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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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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전문계고 졸업생 32명의 폐기된 꿈

[기획 연재] 경계의 아이들 /

‘경계의 아이들’ 2회… 자동차 연구원 꿈 접고 카센터 실습생으로,

80만원 비정규직 일터로 나서는 D공고 자동차과 학생들의 쓸쓸한 졸업
등록 2011-02-24 02:50 수정 2020-05-02 19:26

꿈꿀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권리는 사라진다. 경계에 선 아이들은 꿈꾸게 해달라고 따지고 묻는다. 꿈의 권리를 잃어버린 전문계고 아이들을 만났다. _편집자

32명 가운데 대학 진학 21명, 취업 5명. 수도권의 D공고 자동차과의 올해 성적표다. 지난해까진 ‘전문계고’였지만 올해부터 ‘(전문계) 특성화고’로 불리는 이 학교의 이름처럼 그럴싸한 숫자다. ‘진학’과 ‘취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인상을 준다. 숫자는 때로 진실을 감춘다. D공고 자동차과 32명의 3년을 조심스럽게 들췄다. 모든 이름은 가명이다.

장래희망, 카 디자이너에서 카센터 사장으로

상덕이는 원래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장래희망이 바뀐 것은 1학년 때다. “입학 뒤 첫 실습 시간에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엘란트라(1990년 출시)라는 차에 수십 명이 붙어 실습을 했어요.” 아무래도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기엔 힘들겠다는 불안감이 그때부터 생겼다.

상덕이는 결국 자동차 디자이너에서 카센터 사장으로 꿈을 바꿨다. 변심했다기보다 ‘하향’ 조정했다는 표현이 옳다. 나머지 친구들은 어땠을까? 2008년 1학년 당시 담임 교사와 함께 작성한 진로상담카드에는 자동차과 32명의 구체적 희망이 기록돼 있다. 자동차 업종(설계사·디자이너·엔지니어·현대차 취직 등)을 원한 이는 23명으로 71%에 달했다.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명백하게 밝힌 것은 2명뿐이었다. 기타(항공정비사·교사) 2명, ‘아직 없음’ 5명이었다. 장래희망 직업으로 자동차 업종을 원하지 않는 아이들도 취미 또는 특기란에 자동차 모형 조립·자동차 이름 외우기·자동차 사진 모으기 등을 빼곡하게 적었다. 자동차가 좋아서 모인 32명의 학생들이었다.

» 지난 2월 초 졸업식날, 우철이와 성준이는 자동차과 실습실을 찾았다. 자신들이 3년 동안 쓰던 공구를 찾기 위해서다. 둘은 단짝이다. 우철이는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전공을 자동차에서 회계로 바꿔 전문대에 진학했고, 성준이는 항공정비사로 진로를 바꿨으나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 지난 2월 초 졸업식날, 우철이와 성준이는 자동차과 실습실을 찾았다. 자신들이 3년 동안 쓰던 공구를 찾기 위해서다. 둘은 단짝이다. 우철이는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전공을 자동차에서 회계로 바꿔 전문대에 진학했고, 성준이는 항공정비사로 진로를 바꿨으나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3년이 지났을 때, 32명은 자신의 꿈을 낮추거나 버렸다. 가장 먼저 이탈한 건 용래였다. 용래는 1학년 때 기능올림픽을 준비하는 기능반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실습교사에게 “수업이 시시하다”며 “이게 뭐냐”고 대들었다. “안 될 것 같다”는 또래의 불안을 견디지 못했다. 욕설이 뒤섞인 반항은 수시로 이어졌다. 용래는 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담배를 피웠다. 용래는 학교를 졸업했지만, 진학·취업 모두 실패했다. 졸업식 전날, 용래는 담임 교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3년 동안 죄송했어요.” 죄송한 일이 3년 동안 전혀 없었다 해도 용래의 미래는 불투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입학 이후 학생들은 학교의 ‘무엇이든’ 불신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꿈이 흔들리면서 덩달아 일어난 변화다. 학교 축제는 참가자가 없어 지난 2년간 열리지 않았다. 체육대회 때는 축구 이외에는 누구도 나서지 않아 팀을 만들 수 없었다. 고교 시절 추억의 한복판에 자리잡아야 할 축제와 체육대회 때, D공고 32명 대부분은 교실에 우두커니 있었다. 서로 잡담만 나눴다. ‘아이돌’과 ‘알바’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래의 불안을 이기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기자가 D공고를 찾은 지난 2월 초, 졸업식날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전체가 조용했다. “이게 ‘내 학교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그 짓도 하는 거죠. 집에나 빨리 보내주세요.” 졸업식장에서 만난 태희는 짜증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3년에 대한 몇몇 질문을 그들은 참지 못했다.

