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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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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자연의 골수를 빼먹고 비대해진 자본권력

4대강 사업 반대·탈핵운동 펼치는 이원영 교수가 걸어가는 강, 미래 세대, 교육을 위한 길
등록 2014-08-01 06:37 수정 2020-05-02 19:27
김명진 기자

김명진 기자

정식 명칭은 ‘4대강 살리기 사업’입니다. 분명 ‘살리기’ 사업이었는데, 지금 4대강은 인위적으로 색칠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만큼 진초록의 녹조와 배를 뒤집은 물고기, 펄로 가득한 바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대혼란에 몸서리치면서 한편으론 우리 사회가 겪어온 지난 일들을 찬찬히 돌이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던 4대강 사업은 엄청난 국고를 탕진하면서까지 추진될 수 있었는지, 우리 사회에는 합리적 소통을 위한 그 무엇이 결여돼 있었는지를 반성적으로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이원영 교수는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 정책위원장과 대한하천학회 상임이사를 지냈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강 체험 사업인 ‘333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인물입니다. 4년 전 내성천에서 만났던 인연으로 인터뷰를 요청하려 연락해보니, 이 교수는 수원대 사학비리와의 투쟁에서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았다는 이유로 지난해 겨울 수원대로부터 파면 처분을 받아 취소 소송 중에 있었습니다.

운하 찬성하는 교수는 100명도 안 돼

-요즘 4대강의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생태적 문제를 떠나서라도, 4대강 보의 유지·관리비가 워낙 비싸서 지금 상태로는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아마 내부에서도 원상 복원하는 걸 고려하고 있을 거예요. 이미 전남도지사와 광주시장은 영산강을 원상 복원하겠다고 했습니다.

-4대강 사업의 본질적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우리 사회가 독재권력을 지나 자본권력의 시대로 왔다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정치권 차원에서 의사결정하는 단위 금액이 커지고 자본과 정치권의 야합 또는 유착이 갈수록 더욱 심해져왔습니다. 토건경제만 놓고 보더라도 고속도로와 아파트에 기업도시, 혁신도시, 고속철도식으로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그런 놀음이 계속되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더 이상 할 게 없으니 운하사업으로 온 겁니다. 비대해진 자본과 권력이 달라붙어 국민과 자연의 골수를 빼먹는 4대강 판이 벌어진 거죠. 본질은 4대강이나 원전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교수들이 어용화되었죠. 하지만 숫자로 보면 운하반대교수모임에 가입한 교수가 2500명인 데 비해 4대강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교수는 100명도 안 됩니다. 외국 기자가 취재 와서 이렇게 많은 학문 연구자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게 신기하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선 사람은 소수였고, 공무원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정권에 그대로 투항·협력했습니다. 기존 하천관리 국가정책에 완전히 역행하는 사업인 줄 알면서도 말이죠. 반대 교수들은 대부분 그냥 의사표현만 하고 끝났지요. 자기 분야에서 좀더 열심히 발언해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이 경제적 효과가 없다는 것이 지금은 다 드러났는데, 경제학자들 중 이준구·홍종호 교수 외에는 적극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눈에 잘 띄지 않더군요.

4대강 주도는 이명박, 공신은 박근혜

-생태 문제 등 4대강을 둘러싼 학문적 진실이 하나라면, 왜 부당한 사업에 적극 찬성하거나 침묵하는 교수들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교수들이 정부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연구비를 받고 자문도 하는데, 이게 지장이 있으니까요. 특히 4대강과 관련해 토목공학 분야는 시장 자체가 단위 금액이 크고 발주처가 공공기관인 경우가 많고 사업도 항상 팀 단위로 움직이다보니 정·관계, 학계, 업계가 마피아처럼 형성돼 있어 개개인의 학자적 양심이 버티기 어렵습니다. 4대강 사업에 적극 반대했던 박창근·박재현·허재영 교수 같은 분들은 정말 훌륭한 분들입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면 연구비가 안 나오게 되고, 그러면 자기 돈을 들여 연구하고 논문을 내야 하는데,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나아가 지식인에게 학문적 진실을 수호하고 가르치도록 하는 덕목이 우리 사회에 있느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저 자신도 교수가 되면서 학문적 진실을 수호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는지 돌이켜보면 지도받은 적이 없습니다. 각자 자기 전공지식만 추구하는 거지요.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세상은 이렇게 가야 한다는 가치, 보편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가 신념으로 내재화돼 있지 못한 게 지금 한국 사회입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해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지요.

