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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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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곰의 건투를 빈다

등록 2010-12-15 02:18 수정 2020-05-02 19:26

곰이 동물원을 탈출했다.
곰은 지난 12월6일 단지 탈출했을 뿐 아니라, 성공적으로 드넓은 숲 속에 몸을 숨겼다. 마치 오래전 탈출을 준비한 것처럼. 260명이 동원되어 나흘째 이어지는 수색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물원 관계자뿐 아니라, 인근 소방대원들까지 동원되어 이 어린 동물을 기어이 잡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 동물원 입장에선 소중한 사유재산이니 되찾으려 하겠지만, 여기에 동원되는 가장 적합한 사유는 시민의 안전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바로 그 곰의 안전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불안과 열망의 동거
탈출한 곰은 몸무게가 40kg에 불과한 작고 온순한 녀석이다.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곰이 동물원을 탈출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잡아들여야 한다고 자동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건, 그가 탈주범이기 때문이다. 우린 그를 잘 모르고, 무지는 두려움을 곧바로 작동시킨다. 그는 아무도 해하지 않았지만, 세상이 그에게 있어야 할 자리라고 규정한 자리를 거부한 죄가 있기도 하다. 우리가 그를 동물원이라는 감옥에 제멋대로 가두었을지언정, 그는 본질적으로 대자연에 속하는 존재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푸코의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보면 학교와 군대, 직장, 그리고 이토록 안전한 감시의 사회를 사는 우린 모두 거대한 감옥에 갇혀 있는 셈이다. 진실의 입김 한 발이면 이내 허물어져버리고 말 헛된 권력의 유지를 위해 축조된 감시와 처벌의 시스템에 우린 길들여져 있다. 한 발자국 그 밖으로 발을 내민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탈주범·비정상인의 오랜 낙인이다. 그러나 감옥 밖으로 탈출한 누군가의 존재는 감옥 안을 묘한 흥분과 열광으로 들뜨게 한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탈주범은 한편으론 카타르시스를, 또 한편으론 불안을 제공한다. 3년 가까이 경찰을 희롱하며 전국을 활보한 탈주범 신창원이 누리던 그 불가해한 인기와 유명세가 탈주한 자들에게 우리가 가진 이중적인 감정을 입증해준다.

탈출한 곰의 무사 귀환만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임을 말하는 언론을 접하며, 스위스 작가 요르크 슈타이너의 이라는 동화를 떠올렸다. 감옥처럼 촘촘하게 설계된 토끼공장. 뚱뚱한 회색 토끼가 있는 방에 작은 갈색 토끼가 잡혀 들어온다. 갈색 토끼는 너른 초록빛 들판을 그리워하고, 회색 토끼는 바깥 세상에서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 둘은 탈출을 공모하며, 성공한다. 그러나 공장 밖 세상에는 예측불허의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들을 쫓는 사냥개가 있는가 하면, 비바람을 피할 집도 없다. 몸을 숨기기 위해 구덩이를 파야 하며, 매번 먹이도 스스로 구해야 한다. 회색 토끼는 안온했던 공장에서의 삶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자신은 공장에 있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이윽고 회색 토끼는 되돌아간다. 온순하고 뚱뚱한 토끼로 사육되다가 어느 날 어디론가 실려가는 그 공장으로.

 

위험한 자유에 축하를

회색 토끼가 돼버린 많은 사람은, 아직 야성을 간직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갈 능력을 간직한 갈색 토끼들- 우리의 아이들, 다른 공식으로 살아온 소수의 사람들- 에게 끈질기게 감시당하고 사육당하는 삶으로 귀환하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갈색 토끼의 용감한 선택에 환호하고 갈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곰이 포획되었다는 소식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론 곰의 탈출이 우리의 심장 한 구석을 두드리지 않던가. 그것은 우리가 결국 포기하지 못한 야성의 삶에 대한 갈망이다. 아직 살아 있음의 신호이기도 하다. 청계산에서 우연히, 수줍어하는 아기 곰 ‘꼬마’를 만나거든 짊어지고 간 간식을 나누며, 그가 되찾은 자유와 야성의 삶을 축하해줄 일이다. 그럼 그도 우리에게 은근한 공모의 미소를 지어줄지 모른다.

목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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