그들이 3학년이 되었을 때, 불안은 현실이 됐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우차나 기아차에서 우리 학교 출신을 많이 데려갔는데. 최근 2∼3년은 통 없어요.” 담임 교사도 아이들에게 들려줄 말을 잃었다. 공고 3학년이 되면 실습을 나가야 한다. 실습 의뢰가 들어온 것은 대부분 공업사(카센터)였다. 그나마도 아이들의 희망이 되진 못했다.

 

길 열어주면 자기 몫 했을 아이들

“(카센터에) 현장 실습 다녀온 친구들이 ‘청소만 하다가 월급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3년 배운 기술로 정규직 자리는 찾을 수도 없는데, 선생님도 그렇고 누구 하나 (취업 못한다는 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을 못하더라고요.” 말 못하는 교사들이 우철이는 답답했다. 우철이는 취업의 꿈을 접었다. 대신 전문대 진학을 결심했다. 우철이는 앞으로 2년 동안 회계를 전공하게 될 것이다. 3년 동안 배운 자동차 지식·기술은 자취가 없다. 곁에 있던 성준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안 된다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해줬어야죠.” 성준이는 방황만 하다가 취업·진학 모두 실패했다. 전문대라도 가는 우철이가 부럽다.

자동차 전공을 포기한 것은 우철이만이 아니다. 이탈자는 급격히 늘었다. 현대차에 근무하는 자동차과 졸업 선배가 지난해 학교로 찾아왔다. 그는 후배들에게 “공고 나와서는 우리 회사 못 온다”고 말했다. 결정적이었다. 32명은 우왕좌왕했다. 졸업식 직전, 자동차 정비기능사 자격을 획득한 32명은 다시 한번 장래희망을 써냈다. 3년 전, ‘자동차’로 가득했던 희망의 문자들은 어지럽게 흩어졌다.

» 졸업장을 받기 위해 줄을 선 학생들. 교복 찢기 등 소란이 우려돼 경찰까지 배치된 졸업식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반장 주영이는 웃었다. “원래 공고에서는 그런 거 안 해요. 그 짓도 소속감이 있어야 하죠. 학교 축제 안 한 지도 2년 됐거든요.”. 한겨레 김정효 기자

» 졸업장을 받기 위해 줄을 선 학생들. 교복 찢기 등 소란이 우려돼 경찰까지 배치된 졸업식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반장 주영이는 웃었다. “원래 공고에서는 그런 거 안 해요. 그 짓도 소속감이 있어야 하죠. 학교 축제 안 한 지도 2년 됐거든요.”. 한겨레 김정효 기자

자동차 업종에 취업하겠다는 뜻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경우는 8명(25%)뿐이었다. 그것도 (카센터) 정비사로 꿈을 ‘하향 조정’한 경우가 7명이었다. 자동차와 무관한 길을 찾겠다고 장래희망을 적어낸 학생은 20명(62.5%)이었다. 항공정비사·직업군인·공무원·영화배우·연예기획사 사장·호텔매니저·여행가·전자회사 사장 등이었다. 자동차와 다른 길을 택한 이 가운데 사립대 연기전공에 합격한 1명과 항공전문학교에 들어간 1명만 그 꿈의 첫발을 내디뎠다. 다른 아이들의 새로운 꿈은 아직 영글지 않았다.

“(전문계) 학생을 낙오자로 보는 낙인과 언제나 후순위로 밀리는 교육당국의 무관심이 3년 동안 학생들을 좌절하게 만들었어요.” 담임교사 조현철(가명)씨는 말했다. 좌절 끝에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는 아이들이 전문계 고등학교에는 흔하다. D공고 자동차과에서 그런 중도 탈락자는 없었다. 3년 동안 줄곧 담임을 맡은 조씨의 노력 덕분이다. 다만 그 노력은 낙인과 무관심까지 해결할 수 없었다. “원래 특성화 교육의 취지대로 길을 열어주면 자기 몫을 했을 아이들인데 말이죠.”

졸업장을 받아든 우철이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그는 새터민이다. “현대차·기아차가 생긴 이래 지난해 가장 많은 차를 팔았다는데 그게 맞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취업이 안 되는 건) 공고 나왔기 때문이죠?“ “왜 국가는 우리를 필요에 의해 만들어놓고 내버려두는 거죠?” 질문은 계속됐다. 우철이에겐 북한도 남한도 이해하기 힘든 나라다.

