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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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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터널 밖 햇빛 세상을 꿈꾼다

불안도 수치심도 없는 유럽·북미의 청년 구직자들
국가는 ‘돈 걱정 말고 천천히 취업하라’며 생활비 지원도
등록 2013-12-27 17:41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2월2일 독일 베를린 북부 지역고용사무소에서 구직자들이 실업부조를 받기 위해 접수 창구에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지난 12월2일 독일 베를린 북부 지역고용사무소에서 구직자들이 실업부조를 받기 위해 접수 창구에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번듯하진 않았다. 하나같이 정규직 일자리에도 올라타지 못하고 있었다. 졸업을 앞뒀거나 짧게는 9개월, 길게는 2년까지 임시직을 전전하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아헤매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독일·네덜란드·캐나다·덴마크에서 취업 현장 속으로, 구직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봤다. ‘해외판’ 취업 OTL이다. 외국이라고 해서 취업 스트레스가 없진 않다. 자신의 꿈을 찾는 젊은이들은 모두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들은 취업이 늦어진다고 불안해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어떤 나라에선 정부가 청년 구직자들의 생활비를 대주면서 ‘돈 걱정 말고 천천히 취업해도 괜찮다’고 응원해주고 있었다. 스펙 쌓기, 취업 성형, 수십만원짜리 취업 컨설팅은 ‘딴 나라’ 이야기였다. ‘취업 OTL’은 자신의 취업 경험담을 생생한 언어로 전달했던 기자·인턴기자 4명이 그동안의 취재 뒷얘기를 털어놓는 좌담회로 6주간 이어진 시리즈의 장정을 마무리한다. _편집자
“월 600유로 실업부조… 우린 조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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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는 일주일에 딱 하루만 일한다. 그것도 4시간씩. 법률 관련 책을 펴내는 작은 출판사에서 맡은 업무는 단순하다. 주소 정리나 인터넷 자료 조사 따위다. 월급은 100유로(약 14만5천원). 남들은 ‘미니잡’(Mini Job·독일에서 월 400유로 미만, 주 15시간 미만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지만, 나는 ‘프리랜서’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학생 때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일이었다. 취직을 못했으니 그만둘 수 없었다. 이력서를 써낼 때도, 실업자보다는 프리랜서가 그럴싸해 보인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철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마르셀 나코인즈가 12월3일 베를린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철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마르셀 나코인즈가 12월3일 베를린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사실 난 가방끈이 길다.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박사 논문은 쓰다가 포기했다. 철학은 세계 어디를 가나 취업에 큰 도움이 안 되는 학문이다. 지난 3월부터 매달 취업 원서를 4개씩 쓰고 있지만, 면접까지 가본 건 한 차례뿐이다. 교육 관련 회사였는데, 면접자 15명의 스펙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등학교 선생님, 구청장, 스페인에서 기업을 운영한 사업가. 노숙자들이 만드는 신문에서 6년간 명예기자로 일했던 내 경험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베를린에서 혼자 사는 데는 집세로 월 200유로가 든다. 아무리 아껴써도 월 400유로가 생활비의 마지노선이다. 사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늘리면 돈은 더 벌 수 있다. 학생 때도 주 20시간씩 일했다. 하지만 월 100유로 이상을 벌게 되면 정부 지원금 월 600유로를 포기해야 한다. 올해 3월부터 공공부조 성격의 실업부조인 ‘하르츠Ⅳ’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급여가 1년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한 단기실업자에게 이전 소득에 비례해 주는 급여라면, 이 돈은 장기실업자와 청년실업자의 기초생계 보장을 위해 정부가 도와주는 지원금이다. 완전히 공돈은 아니다. 정부가 지정해주는 잡센터의 취업 알선 담당자와 정기적으로 면담하고, 꾸준히 기업에 취업 원서를 내는 게 의무다. 그런데 취업 알선 담당자도 “철학 전공자라서 소개해줄 마땅한 회사가 없다”고 답답해한다. 인터넷 취업정보 사이트의 구인 광고를 보고도 가끔 원서를 집어넣지만, 답은 없었다.

