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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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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오

‘청년들, 주거권을 말하다’ 오픈 콘퍼런스에서 만난
<고시원 체류기>의 감독 김정우씨가 말하는 청춘의 기본권
등록 2011-11-04 07:13 수정 2020-05-02 19:26

박민규의 단편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결국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어느 순간인가 저절로 그런 능력이 몸에 배게 된 것이다.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게 생활화되었고, 코를 푸는 게 아니라 눌러서 조용히 짜는 습관이 생겼으며, 가스를 배출할 땐 옆으로 돌아누운 다음- 손으로 둔부의 한쪽을 잡아당겨,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 <고시원 체류기>의 김정우 감독

» <고시원 체류기>의 김정우 감독

방귀조차 마음대로 뀌지 못하는 공간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17분짜리 단편영화 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고시원의 자기 방에 새우등을 하고 몸을 뉘었다. 속이 부글거리는가 싶더니 방귀가 나올 것 같다. 옆방에는 슬픈 일을 당한 방주인이 흐느끼고 있는데,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면 방귀를 참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평소처럼 아무리 둔부를 잡아당겨도 소용없다. 어쩔 수 없이 세 차례에 걸쳐 방출한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소리가 난다. 민망하고 당황스럽다. 옆방을 향한 빈 벽에 괜히 눈치를 본다. 코미디 같은 그 광경에 관객은 웃음을 터트리기보다는 행여나 옆방에 그 진동과 소리가 전달됐을까, 주인공과 함께 좌불안석이다.

지난 10월25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북카페 ‘레드북스’에서 ‘청년들, 주거권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청년유니온의 오픈 콘퍼런스가 열렸다. 영화 로 문을 열었다. 영화 상영에 앞서 감독 김정우(24)씨를 만났다.

청년유니온 조합원인 김씨는 영화이론을 전공하는 석사 2년차 대학원생이다. 는 영화 연출을 전공하던 학부생 시절, 원작 소설에 깊은 인상을 받고 2008년에 찍었다. 3년 만에 자신의 영화를 여러 사람 앞에서 선보이는데, 김씨는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2008년의 고민이 2011년까지 이어진다는 현실에 김씨는 갑갑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더 오래된 문제예요. 원작 소설은 2005년에 쓰였고, 소설 속 배경은 1990년대거든요.”

박민규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1991년의 고시원을 “일용직 노무자들이나 유흥업소의 종업원들이 갓 고시원을 숙소로 쓰기 시작한 무렵이자, 그런 고시원에서 아직도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던 마지막 시기… 그러니까 그곳을 찾는 사람에게도, 또 고시원으로서도 조금은 쑥스럽고 애매한 시기”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20년을 훌쩍 뛰어넘은 2011년의 고시원은 고시 패스보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분투하는 이들의 불안정한 주거 공간으로 존재한다. 고시생들이 떠난 빈자리는 일용직 노동자, 반지하나 옥탑방마저 부담스러운 대학생, 월세가 버거운 직장인,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등 더 넓고 다양해진 계층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또 다른 1%다. ‘2007~2009년 서울·경기 지역 고시원 현황’ 자료를 보면 10만8428명, 그러니까 서울 인구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고시원에 산다. 매일 밤, 화려한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음지에서는 1.65∼6.61㎡(0.5~2평) 되는 그 공간에, 1cm 두께의 베니어판을 사이에 두고 10만 명 넘는 인구가 몸을 뉘고 있다.

편의점 알바보다 고단한 벌이

김씨의 고시원살이는 딱 하루였다. 하루만으로도 헉 소리가 났다. 영화 촬영을 위해 촬영감독과 방을 빌려 하룻밤을 지냈는데, ‘실내 정숙’을 강조하는 고시원이란 공간은 인간의 몸이 만들어내는 모든 소리가 소음으로 치부되는 곳이었다.

김씨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부모 집에 함께 살며 서울까지 왕복 4시간을 써가며 통학한다. 몸이 고단하고 시간도 아까워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은 적도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얻은 자기만의 공간은 안락하지 못했다. 겨울이면 방 안에서도 입김이 폴폴 새어나오던 그 집에 계속 사느니 다시 서울∼화성을 오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 편을 택했다. 버스 시간에 맞추느라 늘 전전긍긍하다 보면 다시 자취방을 얻고 싶기도 하지만 높은 월세를 감당할 생각에 버겁기만 하다. “하루에 차비로 8천원씩 써요. 이것도 매일매일 쓰다 보면 적은 비용은 아니죠. 그래도 집세를 내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하니까….”

김씨는 영화를 찍은 2008년까지만 해도 ‘청년 주거권’ 문제에 대해 큰 고민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등록금이나 월세를 마련하려고 하루하루를 악다구니하듯 살아가는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커피숍·편의점 등에서 종종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 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 부모에게서 지원받았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때는 용돈도 타서 썼다. 그러나 등록금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액수가 어마어마한 까닭이 무엇인지, 최저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의 처우는 왜 오래도록 개선되지 않는지 등의 문제에 내내 물음표가 붙었다. 더불어 매일 8천원을 들여 통학할지, 아니면 학교 근처의 입김 나는 방에 세들어 살 것인지의 선택지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도. 무언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향해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촛불시위를 거치며 ‘말하는 법’을 배웠고, 청년 알바생, 학원강사, 실업자 등을 대변하는 청년유니온을 알게 되면서 고민을 공유하는 법을 배웠다. 김씨는 이런 고민을 사유하며 자신의 블로그(blog.daum.net/gmt87)와 청년유니온 온라인 카페에서 만화 을 연재한다.

만화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며 김씨는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는다. 그가 영화 연출에서 방향을 선회한 가장 큰 이유는 순전히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었다. 학부 시절 그는 ‘영화를 하면서 버는 돈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급보다 낮으면 안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0년 초에 영화 제작사 제작부 막내로 들어갔는데, 영화 한 편당 270만원을 급료로 받았다. “3개월 정도 촬영하는 영화였는데, 제작부는 촬영 전후로도 일이 있어 다른 일을 함께 하기 힘들고, 이 시간이 길어지면 1년 동안 영화에만 몸이 매일 수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연봉 270만원이 되는 거죠. 이렇게 계산하니 (시급 4천원대의) 편의점 알바보다 시급이 낮은 거예요. 1년에 여러 편 제작부로 일할 수도 없고, 보상은 턱없이 적고….”

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전공을 바꾼 그는 영화 정책을 연구하고, 영화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과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싶단다.

김씨가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는 이유, 그가 하루 4시간을 소비하며 통학해야만 하는 이유, 그리고 이날 콘퍼런스에 모인 청년들이 주거권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는 제각기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묶인다. 청년들은 당장에 가진 것이 부족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언젠가는 자신이 목표한 것에 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것이 직업이든 집이든, 하물며 작은 방이든 간에 그다음을 고민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단다.

하루살이 같은 청춘

콘퍼런스에서 ‘당사자 대화’에 나선 청년유니온의 한 조합원은 “나의 로망은 월세 없는 집이다. 그러나 그런 로망을 채울 수 있는 방안은 없을 것 같다.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마지막으로 전한 이야기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위한 상상력조차 죽게 하는 세상인 것 같아요. 기본적인 것이 지켜지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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