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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PD만 보는 신문 넘어설 것”

창간 20돌, 전면적 혁신 모색하는 <미디어오늘> 이정환 편집국장 “논리 갖춘 엄밀한 매체 비평… 주류 언론이 취재하지 않는 곳을 가는 게 우리의 생존 방식”
등록 2015-05-21 06:00 수정 2020-05-02 19:28

“진실된 보도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흔들리지 않는 언론상을 만드는 데 힘써달라.”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인 2005년, 의 창간 10주년을 축하하며 보낸 메시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기념식에 보낸 축하 영상에서 말했다. “언론이 달라지면 정치도 달라지고 국민도 달라진다.”
은 1995년 감시견을 감시하는 ‘언론의 언론’을 표방하며 태어난 미디어 비평 매체다. 현직 언론인이 모인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조)이 조합원을 대상으로 만들었던 ‘언론노보’를, 일반 시민을 독자로 한 미디어 전문지로 전환시켰다. 주 1회 종이신문이 발간되며 누리집에서는 매일 기사가 업데이트된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도 가혹하게 비판하려

정치적 이념을 떠나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언론 감시 역할을 주문받았던 10년 전에 비해, 2015년 창간 20돌 풍경은 조금 달랐다. 야권 인사들은 5월13일 열린 기념식에 참여했지만 정부·여당 관계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참여하기로 했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못 왔다. (여야) 균형을 맞췄으면 좋았을 텐데. 조·중·동 사람들도 10년 전엔 왔지만 이번에는 오지 않았다.” 기념식 다음날인 5월14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이정환 편집국장(사진)이 말했다. 낮은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과거 이 경기장 바깥에서 감시자 역할을 하는 걸로 인식됐다면, 지금은 같이 뛰는 선수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 같다. 정파성에 대한 선입견도 심해졌다.”

큰 행사를 치러낸 뒤인데도, 편집국엔 긴장이 짙게 감돌았다. 이정환 국장은 “매체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에, 바뀌지 않으면 내년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주간 , 월간 등에서 기자로 일하다 2007년 에 합류해 경제뉴미디어팀장, 미디어IT부장 등을 지냈다. 2011년 10월부터 1년 동안 한 차례 편집국장을 지냈고, 2015년 2월 두 번째로 편집국장에 취임했다. ‘이정환닷컴’을 운영하는 블로거로도 유명하다. 그는 “온·오프라인 전반에 걸친 전면적 혁신”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20주년을 맞이해 이 발표한 여러 글을 보면, 정파성과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겠다는 다짐이 반복된다.

한국에서는 진실을 말하려고 하면 종북이나 좌파로 몰린다. 어떤 사람은 (2009년 공정언론시민연대 등 보수 성향 단체들이 만든 미디어비평 매체. 창간준비 보도자료에서 “매체비평 시장은 같은 좌파 매체가 독점하고 있다”면서 “기존 매체비평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언론인들의 불안감을 키워 언론을 죽이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고 밝혔다)의 반대편에 이 있다고 한다. 모욕적이지만, 고민할 부분이 있다. 편집국장 출신이 과거 참여정부 때 청와대로 들어간 ‘흑역사’도 있다. 보수 성향 매체들은 과거에는 이 비판하면 아프게 받아들였는데 이제는 ‘상대 진영’ ‘적’이란 선입견으로 비판을 아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독자에게도 이 를 저널리즘적 기준으로 비판하기보다 ‘조·중·동이어서’ 비판한다고 읽히면 곤란하다. 정파적으로 비치지 않는 게 저널리즘 비평의 핵심이고 신뢰의 기본이니까. 계속 고민한다. 비슷한 고민에서 도 가혹하게 비판하려고 한다.

자본-언론 ‘나쁜 거래’ 기록 남겨
은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에서 출발했고 1999년 독립채산제로 전환했지만, 언론노조가 대주주다.

20주년 기념식에서 은 언론노조의 기관지가 아니란 말을 했다. 대주주가 언론노조인 건 맞지만, 언론노조도 비판해야 할 때는 비판한다. 그렇지만 은 기본적으로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를 지향한다. 주관 없는 비평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정파성을 극복하는 건 색깔을 갖지 않는 게 아니다. 보도에서 정파성을 전제하지 않고 과학적·논리적으로 엄밀하게 비평하면 된다고 본다.

안기부 언론팀 명단 공개(1995년), 황우석 교수팀 내 ‘여론전’ 담당 비공식 조직 보도(2005년) 등 ‘ 대표 기사 20선’을 뽑아서 공개했다.

대표라고 뽑은 기사들은 큰 특종으로 의미 있다기보다, 언론계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문제가 많지만 잘 바뀌지 않는 ‘관행’에 문제제기를 해서 한국 언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 게 많다. 엠바고 파기 보도(소말리아 해적이 납치한 삼호주얼리호, 제미니호 관련. 각 2011년, 2012년) 같은 경우 당시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의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판단하진 않지만, 정부의 행정 편의적 엠바고와 이에 맞춰주는 한국 언론의 출입처 중심주의에 문제를 제기한 의미가 있다고 봤다.

이정환 국장은 “사실 정말 자랑하고 싶은 건 의 일상 기사들”이라고 했다. 기사 제목이 미심쩍게 바뀌었거나 기사가 아예 사라진 일 등을 그때그때 보도한 기사들을 말한다. “수면 아래 자본과 언론, 권력과 언론의 음습한 거래를 폭로하는 기사들이 중요하다.” 2년 전 은 포스코가 한 경제지에 기사 삭제를 요구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보도했는데, 당시 삭제된 기사가 담고 있던 ‘삼창기업 특혜 인수 의혹’은 현재 검찰이 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로 수사 중이다.

