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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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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동정하지 말래이~

포획되어 동물원으로 돌아온 말레이곰…

성성숙기에 짝짓기 상대도 없이 외롭게 방사장 거니는 ‘꼬마’의 겨울나기
등록 2011-01-06 02:18 수정 2020-05-02 19:26

“으르렁~!”
말레이곰 두 마리는 방사장에 나오자마자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도발을 먼저 시도한 쪽은 여느 때처럼 ‘꼬마’였다. 방사장을 향해 무심코 발걸음을 옮기다 ‘말순이’의 엉덩이에 가로막힌 것이 화근이었다. ‘뭐야, 이거’라는 듯 꼬마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여기까지는 일상적 불화의 반복이었다. 어차피 꼬마와 말순이는 앙숙 관계. 지난해 12월 초 전국적 화제를 모은 말레이곰 꼬마의 탈출 소동 이후 두 녀석의 불화는 많이 알려졌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말순이의 반응이었다. 꼬마의 선제공격에 깜짝 놀란 말순이가 입을 크게 벌리며 되레 꼬마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질 수 없다’는 결기가 엿보였다. 이빨을 보이며 위협을 멈추지 않는 말순이의 서슬에 꼬마는 이내 등을 돌리고 말았다. 결과는 말순이의 1승!
 
호기심과 짜증 많은 ‘미운 7살’

2010년 12월 초 서울대공원을 탈출해 화제가 된 말레이곰 꼬마가 12월29일 방사장에서 사과를 먹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2010년 12월 초 서울대공원을 탈출해 화제가 된 말레이곰 꼬마가 12월29일 방사장에서 사과를 먹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그때그때 다릅니다. 그날의 컨디션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꼬마가) 먼저 꼬리 내릴 때도 있죠.”

서울대공원 함계선 사육사의 설명이다. 말레이곰 생애주기로 따졌을 때, 7살짜리 수컷 꼬마가 이제 혈기왕성한 청년기에 접어들었다면 30살 암컷 말순이는 사람 나이로 ‘환갑’을 훌쩍 넘은 할머니에 속한다. 힘과 힘으로 맞붙었을 경우 말순이는 꼬마의 상대가 아니다. 대신 말순이에게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짜증과 지원군이 있다. 사육사는 언제나 늙고 힘없는 약자, 말순이 편이다. 성가신 꼬마를 잠시 떼놓는 일이야 말순이에게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12월29일, 청계산으로 탈출을 시도한 말레이곰 꼬마가 사람 손에 다시 붙잡힌 지 딱 보름째다. 탈출 소동 이후 미디어가 꼬마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바람에 이른바 ‘관심 동물’이 됐다. 꼬마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구경꾼’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이날 서울대공원 맹수사에서 다시 만난 꼬마는 호기심 많고 짜증 부리기 좋아하는, ‘미운 7살’ 모습 그대로였다. 식탐도 여전했다. 말순이와 하나씩 먹으라며 사육사가 던져준 사과 두 개도 혼자 뚝딱 해치웠다. 사육사가 딱한 말순이 쪽에 다시 하나를 밀어주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꼬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사과를 베어먹던 말순이가 그만 사과를 놓친 것이다. 사과가 하필이면 꼬마 앞으로 떼구루루 굴러갔다. 꼬마가 냉큼 세 개째 사과를 집어들었다.

좁은 내실과 쇠창살로 가로막힌 5평 남짓 규모의 방사장은 말레이곰 꼬마에게 여전히 답답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일반인의 관심을 모은 ‘꼬마의 짝’도 아직 구해지지 않았다. 암컷 말순이가 있다지만 생식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욕정 덩어리’ 꼬마에게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었다. “꼬마의 불만을 직접 들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탈출 원인이야 알 수 없죠. 다만 통상적으로 말레이곰 나이 5살이 되면 성성숙 시기가 됐다고 보는데, 7살이 되도록 제짝을 찾지 못했으니 욕구불만이 있을 수 있죠. 올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짝을 찾아주긴 할 겁니다.” 함계선 사육사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꼬마를 바라봤다.

 

그리운 열대우림, 답답한 방사장

꼬마의 유일한 놀이터라 할 수 있는 방사장의 열악한 환경은 더 큰 문제다. 서울대공원은 2009년 유인원관에 이어 지난해부터 열대조류관을 생태형 동물원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말레이곰과 호랑이, 흑표 등이 있는 맹수사는 그 다음이다. 열대우림이 그립고 비좁은 방사장이 답답해도 꼬마에게 다른 돌파구는 없다. 함 사육사는 “동물원 전체의 리모델링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어서 곰 방사장만 따로 확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래도 올해 안에는 최대한 제짝을 찾아주고 방사장 구조물 등을 좀더 다양하게 꾸며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천=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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