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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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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 이탈과 ‘미등록’ 증가는 필연적

고용주가 말하는 고용허가제의 폐해
등록 2014-12-05 06:52 수정 2020-05-02 19:27

“한국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하러 오지 않는 곳이다.”
수도권에서 양돈사업을 하는 한 농장의 대표는 말했다. 그는 ‘내국인 일자리 보호’를 중심에 두고 설계된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탈을 부추긴다고 했다. 고용허가제는 ‘단기순환’(3년 체류 뒤 고용주가 1년10개월 연장 가능) 원칙과 사업장 변경 금지를 뼈대로 한다. 이주노동자의 ‘내국인 일자리 위협’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현장 고용주들의 말은 다르다.
“돼지 축사에서 일하겠다는 한국인이 없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인데 일자리를 보호해줄 한국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노동현장과 정부가 보호하겠다는 내국인의 일자리엔 공통분모가 없다는 얘기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만 악화시키는 사태를 낳는다. 이주노동자들을 미숙련 노동과 저임금 구조에 가둬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을 부추기기도 한다. 사업장 이탈과 ‘미등록’ 증가는 필연적이다.
“어쩌다 일하겠다는 한국인의 경우 무경험자여도 월급은 200만원부터 시작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50만원 정도면 고용한다. 아무리 숙련 노동자여도 200만원 이상은 주지 않는다. 일은 이주노동자들이 웬만한 한국인보다 훨씬 잘한다. 누굴 쓰겠나.”
일부 고용주들의 미등록 노동자 선호는 고용허가제의 맹점과 무관치 않다. 4대 보험 가입과 상여금·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 땅을 갓 밟은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일과 언어 모두 서툴다. 한국에서 오래 일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숙련도와 언어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 양돈농장 대표는 말했다.
“우리도 일 잘하는 노동자가 좋다. 이주노동자들을 필요할 때만 쓰고 내쫓는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 원하는 만큼 마음 편히 머물며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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