혼란은 전염된다. 32명이 자동차과에서 3년 동안 혼란을 겪는 동안, 그 가족은 생존을 위해 허덕이고 있었다.

 

32명 모두 수업료 지원 받아

32명 가운데 기초생활수급 가정은 5명(15%), 한부모가정·조손가정 등으로 가계 곤란인 경우가 15명(47%)이다. 가계 곤란자 가운데는 복지관에서 혼자 살거나, 친척집에서 더부살이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머지 12명도 형편이 어렵긴 마찬가지여서 담임 교사는 이들까지 학비 지원 신청을 교육청에 제출했다. 32명 가운데 수업료 지원 없이 학교를 다닌 경우는 단 1명도 없다. 이 학교만의 유별난 상황도 아니다. 전문계고 전체를 따져도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 자격으로 학비 지원을 받는 학생의 비율이 45%(2009년 기준)에 달한다.

» D공고 자동차과 32명의 꿈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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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모의 직업은 대단치 않다. 일용직 노동 종사자가 6명, 무직이 3명이다. 14명은 보호자의 직업을 ‘회사원’이라고 적어냈는데, 회사원의 실상은 봉제공·아파트 경비원·분식집 요리사·미용사 등이었다. 8명의 부모는 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수익을 낼 만큼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없다. 담임 교사는 “마이스터고 등 일부 학교만 편중하여 예산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부가 제시하는 대로 따라온 보통의 학생들을 돕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과 관련된 불안과 좌절이 D공고 자동차과만의 일이었을까? 2000년에 절반을 넘었던 전문계고의 취업률은 2009년 현재 17%로 급락했다. D공고의 다른 과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 전자과의 올해 졸업자 가운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 취업한 학생은 단 1명이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역대 최대의 수익을 냈다. 그 수익은 D공고 학생들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20명 전문대 진학자 모두 ‘알바’

아예 기대를 접은 학생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3학년 초, 과 수석과 차석을 도맡던 홍철, 인규 등 3명이 자동차 보험설계사를 하겠다고 뭉쳤다. 손해액을 산정하는 보험설계 전국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스스로 찾은 희망은 친구들에게 옮아갔다. 취업이 안 돼 고민하던 창민, 정비사 꿈을 접은 경진, 유치원 교사로 꿈을 바꾼 석영 등이 덩달아 보험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취업하지 못했다. 스스로 길을 찾는 학생들에게도 사회는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담임 교사는 “보험업계에서 공고 출신을 받아줄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 이름(가명)/ 가정환경/ 가정형태/ 장래희망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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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전문대에 진학한 20명의 미래도 아직은 안개 속에 있다. 전문대 자동차과에 진학한 것은 10명이다. 나머지는 자동차보상·세무회계·연극영화·항공정비·건축 등으로 흩어졌다. 4년제 대학에 진학한 경우는 한 명뿐이다. 이들이 애초부터 진학을 선호했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일자리만 있었으면 취업했다”고 말하는 반장 주영이나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을 안 했다”는 우철이 같은 이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입학 무렵, 대학 진학의 목표를 가졌던 이는 32명 가운데 2명밖에 없었다. 담임 교사는 “‘공고생’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여건만 되면 4년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런데 진학을 택한 아이들이 ‘여건이 좋아서’ 대학을 가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진학을 택한 이 가운데 1명을 제외하면 모두 2년제 대학에 들어간다. 이들은 다시 흔들린다.

지방 전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수도권 전문대로, 수도권 전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서울 지역 전문대로 편입하거나 재수하려는 것으로 담임 교사는 추정한다. “졸업식 뒤부터 대학 첫 중간고사 기간인 5월 사이에 학교를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이 학과마다 십수 명에 이른다”며 “전문대를 가도 전망이 보이지 않거나 적응이 힘들어 취업을 알아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돈이다. 32명 모두 고등학교 비용을 지원받았다. 이젠 모든 비용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들의 부모에겐 대학 비용까지 건사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 실제로 21명의 대학 진학자 가운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 인규는 마트에서 주차 안내를 한다. 창민이는 피자 배달을 한다. 홍철이는 식당에서 음식을 나른다. 이들이 그동안 모은 돈은 전문대 등록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인규와 홍철이의 부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창민이도 차상위계층이다.

