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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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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평택에게 슬픔이 김득중에게

에바다재단·대추리·쌍용차 투쟁을 거쳐온 땅, ‘살아남은’ 쌍용차

해고노동자이자 아픔의 ‘상주’ 김득중, 7·30 재보선 평택을 도전
등록 2014-07-18 06:10 수정 2020-05-02 19:27
김득중 후보가 경기도 평택 시내 거리 한복판에 서서 출근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평택 인구 44만 명 가운데 18만여 명은 쌍용차, 만도, 한라공정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김득중 후보가 경기도 평택 시내 거리 한복판에 서서 출근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평택 인구 44만 명 가운데 18만여 명은 쌍용차, 만도, 한라공정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7·30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거물급 정치인들이 ‘낙하산’으로 대거 등장하고, 보수언론은 공천 파행을 ‘정치 혐오’로 연결지으려는 익숙한 레퍼토리를 반복 중이다. 몇몇 정치인은 오로지 국회의원 배지만을 달기 위해 부나비처럼 달려든다. ‘의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치꾼이자 ‘철새 정치인’이라고 낙인찍히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런 정치의 계절에 은 조금은 다른 정치 이야기에 주목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출신으로 경기도 평택을 선거구에 출마한 김득중 후보가 주인공이다. 죽음의 행렬로 이어진 또 다른 쌍용차, 또 다른 용산 참사, 또 다른 세월호를 막겠다는 게 출마의 변이다. 김득중 후보는 무소속이다. 하지만 진보정당 4곳이 미는 ‘진보단일 후보’다. 민주노총이 미는 ‘노동자 후보’다. 사분오열된 진보정치 세력들 사이에 서 있기에, 무너진 노동 현장을 발 딛고 서 있기에 어쩌면 조금은 외롭다. 그래도 마냥 외롭지만은 않다. ‘내쫓겼다’는 연대감으로 뭉친 용산, 강정, 밀양 사람들이 어깨 결어준다. ‘노란봉투’ 캠페인과 ‘와락’을 만들어낸 시민들, 진보 인사들의 마음이 모이고 있다. 그것도 에바다재단 민주화 투쟁,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대추리 투쟁을 거쳐온 평택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김득중의 평택 출마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울림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7월6~11일 평택을 종횡무진하며 그 ‘공명’(共鳴)의 현장을 지켜봤다. _편집자


“집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미군기지야. 그래서 우리 동네에도 전원주택이니 영화촬영 세트니 짓겠다고 터는 엄청 많이 닦아놨는데 땅이 팔리지가 않아.” 경기도 평택이 고향인 최아무개씨가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낸다. 평택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는 곽아무개씨가 맞장구를 친다. “쌍용자동차가 잘나갈 때만 해도 평택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괜찮았지. 2009년 정리해고 사태가 있고 나서는 어려워졌어. 시내에서 고깃집을 하던 여동생도 장사가 안 돼 얼마 전에 가게 문을 닫고 성남으로 갔다니까.”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는 색색의 깃발

평택항 인근 포승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자동차부품업체 공장. 지난 7월8일 점심시간 50대 여성노동자 예닐곱 명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리에 끼어 앉았다. 슬쩍 7·30 재·보궐 선거를 앞둔 평택 민심을 물었다. 최씨는 “친정부모님이 현덕면에서 농사짓고 있는데 농촌이 으레 그렇듯 ‘노동’이라면 빨갱이 취급한다”며 웃었다. 곽씨는 “남편이 지역개발 공약을 보고 후보를 골라 찍는다. 선거용 쇼인데 남편이 속는다”며 속상해했다.

두 사람은 “김득중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공장에서 일한 지 9~10년 되었다. 하지만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꼬박 잔업을 하고 주말 특근까지 해도 기본급은 최저임금을 겨우 웃돈다. 최씨는 “잔업을 안 하면 세금 빼고 월 123만원을 받아가야 한다. 그나마 포승공단에서 임금이 세다는 우리도 이런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갈 수 있도록 해줄 노동자 후보를 지지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 물었다.

