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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동포의 집을 찾다

‘애니깽’ 연작으로 2017 월드프레스포토 ‘사람’ 부문 1위 수상한 마이클 빈스 김
등록 2017-03-09 14:09 수정 2020-05-02 19:28
젊은 한국계 마야인 4세들이 2016년 8월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에 사는 ‘애니깽’ 2세 호아킨 리의 구순잔치에 참석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1900년대 한국에서 온 남성들은 당시 현지 마야 여성들과 결혼했고, 결과적으로 멕시코에 있는 한국계 후손은 대부분 한국계 마야인이다. WPP재단 제공

젊은 한국계 마야인 4세들이 2016년 8월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에 사는 ‘애니깽’ 2세 호아킨 리의 구순잔치에 참석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1900년대 한국에서 온 남성들은 당시 현지 마야 여성들과 결혼했고, 결과적으로 멕시코에 있는 한국계 후손은 대부분 한국계 마야인이다. WPP재단 제공

월드프레스포토 재단은 매년 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보도사진 공모전 수상자와 수상 작품을 발표하면서 국제사회가 주목해야 할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네덜란드 사진기자들이 1955년 모여 만든 보도사진 공모전이 모태다. 보도사진 공모전 중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이 공모전에 지난 한 해에만 125개국 사진가 5034명의 사진 8만408장이 접수됐다.

세계 보도사진 공모전 2017 월드프레스포토(World Press Photo) ‘사람’ 이야기 부문 1위에는 한국계 미국-아르헨티나 사진가 마이클 빈스 김(아래 사진)의 ‘애니깽’ 사진 연작이 올랐다. 마이클의 사진 작업에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일본 인력송출회사의 이민 사기로 멕시코행 노예선에 오른 한국인 이민 1세대 1천여 명과 그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돈을 벌기 위해 떠났지만, 이들은 ‘에네켄’ 선인장 농장에서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도망갈 곳이 없어 농장주의 계속되는 반인권적 노동착취와 폭행을 견뎌야 했다. ‘애니깽’은 선인장 ‘에네켄’의 한국식 발음이다. 마이클의 월드프레스포토 수상 소식이 알려진 뒤 2월15일부터 3월 초까지 소셜미디어 메신저, 전화를 통해 8차례 마이클과 인터뷰한 내용을 전한다.

1905년 일본 업체 이민 사기 피해자들
WPP재단 제공

WPP재단 제공

2016년 8월 마이클은 멕시코 유카탄의 주도 메리다에 사는 ‘애니깽’ 2세 호아킨 리의 구순잔치를 찾았다. 1세대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고 2세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호아킨은 마이클에게 자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에네켄 농장주의 폭압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재규어 같은 맹수를 피해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잠을 청했다는 이야기부터, 농장주의 노동착취 아래서 함께 노예처럼 일한 원주민 마야 사람들과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까지 이민자의 애환이 담긴 내용이 90번째 생일을 맞은 그의 입에서 구슬픈 노랫말처럼 흘러나왔다. 지금 ‘애니깽’ 후손은 대부분 한국계 마야인이며, 순혈 한인 동포는 드물다.

“우리 애니깽들은 노예처럼 살았다. 그래서 일부는 탈출을 시도했지만, 곧 잡혀와 두들겨 맞았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멕시코와 쿠바에서 사는 한국 후손을 기억해달라고 전해달라.”

2016년 멕시코와 쿠바에 각각 한 달씩 머무는 동안, 애니깽과 현재 4세대에 이른 후손을 주제로 작업하며 들은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마이클의 가슴 한쪽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마이클 역시 이민자의 후손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던지는 여러 질문은 애니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특별하게 뭘 하려고 멕시코와 쿠바에 간 건 아니에요. 그저 전해들은 에니깽의 역사를 마음에 담고 그 여정을 떠났던 거예요. 오래전 한국을 떠난 동포들을 만나고 싶었고, 대화하고 싶었고, 그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어요.”

마이클의 작업을 보면, 애니깽이 처음 도착한 멕시코 유카탄의 항구도시 프로그레소 전경, 벽에 걸린 오래된 녹색 한복, ‘한국’이란 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계 마야인 후손의 모습 등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인류학적 관점의 질적 연구가 사진에 담겨 있다. 1대1 포맷 중형 카메라로 촬영된 그의 사진에는 특유의 색감이 드러나는데, 여기서 풍기는 노스탤지어는 관객을 100여 년 전 지구 반대편에 있던 애니깽 곁으로 데려다준다.