하르츠Ⅳ는 내게 버팀목이기도, 걸림돌이기도 하다. 독일 사람들은 ‘노동’을 중시한다. 하다못해 여자를 소개받아도 내가 “하르츠Ⅳ를 받는다”고 하자마자 그냥 나가버릴 거다. 일종의 ‘낙인’이다. 지난 12월3일 베를린 시내에서 만난 마르셀 나코인즈(28)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나코인즈의 대학 후배인 요나스 파루세크(30)도 하르츠Ⅳ를 받으며 구직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취업준비생이다. 파루세크는 2009년 하르츠Ⅳ로 월 600유로를 받으면서 특허 설명서 등을 번역하는 미니잡으로 반년간 일했다. 쾰른대학 일본학과, 본대학 아시아학과를 거쳐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과로 옮겨오기 전 공백 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이때 잡센터에서 파워포인트·엑셀 등의 직업교육도 받았다.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유산을 물려받아, 재산이 없어야 한다는 수급 요건에 어긋나면서 정부 지원은 끊겼다. 베를린자유대학을 졸업할 예정인 파루세크는 지난 9월부터 게임·번역 회사 등 5곳에 이력서를 보냈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는 꼭 취업 사이트 5곳을 순례한다. 번역, 한국어, 일본어. 그가 구직 정보를 찾는 키워드다.

독일의 올해 실업률은 최근 20년 새 최저치인 5%대(유럽연합(EU) 통계청)를 기록 중이다. 다른 EU 국가들의 절반 수준이다. 낮은 실업률의 밑바탕엔 2004년 시작된 이른바 ‘하르츠 개혁’을 통한 고용서비스의 변화가 깔려 있다. 독일 정부는 관료적 성격이 짙었던 연방고용청을 연방고용공단으로 바꿔 ‘서비스’를 강조했다. 고용과 복지 사이의 연결고리도 강화됐다. 연방고용공단은 취업 알선, 고용보험, 실업자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각종 정책을 총지휘한다.

지난 12월2일 찾은 베를린 북부 지역고용사무소 1층 접수 창구 앞에는 1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최대 2년까지 기존 수입의 60~67%를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다. 베를린 북부 지역의 실업급여·실업부조(하르츠Ⅳ) 수급자는 6만1천여 명(10월 기준)에 달했다. 이곳에선 430여 명의 직원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고용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2~3주의 단기훈련으로 취업이 가능한 사람, 양육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청년층 등으로 세분화해 맞춤형 취업 알선을 해준다.

리아네 페르쿤 취업알선팀장은 “경영학·심리학을 전공한 취업 알선 상담사들이 하루 8~9명의 구직자 또는 실업자와 이야기를 나눈 뒤, 구인 기업을 발굴하는 70여 명의 직원과 연계해 적당한 일자리를 추천해준다. 한번 상담한 고객의 취업은 끝까지 책임진다”고 소개했다. 지난 11월 이곳을 찾은 2686명 가운데 63%가 실업자로 등록했다. 사무소에선 구직자들의 평균 상담 대기시간까지 관리하고 있었다. 이날은 접수 창구에서 상담까지 27분이 걸렸다.

“이력서를 내봐도 계속 거절하는 답장만 받으면 의기소침해지긴 하겠죠. 하지만 마음이 급하진 않아요. 지금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한창 구직 중인 파루세크는 말했다. 독일 젊은이들은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사회보장 정책에 기댈 수 있어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시간제여도 괜찮아”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떨어진 힐베르쉼에 살고 있는 피터 마흐힐서(29)도 비슷한 또래의 구직자다. 지난 12월9일 한 외국계 공기업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사흘만 일하는 대신, 월급은 900유로(약 130만원)를 받는다. 네덜란드 정부가 자취하는 대학생들에게 보태주는 돈이 월 300유로인 것을 감안하면, 혼자 그럭저럭 살 만한 액수다. 2011년 대학을 졸업한 뒤 그가 거쳐온 직장 3곳은 모두 비슷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 외국계 공기업에서 임시직으로 근무 중인 피터 마흐힐서가 12월9일 회사 도서관에서 책자를 들여다보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 외국계 공기업에서 임시직으로 근무 중인 피터 마흐힐서가 12월9일 회사 도서관에서 책자를 들여다보고 있다.