김득중과 평택. 어떤 단어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복잡한 사연을 품고 있는 ‘상징’이다. 평택을 선거구에 출마한 김득중 무소속 진보단일 노동자 후보라는 건조한 설명은 그래서 그 자체로 충분하지 못하다. 김득중이 그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싶어 하는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치열하게 싸워왔던 쌍용차 해고자들을 대표하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동료·가족 25명의 장례를 치러야 했던 ‘상주’였다.

평택이라는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평택시는 1995년 기존의 경기도 송탄시, 평택시, 평택군이 통합돼 만들어진 도농 복합도시다. 아래쪽으로는 충청남도 천안·아산시, 위쪽으로는 경기도 화성·용인시와 맞닿아 있다. 경기도에서도 ‘변방’이다. 그래서 언제나 ‘개발’에 대한 욕망이 꿈틀댄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2015~2016년 입주할 예정인 진위면과 고덕면에는 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공사장을 바삐 오가는 건설장비의 굉음이 시끄럽다. 내년 말 수서발 KTX 열차의 호남선과 경부선 환승역인 신평택역이 신설되고, 2016년 서울 용산미군기지까지 옮겨오고 나면 평택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닐지 모른다. 요즘 평택 곳곳엔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는 색색의 깃발이 나부낀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평택의 절반만 보여준다.

평택은 ‘아픔의 도시’다.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평택에서 일어났던 몇몇 장면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청각장애인 학생들을 혹사시키고 폭력을 휘두른 사회복지시설 에바다재단을 상대로 한 장애인·인권단체들의 싸움, 미군기지를 확장이전하겠다며 수십 년 동안 농사짓고 살아온 마을을 하루아침에 떠나라는 정부를 상대로 한 대추리 주민들의 싸움, 그리고 중국 상하이차의 기술 유출과 ‘먹튀’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정리해고 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던 쌍용차 자본을 상대로 한 77일간의 옥쇄파업. “2000년대 인권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들”(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이다.

“대추리로 한다더니 ‘노와5리’ 어떠냐고”

그런 평택이 오늘의 김득중을 만든 팔할이다. 김득중은 1969년 평택시 청북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도 농사를 지으며 고향땅을 지키고 있다. 김득중이 1993년 쌍용차에 입사하고 몇 년 뒤 평택에선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비리 재단과 맞서 싸우느라 쇠사슬을 묶고 농성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김득중은 장애인 학생들을 도우러 갔다가 오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김득중처럼 몸을 던져 싸워준 사람들 덕분에 에바다재단은 지금과 같은 민주 재단의 꼴을 갖출 수 있었다. 2005~2006년 대추리 투쟁에도 그는 함께했다. 김 후보는 “지금은 중3이 된 큰아들 녀석과 함께 대추리 마을 그림잔치, 나무심기 행사에 갔던 추억이 생생하다. 한번은 대추분교에서 경찰과 주민들이 충돌하는 자리에 아들이 있었는데,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2009년 쌍용차 파업 때 전경버스를 보고는 차에서 못 내리더라. 마음이 아팠다”고 회고한다.


한상균 전 노조지부장은 공장 안 동료가 10만원짜리 선거후원금 약정서를 10장 받아서 내밀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너희가 어떤 마음으로 출마했는지 알겠다는 동료들의 눈빛이, 마음이 보인다.”


