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도 ‘희망 버스’가 떴다. 한진중공업 수비크조선소의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현지 노동·종교단체가 마닐라~수비크 간 110km에 이르는 거리를 40여 대의 희망 버스로 행진했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경춘(49)씨도 함께했다. 그가 한국의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눈으로 바라본 필리핀 한진중공업의 노동 현실을 전해왔다. _편집자
“정리해고 철회하라!” “식사 질 개선하라!”
21세기를 사는 노동자들의 외침이다. 앞은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에서, 뒤는 필리핀 수비크에 위치한 조선소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지난 2월 정리해고를 당한 뒤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노동자들도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대방문을 했다. 수비크조선소는 규모 면에서 세계 네 번째다. 처음에는 그곳의 노동자들도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일하지 않았을까.
몇년 동안 고향에 못 가고그러나 막상 도착해서 파악한 것은 정반대 상황이었다. 노동기본권은 전무하고, 현지 노동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필리핀 한진중공업노동자회(SAMAHAN)에 따르면, 수비크만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일하는 2만1천 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이 전부 사내하청 노동자다.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셈이다.
대우를 잘 받는 것도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한국 관리자들에게 ‘개××’ ‘××놈’이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있었다. 만나는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맨 처음에 배우는 단어는 ‘빨리빨리’이고, 그다음으로 배우는 것은 욕설이다”라고 말했다. ‘안녕하세요’와 같은 고운 우리말은 한국 식당에나 가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현지 노동자 용접공 A씨는 휴가를 신청했다가 ‘똘아이’라는 욕설을 들었다. A씨처럼 대부분의 노동자는 수비크에서 멀리 떨어진 민다나오 지역에서 왔다. 그래서 몇년 동안 고향 한 번 가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A씨는 “고향까지 가려면 며칠이 걸려 가까운 곳에 사는 친척이라도 보려고 하루 휴가를 신청했다”며 “돌아온 답은 ‘똘아이’와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노동환경은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는 듯했다. 현지 노동자들은 정식 근무시간이 아닌 시간에 아침 조회와 점심 조회를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 등 한국 노래를 부르며 체조를 했다. 그러다 노래 가사나 체조 동작이 틀리면 따로 불려나가 한국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하는 ‘PT체조’나 ‘푸시업’ 등 기합을 받아야 했다.
또 다른 용접공 B씨는 직접 시범을 보였다. 그는 ‘PT1’이라며 무릎을 구부린 채 점프하며 팔을 X자로 휘저어 보였다. 입으로는 ‘멋있는~ 사나이~ 진짜 사~나~이’를 불렀다. 그는 “군가를 배울 때도 ‘SANAI’처럼 영어로 써서 외우게 한다”며 “용접일을 하는데 이것을 왜 외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뜻도 가르쳐주지 않고, 우리말이 아니라서 틀리는 것이 당연한데도 기합까지 받는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 한진중공업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근무시간 전인 아침 7시40분께 모여 국민체조를 했다. 1990년대가 돼서야 노조의 항의에 체조하는 시간을 근무시간인 아침 8시로 옮겼다. 지금은 국민체조 대신 관절을 푸는 에어로빅을 하고 있다. 당연히 동작을 틀려도 기합은 없다.
작업조건 항의하자 60여 명 해고구내식당도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했다. 한국 관리자들은 구내식당에서 조리한 밥을 먹지만, 필리핀 노동자들은 위탁업체를 통해 들여온 밥을 먹었다. 그런데 날씨가 무더운데다 위탁급식이라서 그런지 노동자들은 밥에서 구더기가 나온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회사 관리자도 “인원이 많고 외부에서 들여오는 식사이다 보니 위생이 안 좋을 수 있다”고 시인했다.
20여 년 전 한국의 한진중공업과 똑같다. 당시 한진중공업 영도공장에는 식당도 없이 꽁보리밥 도시락을 공업용수에 말아먹었다. 외부 업체가 만들어온 노란색의 ‘벤또’를 작업조장이나 막내가 가져오면 공장 그늘이나 탈의실에서 먹었다. 식당조차 없었다. 대신 쥐똥이 섞여 나오기도 했다. 1987년 9월8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도시락 거부 투쟁은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얻었다. 회사는 바로 식당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고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노동자 C씨의 임금명세서를 보니 잔업과 일요 특근을 했는데도 하루에 318페소(약 7858원)를 받는 꼴이었다. 필리핀 수비크의 최저임금 316페소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리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호받으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필리핀 한진중공업노동자회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노동자 31명이 산업재해 사고와 직업병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현지 노동자들은 “조선소가 아니라 묘지”라고도 표현했다. 그들은 회사에 노조 인정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장시간 노동을 완화하고,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60여 명의 해고였다. 벤자민 아베네스는 필리핀 한진중공업노동자회에 가입해 식사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해 쓰레기통을 두드렸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그의 아내는 현재의 처지를 설명하다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1살과 3살 아이를 둔 상황에서 해고돼 많이 놀랐다.” 아베네스는 “부당해고로 신고하고 싶지만 차비가 없어 산페르난도에 있는 중앙노동위원회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비크조선소나 부산 영도조선소나 기본적 노동권을 보호받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경영진에게는 들리지 않나 보다. 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과 고용보장을 받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 한진중공업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일해서 가족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사는 일이 욕심이 많은 것일까? 한진중공업 경영진은 국내에서 수시로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쫓아냈다. 2002~2003년 680명, 2009년 409명이 공장에서 내몰렸다. 그리고 지난해 말에는 230명이 희망퇴직하고, 170명은 정리해고를 통보받았다. 나도 지난 2월 정리해고를 당했다. 대신 몇년째 수주를 한 척도 못했다는 경영진은 연봉이 올라갔다.
나라는 달라도 한진 노동자는 하나다이것이 세계 4번째 규모의 조선소에서 생겨서 될 일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무란 것도 있지 않은가? 회사가 조금 어렵다고 노동자를 해고하고 생존권을 무시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청춘을 다 바쳐 20~30년을 일한 대가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미래를 꿈꾸며 이제 2~5년을 일한 회사에서 채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일회용 부품처럼 버려진 동료들을 보니 가슴이 쓰리다.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경영진 밑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한국과 필리핀의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연대해서 계속되는 비극이 막 내리기를 희망한다.
수비크(필리핀)=김경춘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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