마흐힐서는 정규직이었던 적이 없다. 늘 파트타임 형식으로만 일했다. 졸업 뒤 2년 넘게 정식 취업을 못했던 셈이다. 마흐힐서는 직업학교인 마보를 나와 전문대에 진학했다가, 다시 4년제 대학에 입학해 경영조직학을 전공했다. 2011년 일한 첫 직장은 정보기술(IT) 회사였다. 친구 소개로 입사한 이곳에선 주 25시간 일하고 월 800유로를 받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홍보 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라는 업무가 주어졌다. 고용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은 비정규직이었다. 서너 달 일하고는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두 번째 직장은 제법 큰 회사였다.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직장인 교육훈련 전문기업인 ‘NCOI그룹’이다. 직원은 500여 명. 이 가운데 70%는 시간제 일자리였다. 그는 주 4일 근무했다.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일은 그때그때 회사의 필요에 따라 정해졌다. 기업이 원하면 노동자가 언제든지 달려와야 하는, 이른바 ‘호출형 근로 계약’(Zero-hours Contracts)이었다. “이번엔 어떤 문제를 낼까요?” 회사에서 펴내는 시험문제집과 관련해 교수들과 내용을 조율하는 일을 맡았다. 월급은 1천~1100유로였다. 회사는 신규 채용 때도 정규직을 뽑지 않았다. 마흐힐서는 “2년 동안 시간제로 일하고 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하는데, 나머지 직원들은 버려졌다”고 말했다. 그는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회사를 ‘버리는’ 편이 나았다. 주변에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보라고 등을 떠밀었지만, 그는 1년만 일했다.

올해 6월 세 번째 직장의 문을 두드렸다. 임시직이지만, 앞으로 일하고 싶은 외국 회사와 연결해주는 ‘채널’이 돼줄 수 있을 것 같아 제 발로 찾아왔다. 지금은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내년 2월께 암스테르담에 해외지사를 설립하려는 외국의 한 중견기업 쪽과 채용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잡버드’ ‘몬스터보드’ 등 취업정보 사이트를 통해 50~60곳의 회사에 이력서를 넣은 끝에 찾아온 기회다.

지난 12월9일 아침, 암스테르담 시청 별관 1층에 있는 워크플라자(Werkplein)를 방문했다. 네덜란드에선 실업자가 되면 최고 2년 동안 기존 소득의 70%가량을 실업급여로 받을 수 있다. 2006년에는 수급 기간이 최대 5년이나 됐다가, 최근 2년으로 줄었다. 2년을 넘어 장기실업자가 되면 암스테르담시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를 찾게 된다. 지자체는 한 달에 4인 가족 기준 최대 1300유로를 지원금(사회부조)으로 준다. 단, 재산이 없고 취업할 의지가 있어야 지원 대상이 된다. 워크플라자를 통해 이같은 도움을 받고 있는 암스테르담 시민만 3만8천여 명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일자리를 알선하는 일은 정부나 지자체가 아니라, 6~7개의 민간 일자리 알선업체가 담당한다.

이곳을 안내해준 암스테르담시 노동정책고문 드리스 바스텔링크는 “최근 네덜란드 고용서비스가 크게 달라진 점은, 시민을 보호해야 할 아이가 아니라 자기 힘을 발휘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어른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을 안 나왔거나 중·고등학교를 마치지 않은 사람들, 장기실업자 등 취업이 가장 어려운 그룹에 대해선 특별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8~10명씩 그룹이 되어 ‘긍정적으로 말하는 방법’ 등을 교육받고 창업 계획도 서로 공유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네덜란드 고용시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실업률은 8%를 돌파했다.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암스테르담 지역의 청년실업률은 20%대로 치솟았다. 암스테르담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교포 2세 박은채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6개월에서 1년은 취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한 달에 200유로를 받는 인턴십도 경력을 쌓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래도 네덜란드 젊은이들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1980년대 초 경제위기를 맞아 실업률이 11%대로 급등하자, 네덜란드 노·사·정 대표가 모여 ‘바세나르협약’을 체결했다.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겠다는 내용이었다.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고용률은 다시 높아졌고 ‘네덜란드병’은 치유됐다. 그 뒤로도 노·사·정은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복지 혜택을 누리는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을 높이는 방안 등의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다. 암스테르담대학 암스테르담노동연구소(AIAS)의 키아 타이든스 교수는 “실업수당, 불법 인력파견회사 금지 방안, 양육수당, 풍력에너지 등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노·사·정 3자가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의해 사회적 합의를 모아낸다. 이런 전통이 네덜란드 경제를 유연하게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2년 넘게 정식 취업을 못했으면서도 마흐힐서는 “불안하지 않다”고 했다. “원하면 언제든지 정규직으로 취직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내가 뭘 하고 싶은지가 더 고민”이라는 것이다. “한국엔 한 번에 수십만원을 내고 상담해주는 취업 컨설턴트가 있다”고 했더니, 그는 “정치인, 석유회사 사장 등 다 원하는 직업이 다른데 어떻게 한 명의 취업 컨설턴트가 모든 답을 내놓을 수 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학 1학년부터 취업 관련 교육캐나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충분히 학생으로서의 삶을 즐겼어요. 하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우리 학교도 올해부터는 취업 관련 교육 대상에 1학년을 포함시키기 시작했죠. 대학이 취업 문제에 좀더 관심을 갖는 상황이에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빅토리아 시내의 호텔에서 근무하는 펑신장은 대만계 이민자로, 빅토리아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빅토리아 시내의 호텔에서 근무하는 펑신장은 대만계 이민자로, 빅토리아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빅토리아대학의 산학협력·취업지원센터(센터)에서 일하는 조이 폴리킨은 지난 12월16일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폴리킨은 이 학교 출신으로 문예창작을 전공했으며 8년 전 졸업과 동시에 학교에 취직했다.