그때의 눈물은 아직도 평택에 흐른다. 대추리 주민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황새울을 지키며 버텼던 44가구는 노와리에 새로운 마을을 형성했다. 마을 입구에는 ‘평화마을 대추리’라고 쓰인 장승이 손님을 반긴다. 마을 사람들은 대추리라고 부르지만, 마을의 정확한 행정 지명은 아직 없다. 신종원(52) 대추리 이장은 “평택시장한테 ‘대추리’로 이름을 바꿔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는데,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평택시장이 당선된 뒤 ‘노와5리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시에서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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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토지 강제수용을 당한 대추리 주민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라면 머리부터 흔든다. “재보선 때 누굴 찍을 거냐”고 묻는 기자에게 대추리 마을회관에서 화투를 치고 있던 머리 허옇게 센 할매들은 “선거해먼 뭐해. 정치인들 다 그놈이 그놈이지”라고 일갈했다. 1960~70년대 평택 미군기지 근처 클럽 등에서 일하다가 쪽방촌에 눌러앉은 기지촌 여성 100여 명의 마음도 비슷하다. 이들은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앞두고 집값이 뛰어 쪽방에서도 내쫓길 처지다. 지난 7월8일 팽성읍 안정리 외곽에서 만난 기지촌 할매들은 정치 이야기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정치가 어떤 희망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걸 오랜 세월 동안 체득해온 탓이다.

김득중은 “팽택을 아픔의 도시가 아니라, 아픔을 품는 도시로 바꾸겠다”며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 6월24일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후, 그는 두꺼운 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있다. 이 훑어본 평택의 민심은 쨍쨍 내리쬐는 7월 한여름 햇볕과 달리 싸늘하기만 했다. “정치가 바뀌어도 살림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투표는 원래 안 한다.”(비전동 30대 가정주부) “정치인들은 매번 ‘발전시켜주겠다’는 말만 하고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안정리 60대 음식점 주인)

더구나 김득중은 무소속, 그것도 인지도 낮은 노동운동가다. 일찌감치 예비후보로 등록해 표밭을 다져온 상대 후보들과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가 지난 7월8~9일 유선전화로 유권자 503명에게 물어본 결과를 보면, 김득중 후보의 지지율은 6.4%로 나타났다. 첫 출발치고는 나쁘지 않지만, 3선 의원 출신의 정장선 새정치민주연합 후보(37.3%)와 유의동 새누리당 후보(33.2%)를 따라잡기엔 한참 멀었다. 앞으로 현실정치의 높은 벽 앞에서 지금까지 쌍용차 노조가 겪었던 것 이상의 좌절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선거판엔 땅을 둘러싼 장밋빛 공약

당장 선거가 시작되자 팽택에 관련된 온갖 장밋빛 공약이 쏟아져나온다. 여야 할 것 없이, 평택을 개발해 인구 100만 명의 국제도시로 키우겠다는 내용이 뼈대다. 선거 때만 되면, 땅은 ‘돈’이 되고 ‘표’가 된다. 신종원 대추리 이장은 “뼈빠지게 일해도 1년에 1천만원 벌기 어려운데, 개발로 인한 도로·토지보상금이 많이 나오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평택 안에서 높아졌다. 땅값에 집착하다보니, 공동체보다는 내 이익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평택엔 미군기지 확장이전이나 산업단지 조성사업 등으로 돈을 번 ‘땅부자’가 많다. 윤현수 노동당 평택위원장은 “평택은 개발 여력이 많은 곳이다. 보수 정치인들이 지역 주민들의 기대감을 써먹고, 주민들은 정치인에게 기댄다. 그러다보니 진보나 노동이라는 가치가 잘 소통되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이미 미군기지 인근의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러다보니 정작 평택 ‘사람들’의 목소리는 묻히기 일쑤다. 평택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통복시장 상인들은 최근 이마트 2호점 입점 저지 투쟁을 벌였다. 평택에는 현재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등 대형마트 4곳이 있다. 이광재(58) 평택 통복시장 상인연합회장은 “인구 15만 명당 대형마트 1개면 충분하다고 하는데, 인구 44만 명인 평택은 이미 포화상태다. 통복시장도 5년 전만 해도 물건이 없어서 못팔 정도였는데 요즘은 장사가 안 된다. 이번 선거에선 대형마트 입점을 막고 소상공인을 살릴 수 있는, 생각이 올바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득중이 아픔을 품고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대상은 분명하다. 노동자와 서민이다. 김 후보가 선거운동 기간에 주로 만나는 사람도 그렇다. 평택시민(44만 명) 가운데 18만 명은 쌍용차, 만도, 한라공조 등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공식 후보로 등록한 7월10일 오후에 방문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선 ‘세월호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으러 온 세월호 유가족과도 조우했다. 슬픔과 슬픔은 서로를 알아본다. 김득중 후보가 평택 지역선거임에도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까닭이다. 다음날인 11일엔 대추리 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진보정치에 대한 노동 현장의 불신도

