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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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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트윗-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이후

죽어야 사는 운명 vs 적을 닮아버린 오류
등록 2012-05-10 03:00 수정 2020-05-02 19:26
죽어야 사는 운명타락한 몸 버리고 죽음의 단두대에 오르는 것만이 새 생명 얻는 길
@tankja13명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리스트… 이들의 선택이 대한민국 진보가 부패한 보수가 되느냐 배고픈 진보가 되느냐를 판가름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지지하고 비판하고 싸워나가야 합니다.

진보정치가 단두대에 섰다. 한국 정당사에서 가장 많은 진보정치인을 국회로 진입시킨 통합진보당의 19대 총선 승리는 개원하기도 전에 비극적인 몰락의 위기로 치닫고 말았다. 19대 총선 비례대표를 뽑는 통합진보당의 부정투표 자체 진상 조사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인터넷·모바일 투표 코드 조작, 투표함 훔쳐보기, 대리투표 하기 등 부정투표 사례들은 우리의 정치적 시곗바늘을 과거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시점으로 되돌려놓는다.

자체 진상조사위원회의 결과만 놓고 보면, 통합진보당의 단두대에서의 비극적 처형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어떻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에 있다. 그러나 지금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과거 민주노동당 주류 세력인 당권파들의 반발도 심하고, 공동대표단의 집단사퇴만으로 문제의 본질을 관통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보수언론들도 굴러들어온 정치적 호기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는 사설에서 ‘진보당, 북한식 투표 흉내 내려면 진보 간판 내려라’라는 섹시한 주제를 뽑아냈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들은 통합진보당의 집안싸움을 관망하며 꽃놀이패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단두대 앞에 선 진보정치, 아니 통합진보당은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의 누명이고 모함이라고 강변할까? 잘못했지만, 죽을 만큼은 아니라고 호소할까? 아니면 ‘삼총사’ 같은 진보의 결사대가 나타나 단두대의 서슬 퍼런 칼날을 뽑아버리는 순간을 상상해야 할까? 모두 아니라고 본다. 결론은 단 하나다. 비장한 마음으로 총선이라는 죽음의 시간을 당당하게 맞이하는 것이다. 장렬하게 전사하고 남은 사람들을 통해 다시 부활해야 한다.

서클이나 친목회가 아니라 시민을 대상으로 정당정치를 할 거면, 스스로 가진 윤리적 관습과 도덕적 관행들과 결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일이다. 보수언론들은 진보정치가 단두대에서 정치적 처형을 당하지 않고 이 상태로 구질구질하게 계속되는 걸 원할 것이다. 적어도 대선 때까지는 말이다. 보수언론들이 정작 관심을 갖는 것은 통합진보당의 자기 쇄신 여부가 아니라 생명을 연장한 채로 자중지란하는 꼴일 것이다. 그들은 야권 연대의 케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통합진보당이 부정선거라는 네거티브한 프레임을 끝까지 안고 가 서서히 자멸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진보정치의 선택의 기회는 단 하나다. 스스로 만든 죽음의 단두대에 올라 타락한 몸을 버리고 장구한 생명의 시간을 구하는 것이다. 진정 알기 바란다. 단두대의 절단의 시간이 바로 진보정치라는 새로운 출발의 시간이라는 것을.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서로 다른 정치세력의 '담대한' 동거를 선택한 통합진보당의 운명이 선거를 치르자마자 백척간두에 섰다.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대립으로 치닫는 위기가 수습될 수 있을까. 탁기형 기자

서로 다른 정치세력의 '담대한' 동거를 선택한 통합진보당의 운명이 선거를 치르자마자 백척간두에 섰다.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대립으로 치닫는 위기가 수습될 수 있을까. 탁기형 기자

적을 닮아버린 오류 희생자 지위 이용해 타락의 ‘자유’ 누린 이들이 잠식한 적대의 토대
@uhmkiho 자주파에게 민주주의란 자신들의 패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들의 패권에 해가 되는 민주주의에 대해 그들은 서구식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4년 전에도, 그리고 올해도.

권력이 가하는 억압은 저항을 부르지만, 종국에 타락을 야기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진보 진영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통합진보당 내 당권파의 권력 집착형 부정투표 파문은 억압에 대한 저항과 타락이 암적으로 착종된 결과물이다. 그 타락은 그들이 오랫동안 저항하는 과정에서 처해온 생존 환경에서 체득한 문화적 산물이자 생계형 특질이다.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으로 상징되는 통합진보당의 당권파, 그들을 낳은 자주파는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배제돼야 할 정치적 타자였다. 권력을 쟁취하려고 비도덕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며 총을 휘두른 한국 사회의 지배 권력은,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정립하지 못한 정당성의 부재에 대한 저항을 폭력으로 억압했다. 억압의 가장 손쉬운 기제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항하는 정치적 타자를 모조리 ‘종북 빨갱이’로 색칠해 자생력을 박탈하는 것이었다.

‘이상한 모자’(@weird_hat)는 “통합진보당 일부 정파가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그들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국가적 탄압의 대상이 돼왔기 때문이다. 권력을 잃으면 조직도 동지도 한꺼번에 잃게 된다는 것을 체득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탄압은 자주파에게 ‘박해받는자’의 지위를 부여했다. 박해받는자의 피해의식은 고스란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 유지를 통해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타락을 낳았다. 그리고 그들은 박해받는자의 지위를 활용해 스스로에게 타락의 ‘자유’를 면죄부로 하사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적대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형태로 왜곡된 이념 지형을 구축했던 한국 사회의 지배 권력은, 이제 자본에 의한 계급적 독식을 구축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진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종북’으로 불리는 자주파의 성향은 자본에 의한 계급적 독식에 저항하는 진보까지 ‘종북 빨갱이’로 도매금으로 취급당하게 만들었다. 타락에 물든 자주파의 몰락이 진보세력 전체가 적대할 토대를 상실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권력과 자본에서 배제된 자들을 권력의 주체로 만드는 정치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다. 이 도구적 과정을 통하지 않고 사회를 변혁하려는 시도를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주파는 민주주의를 ‘서구식 부르주아’의 도구로 폄하해 마음껏 농락하면서도, 자신들의 패권을 위해 민주주의를 적극 활용하는 모순된 행태를 취하고 있다. 그 모순된 행태의 극단이 바로 이번 ‘통합’진보당의 탄생 배경이었다. 자주파가 진보세력의 ‘통합’에 올인한 것은 지배 권력에 의해 더 이상 탄압받지 않는 ‘정규직’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해 생존하기 위해서였다.

진보가 권력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수의 방식을 모방하면, 권력의 주체인 시민은 더 이상 의존할 정치의 장을 잃게 된다. 깃발은 간데없고 패거리만 나부끼는 짝퉁 진보가 이제 그만 퇴장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재훈 기자 한겨레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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