폴리킨이 현재 홍보 담당으로 근무하는 센터는 기업과 학생들 사이에서 산학협력(Co-op) 프로그램을 중개하는 곳이다. 재학생·졸업생들에 대한 이력서 작성법, 모의면접 등 취업 대비 교육·훈련도 한다. 기업이 학교에 와서 실시하는 EIS(고용정보세션, ‘캠퍼스 리크루팅’)도 센터의 주요 사업이다.

“전체 재학생의 35%가량이 산학협력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요. 짧게는 한 달 반, 길게는 넉 달 동안 무급 인턴십 등의 형태로 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하게 되죠. 일단 시작하면 졸업 전까지 3~4개 기업에서 경력을 쌓는 경우가 많은데, 지원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에요. 처음엔 떨어지는 일도 많아요.” 그는 “아직 관심이 없어서 참여하지 않는 65%에게도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대학이 ‘취업 양성소’가 돼가는 풍경은 한국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빅토리아 시내에 위치한 고용서비스센터(Work BC)의 매니저 마이클 레인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구직난이 심해지면서, 대학에서도 이런 현상이 가속화했다”고 설명했다. 밴쿠버·빅토리아 등 대도시는 원래부터 구직자가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레인은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많은 대졸자가 처음엔 커피숍에서 서빙을 하는 등 저임금 일자리를 얻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빅토리아와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10.50캐나다달러(약 1만400원·달러)다. 호텔이나 커피숍, 식당 등에서 일하면 시간당 16~17달러 수준을 번다. 고용서비스센터의 사무직·상담 직원들의 급여는 적어도 시간당 21~22달러 선이다. 레인은 “대졸 취업 희망자들이 상담하러 오면, 일단 생계용 일자리를 구한 뒤 구직에 나설 것을 권한다”고 했다.

지난 6월 빅토리아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대만계 펑신장(36)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현재 호텔에서 일한다. 학업과 학비 부담 탓에 대학 2학년 때 휴학계를 내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10~12달러의 시급을 받고 주유소 계산대에서 일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결국 학업을 마칠 수 있었지만 이제 와서 전공을 살려 취직하려니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민자들은 제때 학교를 마치기도 힘들어 여러 부담이 배가 된다.”

만약 수입이 전혀 없고 재산 등에 관한 몇몇 기준을 충족하면, 주정부가 제공하는 월 610달러(약 60만4천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160시간으로 환산(1680달러)해서 견주면 36.3%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빅토리아 지역의 월 주택 임대료는 최저 800달러 선이다. 한 명이 수령하는 지원금으로는 임대료도 내지 못한다. 만약 주거지가 없어 ‘홈리스’가 되면 지원금은 275달러로 줄어든다. 간혹 지원금 수령자 두 사람이 함께 주거지를 구하는 경우는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불편과 부족은, 결국 실업자들의 취직 의지를 유도하기 위한 방편이다.

고용서비스센터에는 다양한 이들이 취업·재취업·이직 상담을 위해 찾아온다. 빅토리아 시내 센터에도 날마다 300명가량의 구직자가 찾아와 이력서·자기소개서 작성과 관련한 상담을 받고 있었다. 주정부가 민간사업자와의 계약을 통해 운영하는 이 시설은 주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레인은 대졸 구직자가 참고할 만한 사례로 자신이 상담했던 25살가량의 백인 여성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다른 지역 출신으로, 심리학 석사 학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구인 공고를 보고 이력서·자기소개서를 제출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빅토리아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더니 “이모 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이모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지역의 비영리기관에서 일한다”고 했다. “알지도 못하는 곳에 이력서 보내는 것을 중단하고 이모에게서 사람들을 소개받으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한 달 안에 그는 일자리를 찾았다. 곧, 덮어놓고 이력서만 보내기보단 인맥을 충분히 활용하라는 얘기다.

