판자에게 따라붙는 꼬리표도 붙었다. 백종원은 겸손하게 다시 몸을 낮췄다. “황교익을 평소 존경해왔다. 이 비판을 ‘디스’라고 생각 안 한다. 난 요리인이 아니고 사업가가 맞다. 전문 요리인이 사이클 선수라면 난 세발자전거를 타는 수준이다.” 팬들은 “역시 백 선생 쿨하다”며 엄지를 세운다.

백종원이라는 자연인을 두고 찬반양론을 가르는 일은 옳지 않으며 실익도 없다. 그보다는 ‘왜 백종원이 지금 이렇게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는가’라는 질문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그러려면 먼저 백종원을 요리인·사업가라는 구도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지 물어야 한다.

글머리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나에게 처음부터 물음표였던 의 백종원은 방송이 거듭될수록 느낌표로 변해갔다. 그는 전문 요리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개 외식사업가’라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었다. 식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그의 해박함은 어지간한 요리사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스스로 털어놨듯 백종원은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다. 풍족했던 집안, 미식가였던 부모님 아래서 자라며 어릴 때부터 맛있고 진귀한 음식을 마음껏 먹어왔던 사람이다. 고약하게 말해서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오히려 별 자격지심 없이 설탕을 그렇게 음식에 ‘때려부을’ 수 있는 것이다.

백종원은 전문 요리인이 아니라, 외식사업가가 맞다. 하지만 그 이전에, 백종원은 요리에 관해 만만찮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감식가(connoisseur)다. “방송천재”라고 불리는 것처럼 미디어를 다루는 센스, 대중과 소통하는 감각이 탁월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즉 성공한 사업가라는 후광, 해박한 요리 지식, 방송에 대한 탁월한 센스. 이 세 가지가 백종원의 개인적 매력을 구성하고 있다.

더 중요한 점은 백종원 신드롬을 불러온 사회환경이다. 왜 사람들은 백종원의 ‘집밥’, 그러니까 원래 재료가 아닌 대체재료, 속성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에 저리 열광하는가? 좋은 재료를 확립된 레시피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면 어떤 음식이든 맛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런 음식은 어마어마한 비용을 요구한다는 것, 따라서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것.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그런 음식을 만들 여유가 없다.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사회, 야근과 휴일근무가 일상인 나라에서 ‘집밥을 제대로 해먹는다는 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요 부담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크푸드를 배달시켜 먹기엔 눈이 너무 높아져 있다. 돈도 시간도 없는데, 그렇다고 싸구려처럼 보이는 음식은 먹기 싫은 대중의 심리를 백종원은 정확하게 꿰뚫는다. “자, 보세요. 있어 보이쥬?”

최고의 재료를 숙련된 기술로 요리한 음식이 우리의 로망이라면, 최소한의 재료와 노동으로 ‘있어 보이는’ 식탁을 차려내는 것은 우리의 ‘니즈’(needs)다. 한국에서 그걸 가장 잘하는 사람이 백종원이다. 그러므로 백종원의 유쾌한 레시피는 하나의 백서다. 초과노동과 불황으로 ‘하얗게 소진된(burn out)’ 2015년 한국인 백서.

글 박권일 칼럼니스트
그래픽 김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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