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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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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은 불법이다

등록 2011-11-09 19:15 수정 2020-05-03 04:26
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논란이 뜨겁다. 나는 수능을 며칠 앞두고 청소년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집회도 한 번 못 나가고 있지만, 내 삶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한-미 FTA 논쟁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런데 한-미 FTA에 관한 국제법, 국내법 논쟁을 지켜보자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바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B규약),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규약·A규약), 유엔아동권리협약 등과 같은 다자간 국제인권 협약들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이 비준·가입한 다자 협약으로서, FTA처럼 국내법과 동일한 지위와 효력을 가지는 법이다.

한국의 아동인권 현실

특히 한국 정부는 바로 올해 9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이행에 관한 3·4차 통합 보고서를 제출하고 한국의 아동인권 현실에 관한 심의를 받았다. 아무래도 수능도 얼마 남지 않은 시기이고 또 성적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들에 대한 보도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는지라, 내가 최종 견해를 받아서 가장 먼저 펴본 건 교육권에 관한 항목이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의 교육 상태에 대해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었다. “심각하게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에 대해 우려한다. 아동이 교육과정 이외에서 이루어지는 추가적 사적 교습에 널리 참여하면서, 심각하고 과다한 스트레스 및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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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경쟁적 교육환경이 아동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우려한 내용은 1996년 1차, 2003년 2차 최종 견해에도 똑같이 포함돼 있었다. 오히려 1·2차 심의 당시에는 “매우(highly) 경쟁적인” 교육환경이라고 했으나 이번에는 “심각하게(severely) 경쟁적인” 교육환경이라고 표현해, 표현의 강도가 한층 높아졌다. 15년의 시간 동안 교육권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었다고 판단한 셈이다.

교육권에 관한 국제인권 협약들의 내용을 알면 알수록, 한국의 현실은 실로 반인권적임을 실감할 수 있다. 예컨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교육의 목적이 차별이나 편견을 없애고 인권 존중을 증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거나, 지나치게 지식 축적, 경쟁 촉진에 초점을 맞춘 교육은 아동의 능력과 재능 계발에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교육이 아동이 ‘감당할 만한’ 방식과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에서 아동의 참여와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등을 모두 명시하고 있다. 대학교육까지도 점진적으로 무상화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 역시 사회권규약 등에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입시 경쟁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버린 모습, 청소년들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감당하기 어려운 과중한 학업 부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교육,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가 동성애 조장이라며 차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언론들, 대학 무상화는커녕 등록금을 반으로 할지 말지를 가지고 싸우는 모습들. 이처럼 교육이 인권으로서 실현되는데 필요한 기준들을 무시하는 지금, 한국에서 교육은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강제된 의무이거나 상품으로 취급받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말로 국제법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면, 이런 현실을 총체적인 ‘불법’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 먼저’인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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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정책 속에서 심지어 법원에서도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하는 국제인권 협약들은 아예 그 존재조차 무시당하기 일쑤다. 반면에 마찬가지로 국제협약의 지위를 가진 한-미 FTA는, 발효되면 국내법이나 정책까지 무력화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불균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결국 이조차도 법의 논리라기보다는 권력관계, 자본의 인간에 대한 우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한-미 FTA 반대 집회에 가지 않고 경쟁 교육에 반대하는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준비하는 스스로를 변호해본다. 청소년들의 이 선언 역시 교육이 보편적 인권이어야 함을, 인간이 자본보다 우위여야 함을 요구하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한-미 FTA 저지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공현 청소년인권운동가

*이번호부터 청소년인권운동가 공현씨가 ‘노 땡큐!’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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