결국 아이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21명 진학자 가운데 대출로 등록금을 마련한 경우가 절반이 넘을 것”이라고 담임 교사는 말했다. 아르바이트와 대출로 긁어모은 돈은 고스란히 대학의 금고에 들어간다. 담임 교사는 “이미 2000년 초부터 고졸자보다 정원이 많아진 대학들만 배를 불리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아이들이 힘들여 따낸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증은 ‘장롱 자격증’이 됐다.

취업한 5명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2월12일 상덕이를 만난 것은 수도권의 한 카센터였다. 상덕이는 다른 친구들처럼 전공을 바꿔 진학하거나 다른 업체에 취업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머니가 쓰러졌다. 아버지는 식품공장의 비정규직 직원이었다. 돈은 늘 부족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상덕이는 현재 월 80만원을 받는다. 3개월 동안 저축한 액수가 200만원을 넘는다. 왕복 버스비를 빼고 모은 돈이다. “우리더러 ‘88만원 세대’라면서요. 그럼 나도 평균 아닌가?” 웃는다. “그래도 난 카센터에서 청소만 하는 건 아니고요, 볼트 조이면서 기술도 배워요. 재수가 좋은 거죠.”

» 졸업식이 끝나고 각자의 이름이 적힌 자동차 과목 교과서 24권은 가지런히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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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면 무슨 수가 나오겠죠”

무대설비업체에 들어간 태희는 자동차과 학생 가운데 유일하게 ‘아파트’에 살았다. 지난해 아버지가 불치병 선고를 받기 전까지 넉넉한 환경이었다.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자동차에 대한 꿈은 접었다. “취직이 안 되잖아요.” 장래희망을 호텔 매니저로 바꿨다. 무대설비업체에서 일하는 태희가 장차 어떻게 호텔 매니저가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당장 앞으로 2~3년이 엉켰어요.” 태희는 올해 군대에 갈 생각이다. “거기 가면 무슨 수가 나오겠죠.”

기계조립 공장에 들어간 정수의 원래 꿈은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고교 2학년 때, 아버지를 다시 만나면서 잠깐 그 꿈에 가닥이 잡히는가 싶었다. 친척집에서 자란 정수는 아버지에게 기대를 걸었다. 아버지를 만났으나 아버지는 이미 재혼해 다른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정수를 도울 형편이 아니었다. 정수는 꿈을 접었고, 공장에 들어갔다. “빚져가면서 대학에 다니고 싶진 않거든요.” 정수도 계획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곧 군에 입대하면, 내처 눌러앉아 직업군인이 될 생각이다. 기계조립업체에 들어간 보경이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상덕이는 “보경이가 들어간 업체는 전화받을 틈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봉주도 전화 통화할 틈이 없을 만큼 바쁘다. 그의 원래 꿈은 ‘현대자동차’ 조립기술자였다. 봉주는 원래 기능올림픽 준비반(기능반)에서 기술을 배운 모범생이었다. 농사짓는 아버지는 봉주에게 기대가 컸지만,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는 게 자신의 몫이라고 봉주는 생각했다. 전문대는 돈 때문에 못 갔고, 정규직이 되기 힘들다는 말에 자동차의 꿈은 버렸다. 전공 따지지 않고 취업했다. 지난해 9월, 봉주는 가장 많이 월급을 주는 업체를 골라 취업했다. 하청공장이었다.

월 150만원 정도 버는 봉주는 졸업생 가운데 최고 연봉자가 됐다. 가족들은 성공했다고 좋아한다. 봉주는 차갑다. “딱 일 더 한 만큼 더 받는 거거든요.” 밤 9시가 넘어 통화가 된 봉주의 목소리는 피곤에 절어 있었다. 10여m를 왕복하며 완제품을 옮기는 단순작업을 12시간 맞교대로 치른다. 휴일은 8일에 한 번씩 돌아온다. 처음에는 쉬워 보였다. 2시간 거리의 고향집에 가지 못할 정도로 힘들다는 것을 처음 돌아온 휴일에 알았다. 부모님 용돈도 넉넉히 드리지 못한다. 돈도 모으지 못했다. 고된 노동에 뒤이은 약값과 술값으로 쓴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최고 연봉자 봉주도 오는 11월 군대에 갈 예정이다.

 

진학과 취업 모두 좌절된 6명

32명 가운데 6명은 진학과 취업 모두 실패했다. 이들이 뭘 하고 지내는지, 친구들도 잘 모른다. 병관과 연기는 곧 군에 입대할 거라는 소문이 돈다. 항공사 사장이 되고 싶어하던 반항아 용래와 항공정비사가 되고 싶다던 성준이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4년제 대학에 들어갈 거라고 기대를 모았던 현수·범수는 입시에 실패했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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