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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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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

‘나’라는 상품 튀는 언어로 과대포장해야 눈길이라도 받는 취업준비생의 ‘자소서’ 리얼 작성기
비굴함과 미안함을 견디며 오늘도 나를 예쁘게 꾸미다
등록 2013-12-12 06:32 수정 2020-05-02 19:27
면접을 앞둔 취업준비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서울 이화여대 앞 미용실.한겨레 김진수

면접을 앞둔 취업준비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서울 이화여대 앞 미용실.한겨레 김진수

‘나’라는 상품을 과대포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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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 “케이크 믹스가 없대. 리뉴얼 중이라고. 케이크를 만들어봐야 실감나게 쓸 수 있을 텐데 어쩌지.” 9월16일 식품회사에 지원하는 한솔이 다급하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자기소개서(자소서)를 첨삭할 때 내가 말한 아이디어 때문이다. 지원 동기를 어떻게 쓸까 한솔은 고민 중이었다. 어머니 생신에 그 회사의 제품으로 케이크를 만들어준 효자 이야기를 써보라고 나는 제안했다. ‘4분의 기적’이 제목이다. 어머니 생신을 밤늦게 안 한솔은 빵집을 돌아다녔다. 모두 문이 닫혔다. 하지만 대형마트에서 케이크 믹스를 구했다. 그리고 빵집 못지않은 고품격의 케이크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음은 물론이다. 케이크 믹스 ‘자소설’ 1천 자를 완성했다.

“주관식 퀴즈 나갑니다. ‘아르바이트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현대건설의 OOO이 되겠습니다’의 OOO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한솔이 카카오톡으로 묻는다. 저마다 단어를 내놓는다. “든든한 맏아들” “붙박이장” “터줏대감”. ‘집단지성’을 발휘해서라도 취업준비생은 서류전형의 벽을 넘어야 한다.

9월에 취준생은 패닉에 빠진다. 현대·포스코·한화·LG·CJ·SK 등 대기업 신입사원 공개채용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9월15일 나는 자소서를 3편 썼다. 두산·KT·CJ가 이튿날 마감일이었다. 오전 10시 카페로 나왔다. 오는 길에 점심으로 먹을 김밥 한 줄도 샀다. 오후 6시까지 한자리에 앉아 5650자를 써냈다. 취업 스터디 때도 자소서만 하루 3시간씩 첨삭했다. 첫 번째 바늘구멍인 서류전형에서 우수수 떨어지니 두 번째(인·적성 시험), 세 번째(면접) 바늘구멍을 대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소서에서 취준생은 ‘나’라는 상품을 튀는 언어로 과대포장해야 한다.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뀐다. 절박함에 소설도 서슴지 않는다. 도덕적이지 않다, 정직하지 못하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짓을 수없이 반복하다보면 그런 가치는 희미해진다.

9월30일 삼천리에 낼 자소서를 쓰다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경험과 관련한 근거 기입(예시: 담당자/팀원 연락처).” 자소서에 과장이나 거짓이 많아서 요구하는 항목이다. 그렇다고 나도 아니고 남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넘겨줄 수 있나. 지원을 포기했다. 더 심한 기업도 있다. 이랜드 자소서를 쓰던 보라는 “사생활 턴다”고 했다. “인턴 할 때 상급자 이름이랑 연락처를 쓰라고 해. 동아리 회장도 그렇고, 아르바이트 매니저도 밝히라고.”

한솔이 덧붙였다. “우리은행은 근처 지점에서 계좌 개설하고 느낀 점을 쓰라고 하네.” 미연도 한숨이다. “SK플래닛 자소서 항목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던 사례를 쓰라고 해놓고 해외 사례라고 명시했어. 해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지원하지도 말라는 건가?”

과장뿐 아니라 축소도 비일비재하다. 사람은 한 단어로 규정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자소서에선 ‘창의’ ‘소통’ ‘열정’으로 나를 규정해야 한다. 우성그룹이 물었다. “자신의 성격을 외향적, 내향적으로 구분하시오.” 나는 소심할 때도 있고 과감할 때도 있는데 어떻게 써야 할까. ‘기본에 충실한가, 변화를 추구하는가’ ‘성공한 경험과 실패한 경험을 쓰라’ ‘강점과 단점을 밝혀라’. 나를 왜곡해야 답할 수 있다.

자소서 컨설팅 받은 후 지원 결과는

이나연 - 지난여름 지민이 인턴을 두 개나 합격했다. 나는 불합격이다. 전부 그랬다. ‘여긴 자소서만 본다는데.’ 지민이 인맥을 쌓고 일을 배우는 동안 나는 도서관에서 자소서를 고쳤다. 여름이 끝날 무렵 컴퓨터에 저장된 자소서만 20편이 넘었다. 그래도 서류통과율은 50%가 안 됐다. 남들은 최고의 자소서를 완성해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 한다는데 나는 그럴 만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사설 컨설팅업체를 찾았다. 자소서 컨설팅 비용은 2회에 15만원. 일대일 코칭은 시간당 10만원을 넘었다. 컨설턴트는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했다고 했다.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수능이 끝나고 논술을 준비할 때도 도곡동 논술학원에 다녔다. 100만원을 내고 하루 종일 논술을 썼고 명문대에 합격했다. ‘일단 한번 믿어보자.’

말끔한 정장을 입은 컨설턴트가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여유로움이 믿음직스럽다. 수강생은 4명. 나를 빼곤 전부 남자다. 20대 중반은 삼성물산을 희망하는데 부모는 회사를 운영한단다. 20대 후반은 회계 분야에서 6년의 경력을 쌓았다. 마지막 남자는 디자인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대기업 연구소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공모전 수상, 인턴 경력 등 스펙이 화려하다. 완벽한 스펙을 완벽한 자소서로 완성하려는 사람들이다.