의 일상 기사는 언론학자에게도 소중하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20주년을 축하하는 글에서 “은 언론학을 포함한 각종 미디어학이 미디어 현장과 겉도는 공리공론으로 흐를 위험을 예방해주는 동시에 각종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이 미디어 지배력이 날로 강해져가는 이 세상에서 미디어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미디어 백과사전’으로 영원히 존재하면 좋겠다. ‘강한 주장’보다는 ‘철저한 팩트’ 중심으로 가면 좋겠다”고 썼다.

마이너 정체성 인정하고 ‘틈새’ 공략
이 2015년 5월13일 창간 20주년을 맞아 발행한 기념판 1면 모습

이 2015년 5월13일 창간 20주년을 맞아 발행한 기념판 1면 모습

미디어 전문지면서 직접 사회 이슈를 취재해 대안 언론으로서도 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두 역할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유는 뭔가.

에는 ‘미디어’와 ‘오늘’의 두 가지가 있다. ‘미디어’는 뉴스의 생산 구조를 파악하고 뉴스의 심층, 이면을 밝히는 일을 상징한다. ‘오늘’은 비평을 보강하기 위한 현장 취재와 검증이다. 경영 차원의 이유도 있다. 어뷰징(동일기사 반복전송)을 거부하고 수영복 사진 같은 걸 걸지 않는 한, 종합언론으로서 역할하면서 독자 저변을 넓혀야 한다.

천안함 보도가 독특한 경우인데, 현재는 많은 논의가 이뤄져 있지만 사건 직후에는 ‘정부가 북한 소행이라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위협도 많이 느꼈다. 지금도 ‘북한의 폭침이 아니라면 실체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정확한 답을 못 낸다. 계속 취재를 하지만 아직 실체에 접근 못한 거다. 문제는 주류 언론들이 해당 사건을 의심의 영역으로 접근하지 않는데다, 이후에도 사건의 실체를 추적 보도하지 않는다는 거다. 은 천안함 관련 공판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해 기사를 쓰고 있다. 쓸 때마다 엄청나게 읽힌다. 천안함 섬네일(작은 이미지)만 걸어도 그날 누리집 페이지뷰가 다른 날의 2배 가까이 오른다.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읽고 궁금해하는 이슈라는 거다. 주류 언론이 무엇을 취재하지 않는지를 보는 게 의 생존 방식이고 경쟁 방식인 것 같다.

올해 편집국장에 취임하면서 “생존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쳐 전면적인 혁신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했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한 건 의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의미다. 이미 적자가 나는 상황이라, 한동안은 버티더라도 오래는 기약할 수 없다. 그나마 버틸 수 있을 때 매체 퀄리티와 영향력, 충성도를 높여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조·중·동을 적으로 상정하고 공격하는 것 같은 인상비평 격 기사를 벗어나서 수준 높은 미디어지로 거듭나야 한다. 주류 언론과 을 필수적으로 병독해야만 사회 이슈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노력, 신뢰 확보가 급선무다. 그걸 토대로 하면 모를까, 지금 수익모델을 고민할 단계는 아니다.

‘맥락 저널리즘’ 디지털로 구현
전문성을 강화한다고 했는데, 에 입사한 젊은 기자들의 퇴사와 이직이 잦고 근속연수가 오래된 기자가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기자 취재, 언론 취재가 어렵다. ‘언론의 언론’이라는 게 명예롭다기보다는 부수적 역할을 한다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동업자 의식이 강한 언론사들이 무척 폐쇄적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보도국장에게 해명을 들으러 간 기자가 신분을 밝혔음에도 쫓겨나고 침입죄로 고발까지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류를 지향하더라도, 기꺼이 마이너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주류의 틈새를 공략하면 된다고 본다. 그동안은 롤모델이 충분치 않았다. 속에서 전문 기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려 한다.

은 최근 온라인에서 ‘미디어오늘 스페셜’ 영구 베타 서비스를 공개했다. 이슈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맥락 저널리즘’을 디지털로 구현하려고 했다. 향후 미디어 이슈를 다루는 ‘블랙’ 페이지와 이슈별 타임라인을 볼 수 있는 ‘레드’ 페이지로 구별된 새 누리집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익명 제보 디지털 플랫폼 ‘미디어리크스’, 팟캐스트 ‘오늘 미디어’, ‘오보의 역사’ 서비스를 선보이고, 국내 언론 환경에 맞는 미디어 모듈 개발 및 무료 공개, 경제신문읽기교육(ENIE) 커리큘럼 개발, 유료 독자 서비스 확대 등도 준비 중이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조직이 ‘콤팩트’한 은 디지털 혁신을 이뤄내는 데 있어 비취재 인력 비중이 높은 주류 언론에 비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주년을 맞아 ‘저널리즘 원칙으로 돌아가 뉴스에 집중하겠다’고 공표한 자체가 이미 발 빠른 혁신이다.”

이정환 편집국장에게 “10년 뒤 이 어떤 모습일 것 같은지” 물었다. “망하지 않는다면”이란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웃음기는 없었다. “망하지 않는다면 기자·PD만 보는 신문이 아니라, 작지만 누구나 찾아보는 신문이 되어 있었으면 한다. 격이 높은 신문을 만들어보고 싶다. 논리적이면서도 핫(hot)한 신문.”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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