취직 못해도 정규직 소득 50% 보장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티볼리 공원 앞은 때이른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흥청거렸다. 지난 12월6일 저녁, 그곳에서 만난 라스무스 알버스(29)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이날 오후에 인턴십 면접을 치르고 온 덴마크 교통연구원에서 ‘좋은 소식’이 오면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 같다. 두 번째 도전이라 더 떨린다. 지난 8월 정규직 입사시험 때도 원서를 냈지만 똑 떨어졌었다.

덴마크공업대학에서 교통·물류 석사과정을 마친 라스무스 알버스가 12월6일 저녁 코펜하겐 시내 티볼리 공원 앞 상점에서 크리스마스 상품들을 보고 있다. 알버스는 이날 교통연구원 인턴십 면접을 본 뒤 합격 통보를 기다리는 중이다.

덴마크공업대학에서 교통·물류 석사과정을 마친 라스무스 알버스가 12월6일 저녁 코펜하겐 시내 티볼리 공원 앞 상점에서 크리스마스 상품들을 보고 있다. 알버스는 이날 교통연구원 인턴십 면접을 본 뒤 합격 통보를 기다리는 중이다.

코펜하겐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덴마크공업대학에서 교통·물류 석사 학위를 딴 그는 지난해 12월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한 뒤에는 독일·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당장 취업이 급하진 않았다. 돌아와선 교통연구원을 비롯해 지금까지 엔지니어링 회사 6~7곳에 원서를 넣었다. 구직 기간이 1년을 꽉 채웠지만, 지금도 크게 걱정은 안 한다. ‘A-KASSE’라고 불리는 실업보험에서 매달 1만5천덴마크크로네(세금을 제외한 실수령액 200만원가량)가 나오기 때문이다. 알버스는 취업한 적이 없으니 고용보험에 가입한 적도 없다. 하지만 학생 출신이라 가입비 8만원가량만 내면 2년 동안 지원금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 덴마크 교통연구원의 정규직 초봉은 세금을 제외하면 2만7천덴마크크로네 정도다. 미취업 상태인데도, 정규직의 절반가량 소득이 보장되는 셈이다. 청년실업자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정부의 울타리다. 정부는 대학에 진학한 뒤 월 150만원의 장학금에다 주거비·생활비 등으로 쓸 학자보조금까지 6년간 지원해줬다.

알버스가 이날 면접을 보고 온 인턴십 채용 정보를 귀띔해준 곳도 정부기관이었다. 실업보험을 받고 나서부터 알버스는 한 달에 한 번씩 고용센터에 가서 구직 계획을 설명해주고 일주일에 2개 이상의 취업 원서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취업상담사와의 대화 시간은 보통 30분에서 1시간에 이른다. 최근 상담사는 “지난번에 원서를 냈다고 한 교통연구원에서 인턴십을 뽑으니 알아보라”고 조언해줬다. 물론 인턴십이 안정된 일자리는 아니다. 6개월간 월급도 없이 일해야 한다. 그래도 200 대 1에 달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의 경쟁률을 뚫으려면 인턴십 경력이 보탬이 된다.

“당장 취직이 안 돼도 2년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취업 걱정은 전혀 안 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고용센터에서 맞춤형 정보도 받을 수 있고, 입사 면접 경험이 쌓이면서 더 유리해지지 않을까?” 알버스는 등이 굽은, 약간의 장애를 갖고 있다. 하지만 덴마크에서 신체적 장애는, 그가 꿈을 펼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그는 몸도 마음도 아주 건강해 보였다.

뒷문 닫고 왔는데, 앞문 열리지 않는 한국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업과 고용, 비정규직과 정규직, 졸업과 취업 사이를 오간다. 이처럼 개인이 생애단계별로 노동시장에서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강조하는 ‘이행노동시장’ 연구자들이 있다.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귄터 슈미트 베를린자유대학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누구나 먹고살 돈은 필요하다. 막 구직활동에 나선 청년이든지, 장기실업자든지 마찬가지다. 이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기초생활비를 주고, 직업훈련도 적극적으로 시키고. 더 높은 사회보장이 청년실업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촘촘한 고용·실업보험 시스템을 구축하고, 간병인·방과후교사 같은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우리는 종종 ‘막다른 골목’에 갇힌다. 대학이나 직장이란 뒷문을 닫고 나왔는데, 앞문은 열리지 않는다. 취업 또는 실업에 ‘좌절’(OTL)하는 건,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다. 새로운 문을 열어주고, 노동시장 내·외부로 향하는 든든한 디딤돌을 놓아줘야 할 책임은 사회가, 정부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글·사진 베를린(독일)·암스테르담(네덜란드)·코펜하겐(덴마크)=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빅토리아·밴쿠버(캐나다)=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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