물론 싸늘한 민심을 당장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5년 동안 쌍용차 안팎으로 곪아온 상처는 차차 치유되는 중이다. 지난 7월9일 오전 비전동의 한 공원에서 우연히 기자와 만난 윤주경(33)씨는 남편이 쌍용차 희망퇴직자라고 밝혔다. “쌍용차 해고자나 희망퇴직자들의 생활고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아이에게 초코파이 사줄 돈이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도 있고, 이혼 등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집이 정말 많다. 박근혜 대통령도 정치권도 다 말로만 해결하겠다고 해놓고 무책임하다.” 윤씨는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지만, 김득중 후보 지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의지는 있겠지만 과연 해결이 가능할까?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해결하지 못한 일을.”


“사실 전에는 투표도 안 했어요.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거예요.” 지난 7월10일 저녁 평택역 앞에서 김득중 후보가 건넨 명함을 누군가 길바닥에 버리자 용산 참사 유가족인 정영신씨가 냉큼 달려가 주우며 말했다.

서울 용산 참사 유가족인 정영신씨는 7월10일부터 경기도 평택에 상주하며 김득중 후보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정씨는 “벼랑으로 내몰린 철거민이나 노동자가 잘못된 게 아니라, 사회와 자본이 잘못된 것임을 선거를 통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 참사 유가족인 정영신씨는 7월10일부터 경기도 평택에 상주하며 김득중 후보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정씨는 “벼랑으로 내몰린 철거민이나 노동자가 잘못된 게 아니라, 사회와 자본이 잘못된 것임을 선거를 통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득중 후보는 지난 7월9일 아침 쌍용차노조 대의원 50여 명을 만났다. 파업 이후 당선된 노동조합이 금속노조를 탈퇴해 노조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기업노조 둘로 갈라진 뒤, 공장에 들어가 현장 노동자들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공장 앞에서 아침마다 선거 명함을 돌릴 때도 반갑게 맞아주는 동료들이 늘었다. 그날 저녁, 김 후보는 세교동의 한 고깃집에서 2009년 파업 당시 노조 지도부 20여 명과도 만났다. 5년 만의 첫 회식이라고 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공장 안 동료가 10만원짜리 선거후원금 약정서를 10장 받아서 내밀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한 전 지부장은 “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너희가 어떤 마음으로 출마했는지 알겠다는 동료들의 눈빛이, 마음이 보인다. 쌍용차 문제가 ‘노동계의 세월호’라는 것, 해고자의 억울함을 이제야 평택이 알아주는 것 같다. 또한 쌍용차가 지금도 안고 있는 구조적 위험에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쌍용차 문제 해결은 곧 평택 지역경제 활성화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2009년 정리해고 사태 이후, 평택 지역의 실업률은 2011년 4.2%까지 치솟았다(경기복지재단 ‘지도로 보는 경기도 빈곤’). 정부는 사상 최초의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평택을 지정했지만, 평택시는 경기도 지역 31개 시·군 가운데 4번째로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김용한 전 민주노동당 평택을 지구당위원장은 “지역경제의 핵심인 쌍용차 해고자들이 복직하는 게 제일 큰 지역경제 활성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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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에 대한 노동 현장의 불신도 김득중 후보가 넘어야 할 벽 가운데 하나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이후의 진흙탕 싸움에 진저리를 치는 조합원이 많은 탓이다. 노동당·녹색당·정의당·통합진보당 등 진보정당 4당은 이번 7·30 선거에서 김득중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따로 자기 당 후보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동작을 등 다른 지역구에선 여전히 진보정당들이 ‘따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득중은 분명 노동자 후보이자, 진보단일 후보다. 하지만 무소속이다. 그래서 외롭다. 김득중 후보, 또는 평택을 선거가 새롭게 펼쳐질 진보 혹은 노동자 정치의 ‘밀알’이 될지, 아니면 현재 벌어지는 진보정치의 각개전투 중 하나로 끝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득중에게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려는 이가 많다. 김득중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겠다며 각계각층이 손을 내민다. 특히 제주 강정, 경남 밀양, 서울 용산 등 이른바 ‘SKYM’(쌍용차·강정·용산·밀양)이 큰 힘이다. 강동균 전 강정마을 회장, 용산 참사로 남편을 잃은 전재숙씨, 밀양 할매 구미현씨 등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전재숙씨의 며느리인 정영신(42)씨는 7월10일부터 아예 평택에 상주한다.

