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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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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4-02-23 11:44 수정 2024-02-29 13:50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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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1994년의 폭염은 지금도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비교 대상으로 호출된다. 그 여름 내내 기나긴 폭염이 이어졌는데, 대구는 7월12일 39.4도를 기록해 당시 최고기온을 갈아치웠고 서울엔 열대야가 35일이나 이어졌다. 그 폭염에 한반도를 긴장하게 하는 일도 터졌다. 북의 김일성 주석이 7월8일 사망했단 소식이 신문 호외로 전해졌다. 돌아보면 한국전쟁 세대의 퇴장과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해였다. 한반도의 기록적인 더위와 위기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나왔다.

서른 번째 생일 맞은 친구사이

1990년대 풍경이 다시 돌아왔다. 배우 고소영 같은 이들의 서울 사투리를 흉내 내는 콘텐츠를 보면서 엠제트(MZ) 세대는 웃음을 터뜨린다. 서울 강남을 관통하는 지하철 3호선 색깔을 따서 만든 ‘오렌지족’의 자유분방하고 패셔너블한 문화도 코미디 소재로 호출된다. 엑스(X) 세대를 자처하는 한 정치인은 1990년대의 사회문화적 유산을 독점하려 하지만, 그 시대정신이 그에게만 귀속되기엔 너무 복잡하고 다양했다.

2024년 2월7일 저녁,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들은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 모여 떡국을 먹었다. 이날은 한국 최초 게이 인권단체인 친구사이가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아 ‘떡국 먹는 날’이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도록 친구사이는 인권운동의 자리를 지켜왔다. 1994년 무렵 시작된 사회운동은 적잖다. 9월 참여연대가 새로운 시민운동의 등장을 알렸고, 인권운동사랑방과 환경운동연합은 한 해 앞서 출범했다. 1987년의 민주화와 1988년의 평등이 여전히 미완의 과제였지만, 한편에선 인권과 평화가 새로운 의제로 떠올랐다.

<한겨레21>은 ‘우연히도’ 1994년 3월16일에 창간했다. 1988년 창간한 <한겨레>가 민주화운동의 결실을 담은 신문이었다면, <한겨레21>은 민주화를 넘어선 과제를 대변하는 매체였다. 민주화 이후에도 배제된 목소리들을 담는 역할을 <한겨레21>은 30년 동안 하려고 애썼다. 전쟁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보도,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반세기 감옥에 갇힌 이들의 인권을 조명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기사는 30년의 이정표로 남아 있다. 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여성,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부딪힌 삶의 난관과 이를 넘는 노력을 담은 기록물이 됐다.

민주화 이후에도 배제된 목소리들을 담다

1994년 훈련병으로 그 여름을 견뎠던 대학생은 1999년 연말 광고회사에서 <한겨레21>로 이직했다. 21세기 직전에 <한겨레21>에 기사를 쓰는 영광을 누렸다. 다른 기자들처럼 <한겨레21>의 애독자였다가 운 좋게 구성원으로 일하게 됐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인 매체에서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수혜자로 산다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 했다. 나 아닌 다른 친구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더 잘했을 텐데,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했다. 덕분에 월급을 받으면서 세상의 흐름을 읽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도 누렸다. 오는 3월이면 창간 30년을 맞는 매체에서 20여 년 지복을 누렸다.

어느새 월급에 중독된 자는 휴직으로 잠시 회사를 떠나는 일에도 두려움이 앞선다. 친구 기능이 패치된 회사 출근을 쉬게 되면 만나는 사람이 0명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래도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언제나 두렵지만 항상 가보면 새로운 것이 있었다고 믿는다. 언제나 시대의 과제에 응답해온 <한겨레21>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34년의 <한겨레21>을 기다린다.

신윤동욱 기자 syuk@hnau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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