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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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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의 틀을 바꾼 ‘한기복’에 밑줄 쫙!

뒤틀린 다종교 연합이 정권의 실세가 된다면?
모든 정책이 종교화한 2021년 한국 사회를 상상하다
등록 2011-09-22 07:00 수정 2020-05-02 19:26

전국의 수험생 여러분, 안녕? 쏙쏙 뽑아주고 딱딱 찔러주는, 쏙쏙딱딱 수능 특강. ‘종교와 정치’ 과목의 김올도 선생님이야. 오늘은 매년 수능에 절대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 ‘종교 정당 정치’에 대해 알아볼 거야. 자, 지난 10년 동안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이 누구라고? 그렇지. 한국 기복신앙 총연합. 줄여서 한·기·복! 오늘은 우리 기복이가 만들어지고 우리나라 정치를 확 바꿔버린 과정을 같이 알아보자고.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로또 번호 맞히며 통합 정당 창설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참 신기하게 생각해. 원래 종교라는 게 자신들만 옳다고 하잖아. 아예 대놓고 다른 종교를 믿으면 칼로 베어버리라고 하는 데도 있고. 그러니까 종교 정당이라고 하면 기독교 민주당이나 아랍 바트당처럼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 예전 우리나라에 종교 정당의 모태가 있었는데, 자 어떤 게 있었지? 국태민안호국당, 평화통일가정당, 기독사랑실천당. 그렇지, 전부 일곱 자로 되어 있어. 이게 각각 불교, 통일교, 기독교야. 그런데 한기복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다종교 연합의 정치세력이야.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기복이가 등장하기 전에 우리나라 종교는 만신창이였어. 뭐 좀 해본다고 하면 네티즌들이 “개독이 설친다” “절에서 장사하려면 세금이나 내라” 하며 난리를 쳤지. 종교들끼리도 사이가 안 좋아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템플 스테이’ 지원을 하느니 마느니 지지고 볶고 난리도 아니었지. 결국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각 종교의 지도자들이 2011년 9월10일 토요일 서울 파고다공원에 모였어. 사실 회의를 한다고 해도 스님은 염불만 외고 목사님은 “사탄은 물러가라” 하니, 의견이 모일 리가 있겠어? 그런데 저녁 8시55분이 되자, 다들 주머니에서 뭔가 부스럭부스럭 꺼내는 거야. 그게 뭐였지? 그래 로또복권 용지! 종교 지도자들이 그때 깨달은 거야. 우리가 교리를 떠나 공감하는 절대의 공통점이 있다. “돈 벌게 해주세요, 예수님. 아들 낳게 해주세요, 부처님. 취직하게 해주세요, 단군님.” 바로 ‘기복’이었던 거야. 그래서 이 사건이 바로 역사적인 ‘파고다 로또 대부흥회’!

이제 모든 종교가 ‘기복신앙’의 깃발 아래 모여 정치세력화에 나섰지. 바야흐로 정권 획득을 위한 성전을 시작한 거야. 그때 여의도 유세에서 장구칠 목사가 했던 역사적인 명연설이 뭔지 알아? “이번 선거에서 기복당 후보 안 찍는 사람은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 무조건 찍어.” 이건 랩으로 만들어져 선거 홍보가로 쓰였지. “책, 책, 생명책! 안 찍으면 책에서 아웃. 체키라웃, 생명책!”

한기복이 냉큼 정권을 먹었고, 그다음에 가장 먼저 한 게 뭐다? 옳지. ‘종교등록증’. 국민 개개인은 주민등록란에 종교 항목을 적어넣고, 주일마다 종교행사에 참여할 의무가 주어졌지. 이게 그렇게 새로운 일은 아니었어. 선생님이 군생활을 할 때도 천주교·불교·기독교, 3대 종교 중 하나를 꼭 선택해서 종교행사에 가야 했거든. “나는 엄마가 무당이라 굿해야 합니다” 했다가 고참들한테 엄청 까였지. 종교계 사학재단 학교에 다니던 애들도 자기 신앙과 상관없이 종교 과목을 안 들으면 학교에서 잘리고 그랬지. 여기서 조금 더 나간 것뿐이야.