“사실 전에는 투표도 안 했어요.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거예요.” 지난 7월10일 저녁 평택역 앞에서 김득중 후보가 건넨 명함을 누군가 길바닥에 버리자 정영신씨가 냉큼 달려가 주우며 말했다. 2009년 여름, 쌍용차 노동자들이 공장 옥상에서 파업하는 모습을 보며 정씨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시아버지가 목숨을 잃은) 용산 참사 때처럼 똑같이 특공대가 투입되는 거예요. 우리가 먼저 잘 싸워서 경찰청장 한 명이라도 책임지게 했다면 달랐을 텐데 싶더라고요. 뼈빠지게 일하다가 벼랑으로 내몰린 철거민이나 노동자나 똑같아요.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가 잘못된 게 아니라, 사회와 자본이 잘못된 것임을 알렸으면 좋겠어요.”

득달같이 달려와준 ‘SKYM’

김득중은 스스로를 ‘살아남은’ 해고노동자라고 부른다. ‘언제나 도전하고 싸우고 버텼지만 결과는 깊은 균열이 기다리는 크레바스(빙하의 쪼개진 틈) 어디쯤이었다. 그러나 다시 기어올랐고 빠져 죽지 않았기’(이창근 선거대책본부 홍보팀장의 페이스북 글) 때문이다. “여러분과 같이 눈물 흘리고, 같이 싸워온 그 힘으로 제가 이 자리에 섰다. 그동안은 선거 때마다 관중석에서 여당이, 야당이 어떻게 하나 지켜봤는데 이젠 관중석에만 앉아 있지 않겠다.” 지난 7월6일 열린 선거사무실 개소식에서 그가 그동안 ‘아픔’을 함께하며 서로 ‘눈물’을 닦아줘온 이들에게 한 약속이다. 그에게 이번 선거는 삶이 걸려 있는, 절박하게 살아내야만 하는 또 다른 싸움이다. 지금까지 진보정치 세력이 평택에서 거둔 최고의 선거득표율은 16.89%(2004년 국회의원 정당투표 민주노동당·사회당 득표율)다. 김득중의 가장 든든한 뒷배는 시민들의 마음이다. 고통받는 쌍용차 노동자와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며 시민들이 만든 심리치유공간 ‘와락’이 그랬고, 파업 대가로 손해배상액 47억원을 물어내야 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돕자며 시민들이 4만7천원씩 보내온 ‘노란봉투’ 캠페인이 그랬다. 이제 김득중은, 쌍용차 노동자들은 먼저 손 내밀며 기다리고 있다. 평택 시민들의 마음을.

평택=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서지원 인턴기자 iddgee@gmail.com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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