‘애니깽’이 1905년 한국을 떠나 긴 항해 끝에 처음으로 땅을 밟은 곳은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프로그레소로, 이들은 이 항구에서 내려 메리다에 있는 에네켄(선박용 밧줄을 만드는 데 쓰이는 선인장) 농장으로 이동했다. 2016년 8월 멕시코 프로그레소 항구 전경. WPP재단 제공

‘애니깽’이 1905년 한국을 떠나 긴 항해 끝에 처음으로 땅을 밟은 곳은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프로그레소로, 이들은 이 항구에서 내려 메리다에 있는 에네켄(선박용 밧줄을 만드는 데 쓰이는 선인장) 농장으로 이동했다. 2016년 8월 멕시코 프로그레소 항구 전경. WPP재단 제공

쿠바에 사는 한인 동포 올가와 아델리나 자매가 2016년 9월 자신의 집 소파에 앉아 있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현지인과 섞이지 않은 한인 동포로, 쿠바뿐만 아니라 멕시코에 사는 ‘애니깽’ 후손 중 이들처럼 순혈 한국인은 매우 드물다. 이 자매의 아버지인 임천택씨는 쿠바 한인 커뮤니티를 이끈 유명 인사다. WPP재단 제공

쿠바에 사는 한인 동포 올가와 아델리나 자매가 2016년 9월 자신의 집 소파에 앉아 있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현지인과 섞이지 않은 한인 동포로, 쿠바뿐만 아니라 멕시코에 사는 ‘애니깽’ 후손 중 이들처럼 순혈 한국인은 매우 드물다. 이 자매의 아버지인 임천택씨는 쿠바 한인 커뮤니티를 이끈 유명 인사다. WPP재단 제공

한국계 마야인 ‘애니깽’ 후손의 전통 한복이 벽에 걸려 있다. 이 후손은 할아버지 이전 세대가 썼던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열망이 높다. WPP재단 제공

한국계 마야인 ‘애니깽’ 후손의 전통 한복이 벽에 걸려 있다. 이 후손은 할아버지 이전 세대가 썼던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열망이 높다. WPP재단 제공

‘고려사람’ 작업은 매그넘 수상도

마이클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자란 이민 3세다. 1977년, 그의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할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볼리비아로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움직였다. 당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한국인 대부분은 아메리칸드림을 위해 미국을 종착지로 생각했고, 이곳 한인공동체에서 만나 결혼한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그 꿈을 좇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얼마 뒤 1986년, 마이클은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생후 4개월 만에 부모와 함께 다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왔다.

2001년 아버지는 자신이 1980년대부터 써온 일안반사식 카메라를 15살 아들의 손에 쥐여줬다. 그 카메라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포기한 아버지의 젊을 적 꿈이 담겨 있었다. 아들은 그 카메라의 초점을 이민자 후손이 가지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맞췄다. 그리고 세계를 다니며 한인 동포들의 언어와 문화를 연구하는 사진가가 됐다.

마이클은 이미 ‘애니깽’ 작업 이전부터 ‘고려사람’ 작업을 통해 한인 동포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석사과정으로 언어학을 공부하던 중 중앙아시아 거주 한인 동포들이 사용하는 함경도 방언과 이들 특유의 언어에 관심을 가졌고, 2014년 연구조사차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세 차례 여정을 떠났다. “난 카자흐스탄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니다. 난 고려사람이다.” 마이클은 아직도 이들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항상 외국인이어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고려사람’ 위에 투영돼 있었다.

‘고려사람’ 사진 작업은 언어 연구라는 본래 의도를 넘어 보도사진 집단인 ‘매그넘’ 주관 ‘30살 미만 30대 사진가’(30 Under 30) 사진 공모에 선정돼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사진 전문 월간지와 수원국제사진축제를 통해 한인 동포에 대한 마이클의 작업이 소개됐다. 이후 그는 영국 런던에서 사진학 석사과정을 공부했고, 현재는 유럽에서 살고 있다.

‘집’의 의미를 묻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닌 그는 어디서도 ‘집’(home)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저는 어디서나 외국인이에요. 아르헨티나에서는 다른 외모와 미국 태생이란 이유로, 미국에서는 라틴 문화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한국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국인이 돼야 했죠.” ‘집’을 찾고 싶었던 마이클은 2006년 정부가 주관한 재외동포 대상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 서울에 머물며 대학로 국립국제교육원에서 한국 문화와 언어를 공부한 적도 있다.

세계적인 보도사진상을 받은 그는 스스로를 ‘사진기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진은 제가 연구하는 대상을 기록하고 보여주는 수단에 불과해요. 어쩌면 사진가라는 소개도 언어학과 역사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저 ‘마이클’을 한정짓는 것 같아요.”

마이클은 사진 공모에서 수상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여러 공모를 통해 사진으로 취재한 한인 동포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는 이번 2017 월드프레스포토 수상 이후 미국에 사는 한인 동포로부터 받은 특별한 전자우편 내용을 소개했다. “조부모님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났고, 더 이상 한국 관련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당신의 사진을 보고 지금 나 자신의 정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마이클에게는 수상보다 이런 소통이 더 중요하다. 작업 시작부터 사진 공모 수상까지 모든 과정은 지금 그에게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의미 있는 경험이 되고 있다.

마이클은 이번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진작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말했다. “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자란 한인 동포예요. 국제 이민이 빈번해지는 세계화 사회에서 아마 ‘민족’은 우리 한인 동포에게 뿌리와도 같은 상징이 될 거예요.”

“한인 동포 연구 계속할 것”

그는 앞으로 자신만의 정체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인 동포에 대해 계속 연구해나갈 예정이며, 올해 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돌아가 ‘고려사람’ 작업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다. 한인 동포에 대한 더 많은 사진은 마이클과 ‘월드프레스포토’ 누리집에서 각각 볼 수 있다.

http://www.michaelvincekim.com

https://www.worldpressphoto.org/collection/photo/2017/people/michael-vince-kim

김성광 디지털기획팀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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