각종 혜택에 우후죽순 들어선 종교단체

이렇게 국민이 종교를 선택해서 등록하면 자동으로 교파 순위가 정해지잖아. 그러면 다수파 종교별로 지상파 TV 채널이 주어지지. 4대 종파에 못 들어오면 케이블 TV 채널을 차례대로 부여받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채널이 종교방송이 되었는데, 그래도 예전 프로그램과 큰 차이는 없었어. 요새 빤성교(빤스 내려 성도교)의 빤광훈 목사가 진행하는 버라이어티 목회가 인기 좋더라. 목사가 여집사들의 충성심을 확인하려고 ‘청기 내려, 백기 내려’식으로 ‘빤스 올려, 빤스 내려’ 그러잖아. 야야! 이거 심야 프로그램인데, 어제 공부 안 하고 본 학생들 있지? 건전하게 스포츠 프로그램 같은 걸 보라고. 어제 ‘명경기 컬렉션’ 보니까 1990년대에 맹활약한 ‘지저스 모닝스타’(JMS) 장명석 총재가 한 경기에서 33골을 넣는 전설의 게임을 하더라. 정말 영험하시지. 그중에 5골은 골키퍼 12명을 세워놓고 넣더라고.

반발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야. 주일에 종교행사에 출석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잖아. 그거 귀찮다고 안 나가는 놈들이 지들이 무신론자니 어쩌니,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헌법 소원을 냈어. 여기가 핵심 체크야. 헌법재판소의 판결문. “헌법 제20조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는 ‘모든 국민은 종교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로 해석 가능하다. ‘국교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조항은 ‘다양한 기복신앙이 공존하게 했으므로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는 항목은 ‘정치와 종교는 서로 잘 어울리다가 분리 수거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애초에 같이 있지 않으면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공공 정책과 행사가 종교단체 위주로 진행되니까, 그것도 좀 불만을 샀지. 기독교, 불교, 천주교만 종교냐? 우리도 종교하자. 그래서 광적인 팬심에 기반을 둔 집단들이 종교단체로 등록하기 시작했어. 야구사랑 오리갑교, 소녀사랑 삼촌교, 좌파척결 숭미교…. 종교단체는 각종 세제 헤택을 얻으니 좋지. 가령 반호남교가 기아 타이거즈 버스를 펑크내려고 망치와 못을 구입해서 쓴 뒤 영수증을 제출하면 면세 혜택을 주잖아. 종교행사는 경찰이 보호해줄 의무가 있으니, ‘젝스키스 대부흥성회’ 같은 걸 하면 차량 통행도 정리해주고. 정말 종교는 좋은 거야.

물론 ‘순수종교파’도 있어요. 종교의 원래 목적은 개인의 기복이 아닌 영혼 정화라거나, 교회와 사찰은 부를 버리고 약한 자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들. 그런데 생각해봐. 전부 나눠가지자는 주장, 그거 공산주의잖아. 걔들이 믿는 게 뭐야, 유물론! 신은 없다 이거잖아. 어떻게 종교를 믿으면서 종교를 안 믿는 자들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지? 뭐, 국제앰네스티가 양심적 종교 거부자들에 대한 인권 탄압에 항의하는 것도 사실이지.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안이 있잖아. ‘양심적 종교거부교’ ‘무신론교’를 만들면 된다!

한기복이 정권을 잡으면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어요. 일찍이 기독정당을 주장한 선구자들이 “헌법을 개조해 아이 5명을 안 낳으면 감방에 보내는 특단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게 다 현실이 되었잖아? 스님들도 일본처럼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했어. 멋진 제도지. 세금은 안 내고 살면서, 사찰은 아들에게 세습하고. 그러면 병역 문제는 어떻게 한다? 국제 포교단 활동을 하면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지요. ‘예수천국 불신지옥’ 깃발을 들고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에 가면 돼요.

간통 목사의 죽음, 과로사와 순교 사이

마지막으로 한기복 초대 의장을 맡았던 장효해 목사의 죽음에 대해 살펴보자고. 장 목사는 오피스텔에서 여신도를 만나 몸의 기쁨을 전수해주다가, 이를 간통이라고 주장하는 신도의 남편이 들이닥치자 베란다로 도망가 에어컨 실외기에 매달려 있다가 추락사했지. 다음날 한기복 대변인이 장 목사가 “과로로 순직했다”고 보도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사실 알지? 조중일보의 사설을 보자고. “목회자가 성스러운 빤스 내리기를 하다가 불순분자의 침입으로 죽임을 당했으니 이는 ‘과로사’가 아니라 ‘순교’다.” 장 목사의 유해는 국립묘지에 안장됐고, 순교지인 오피스텔은 추모공원으로 지정해서 국가가 헐값에 매수한 뒤 초대형 교회를 지어 봉헌했지. 묘비엔 이렇게 적혀 있어.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내게 돌을 던져라.” 옆에는 그를 존경하는 불자들의 돌탑이 서 있고.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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