=1997년 경기도로부터 경부운하 보고서의 검토 의뢰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말이 안 되는구나 하는 걸 이미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 계획이 폐기된 줄 알았는데 10년 뒤 이명박 대통령이 나와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라고 다시 내미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피가 거꾸로 도는 기분이었죠. 이건 국토와 생태를 망치는 거라는 학문적 확신에서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다보니 뜻을 같이하는 교수들과 연락이 되어 정책위원장을 맡게 되고 자꾸 일을 더 맡게 된 거죠.

-‘333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습니다. 거의 매주 내성천을 찾아갔죠.

=333프로젝트는 버스 333대에 1만 명의 사람들을 태워서 우리 강 체험을 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영주댐을 짓고 있는 내성천에 가서 우리 강과 강모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직접 보고 느끼게 하는 것이었는데요, 2011년 봄에 1만2천 명을 넘겼습니다. 한겨레와 함께 그 경과나 의미를 크게 다뤄보자고도 했었는데, 그 무렵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발생했고, 제 개인적으로는 그 사건이 더욱 큰 충격이고 전환점이 되다보니 333프로젝트의 종결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죠.

-목표대로 1만 명 넘게 다녀왔습니다. 프로젝트는 성공인가요.

=성공입니다. 다녀온 사람들이 우리 강이 아름답고 자정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간 생각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진실은 계속 존재하는 것이고 점차 사람들 속에서 커지고 확산됩니다. 그게 중요한 거예요. 우리 강을 복원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깔려 있는 거죠.

-그것만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강행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은 정치의 역할입니다. 시민사회나 학자들이 반대 명분과 진실을 이야기하고 호소하면 그걸 받아주는 것이 정치이고 책임 있는 정치인이 할 일이죠. 사실 그 무렵 현 대통령인 박근혜씨의 입장에서 정책 방향을 틀어버릴 수 있는 명분을 시민사회가 충분히 제공했다고 봅니다. 우리가 착오를 한 게, 박근혜씨가 한반도 대운하를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기대가 조금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세력이 4대강 사업에 침묵하고 예산 투입을 용인했습니다. 4대강 사업의 주도는 이명박이 했지만 일등 공신은 박근혜 현 대통령입니다.

정치인·학자·공무원 ‘4대강 A급 전범’

-정치인의 문제도 있지만, 결국 국민의 문제 아닌가요.

=그렇죠. 국민이 4대강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고 한 것은 아니지만 직무유기는 분명하죠. 경상도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여기에 책임이 있습니다. 자본권력은 계속 스스로를 키워가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국민 입장에서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우리가 민주화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으면서도 그것을 방심하고 방관한 책임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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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많은 국민이 4대강 사업에 대해 등한시하거나 방관 또는 찬성을 했을까요.

=사람들이 자기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는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값 같은 거죠. 강은 그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그걸 건드려도 직접적인 피해자가 애매하고 아예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직접 관련이 없으니까 먼발치에서 보면서, 그저 뭔가 잘못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국가 단위로 움직이니까 내 돈이 더 나가지 않는 것 같고 ‘잘 모르겠네, 저거 왜 하지?’ 하는 의문 정도로 끝나는 거죠. 그걸 깨우쳐주는 것이 지식인과 언론의 역할인데, 4대강 사업에서 지식인은 그렇다 치고 보수언론이 보여준 건 거의 범죄적 행위였습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글쎄요. 인간 자체가 자기의 의사결정에 실수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낙동강이 흐르는 영남에서 왜 침묵하는지, 저도 대구 출신이지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미 대구 정수장에 소독약품 투입량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그냥 조용히 있거든요. 현 정부에 대한 이른바 ‘종교적’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상당 기간 그 생각이 고쳐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4대강 사업 찬성 지식인 목록을 만든다고 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운하반대교수모임과 환경운동연합이 ‘4대강 A급 전범 목록’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언론에 나온 발언 사례를 죄다 수집해서 정치인·학자·공무원·언론인별로 A급과 B급으로 분류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이 꾸준히 갱신해서 올해까지 3차 발표를 한 것으로 압니다. 국회의원 4대강 찬반 조사도 했는데, 기억나는 게 2012년 총선을 앞둔 설문조사에서 새누리당 의원 중 찬성이라 답변한 의원은 딱 2명이었습니다. 전부 다 무응답이었죠. (웃음) 이 사람들은 모두 기록해두어 후대에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게 해야 합니다. 자연은 알아서 자기를 복구할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입니다.