내 차례가 왔다. “금융권에 입사하고 싶어요.” 컨설턴트가 관련 스펙을 물었다. “별다른 게 없어 걱정입니다.” “아르바이트 경험을 나열해보세요.”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다고 하자 “최대한 영업과 관련해 써보라”고 독려했다. 커피를 내리고 전화를 받은 게 전부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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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과정, 성격, 경험, 지원 동기 등 자소서 항목별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요령을 가르쳤다. 지원 동기는 ‘삼단논법’으로 작성한다. 1단계, 이러한 회사 장점에 관심이 있다. 2단계, 나의 장점과 궁합이 잘 맞는다. 3단계, 그래서 내가 회사에 기여할 것이다. 받아적다보니 100분이 훌쩍 지났다. 엄청난 비법 노트를 손에 쥔 듯해 뿌듯했다. “내일까지 완성한 자소서를 보내주십시오.”

이튿날 컨설턴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왜 하필 에서 인턴기자를….” 컨설턴트의 첫 질문이다. “‘색깔 있는’ 한겨레에 굳이 지원한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비록 강한 개성이 있는 곳이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식으로 강조하세요.”

밋밋한 내 자소서는 새롭게 태어났다. 대필 수준이라 영 어색했다. “자신 없는 분야에 끈기가 없어 항상 고민이었습니다”는 이렇게 바뀌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몰입하다보면 가끔 밤을 새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다음날 시간 효율이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일정한 계획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컨설팅을 끝낸 뒤 나는 자신감이 붙었다. 남들은 모르는 노하우를 알았다는 기쁨에 콧노래가 나왔다. 친구들에게 컨설팅 받은 자소서를 보여줬더니 “잘 쓴 것 같다”고 했다. 곧바로 입사지원서를 냈다. 2주 뒤 더 크게 좌절했다. 불합격. 나는 구제불능인가. 서류전형에서 떨어져본 적 없다는 친구가 말했다. “누가 자소서를 솔직하게 쓰니. ‘자소설’이라고 하잖아. 뻥도 치고 과장도 해야 돼.” ‘나를 아는 것’과 ‘나를 포장하는 것’ 사이에서 오늘도 헤맨다.

낯뜨겁고 찝찝하고 미안한 문구들

노민호 - “기업들은 이제 스펙보다 인성을 봐요. 자격증이다 뭐다 해서 돈 쓰지 마요.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교내 취업설명회에서 취업컨설턴트가 열변을 토했다. 그의 침이 먼발치에 있는 내 자리까지 튀는 느낌이다. ‘자소서, 어떻게 해야 인사담당자를 반하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나는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교내 취업센터에서든, 채용박람회에서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다. 핵심은 ‘자기 PR(홍보)’이다. 나라는 사람을 기업이 왜 뽑아야 하는지 강조하며 나를 예쁘게 ‘포장’하는 거다.

목표는 알겠는데 실천이 어렵다. 성장 과정은 그나마 쉬운 축이다. 강조점을 두 가지로 정했다. 첫째, 멍석 깔아줄 때 기회를 발휘한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온갖 장기자랑에 나갔다. 막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성대모사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는 ‘레전드’(전설)로 남았다. 조성모의 노래를 부르다 음이탈 위기가 찾아왔다. 즉흥적으로 ‘고음불가’로 바꿨다. 에 ‘고음불가’ 코너가 생기기 3년 전이었다. 비범한 과거를 활용해 나는 썼다. “어디서든 즐겁고 어디서든 당당한 사람입니다.”

둘째, 대학 때 ‘리더’ 경험이다. 대학교 새내기 과대표, 2학년 농민학생연대활동 대장, 시사토론 동아리 창립인 겸 대표, 서울시 주최 공모전 팀장, 그리고 시민단체 모니터위원회 분과장까지. 이만하면 타고난 리더 아닌가. 남양유업은 입사지원서에서 물었다. ‘지금까지의 경험 중 리더십을 발휘해 성과를 낸 경험을 기술하라.’ 시사토론 동아리와 모니터위원회 분과장 활동을 적었다. “조직이 위기 상황을 겪었지만 내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안정 궤도에 올렸습니다.” 절반은 진실이고 절반은 거짓말이다. 안정 궤도에 오른 건 맞다. 그러나 전적으로 내 공은 아니다. 함께한 사람들이 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후 사정은 다 뺐다. 찝찝하고 미안했다.

‘지원 동기’와 ‘입사 후 포부’는 쓸 때마다 캄캄하다. “회사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딴 얘기나 적으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창의성이 승패를 좌우한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운영하는 기업에 지원할 때 이렇게 썼다. “취미가 여행이라서 항상 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습니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를 기억합니다. 깔끔한 화장실, 식당에서 파는 맛있는 음식, 종업원의 친절한 미소.”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래도 내 자소서에 눈길 한 번은 주지 않았을까.

지난 5월 남양유업 대리점의 강매 횡포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나도 분노했다. 하지만 5개월 뒤 나는 남양유업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프렌치카페, 불가리스 등이 제 입엔 딱 맞습니다. ‘친숙한 입맛’을 경쟁력으로 삼는 남양유업에 많은 사람이 호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제 장기 비전은 남양유업의 ‘구원자’가 되는 겁니다. 남양유업의 대외 이미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참으로 낯뜨겁다.

이렇게 쓴 자소서를 읽기나 하는 걸까. 종종 드는 생각이다. 지난 10월25일 전자우편으로 보낸 델코 입사지원서는 아직도 ‘수신하지 않음’이라고 나온다. 읽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나는 미안함과 비굴함을 견디며 나를 예쁘게 꾸민다. 이은미/이나연/노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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