하늘땅과 더불어 생태적 순환사업을

-4대강 반대 운동을 이끌어온 ‘조직화된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시는지요.

=시민사회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좀 아쉬운 게 있었어요. 의견 발표하고 시위하는 것 이상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화 투쟁 때는 군사독재 정권이 힘을 쓰기 때문에 우리도 힘, 즉 시위나 맨몸으로 부딪쳐 이긴 거지만, 지금의 자본권력은 세금을 활용해 재정적으로 수탈하는 겁니다. 아무리 시위해도 겁 안 내고 가만히 있다가 세금 잘 뜯어가서 자기 입맛대로 다 씁니다. 야당 국회의원들 역시 지역 발전이니 돈에 매인 문제에는 입을 다물어요. 시민단체가 자본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 가령 조세저항 기술이나 재정감시 기술을 통해 명백히 잘못된 정책에 재정적 타격을 입히는 능력을 더 키워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이건 제 체험에서 나온 것인데, 사회의 근본적 체질을 바꿔야 할 듯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모든 국민이 조금이라도 농사에 참여하는 사회로 바꾸는 것이 방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농사를 지어보면 금방 알게 되는데, 때에 맞춰 하나하나 결정하고 그에 따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사람이 똑똑해집니다. 자연과 호흡하고 스스로의 의사판단에 책임을 지는 거죠.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생존 가능하다는 것, 참 중요하지요. 우리 사회가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이후로는 개인의 의사결정과 시행착오에 대한 스트레스, 즉 책임을 계속 회피하는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어찌됐건 자기 혼자만 잘나가면 된다는 교육체계나 책임지지 않고 면피만 하는 관료체계가 전형적 모습입니다. 이걸 어떻게 풀까. 지속 가능 사회로 바꾸자는 얘기가 오래전부터 나왔는데 그 해결책이 뭐냐면, 농사를 지으면서 지구를 생각하고 땀을 흘리는 것이에요. 돈벌이를 위한 농사가 아니라 사람을 바꾸는 농사, 하늘땅과 더불어 벌이는 생태적 순환사업이죠. 농자천하지대본,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이 교수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운동을 계속하다가 2012년부터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의 총무를 맡는 등 탈핵운동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탈핵운동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어요. 저도 이전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에 이은 세 번째 대형 사고를 보고서는 필연적으로 원전 사고는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무조건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장 독일을 다녀온 뒤 2011년 11월부터는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을 만들어 그 다음해에 1052명의 선언을 이끌어냈고, 지금은 원전안전및해체연구소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원전 해체를 준비하는 연구소인가요.

=지금 고리 원전이 정말 심각한데, 우리 사회가 원전 안전과 해체 기술에 대해 완전히 무지합니다. 정부도 원전해체센터를 만든다고 하는데, 정부만 무조건 믿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전문가 한 명을 연구소에 초청해 우리 원전의 해체에 관한 연구와 제안을 하게 하려고 합니다.

뜨거운 분노에 큰 빚을 진 마음으로

-4대강보다 탈핵에 더 집중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저는 4대강 반대 사업을 아주 즐겁게 했습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사업이니 가만둬도 보가 터지고 저절로 복구되는 쪽으로 갈 겁니다. 물론 우리가 한참 고통을 받겠지만요. 아직 현재진행형이지만 ‘자연이 이긴 거다’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먹튀 정권과 옹호자들을 심판하고 그걸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핵발전소, 이건 다릅니다.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노후 원전의 수명을 일부러 늘리고 위험을 방치하는 것은 민족 반역 행위입니다. 원전 사고가 나면 우리뿐 아니라 미래 세대 모두가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문제가 가장 위험하다고 봅니다.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싸우느냐 물었더니, 이 교수는 분노가 생기면 바깥으로 화를 내는 게 편한지 참는 게 편한지를 오히려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러더니 껄껄 웃으며 “나름대로 쉬운 쪽으로 사는 겁니다”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올바른 분노보다는 편안한 회피에 더 능숙한 사회입니다. 강을 생각하고, 미래 세대를 생각하고, 교육 현장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뜨거운 분노에 우리 사회가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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