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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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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공장, 9044종 발암·독성 물질 사용



녹색병원·금속노조 현장 실태조사…

9.7%는 석면·벤젠·크롬 등 함유한 1~2급 ‘위험군’, 국내 사용 금지된 석면도 검출
등록 2010-11-17 01:44 수정 2020-05-02 19:26

그의 삶은 곧 ‘현대차’다. 예순 살 A씨. 지난해 12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정년퇴직했다. 1979년 3월 봄바람이 첫 출근길을 떠밀었는지 기억이 가물댄다. 30년 넘게 열처리를 맡았다. 쇠를 녹여 모형을 만들었고, 모형은 모여 차가 됐다. “(주간 근무조 때)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9시까지 일했어요. 불 한 번 붙이면 효율을 최대화하려고 점심도 교대로 먹으면서 일했지요.”
올 2월 호흡이 가빴다. 숨 쉬기 어려웠다. 바로 병원에 갔다. 악성 폐암을 진단받았다. 이튿날 울산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입원했다.
“석면을 많이 마셨어요. 마스크도 쓰고 일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겨울 햇볕이 들어오면, 잔가루 같은 게 반짝거리며 날아다녀요. 31년 일하면서 폐암을 얻은 것 같습니다.” 석면은 ‘열처리로’의 보온재였다.
 
협력·부품업체 작업환경 더 유해

» 한 공장에서 벤젠이 함유된 금형 이형제를 도포하고 있다. 벤젠은 1급 발암물질이다.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제공

» 한 공장에서 벤젠이 함유된 금형 이형제를 도포하고 있다. 벤젠은 1급 발암물질이다.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제공

석면. 발암성 1급 물질. “암을 일으키는 것이 사람에 대한 연구조사에서 이미 확증된 물질”로 규정된다. 그래서 발암성 1급 물질은 “국가적으로 사용을 금지 또는 제한”하기도 한다. 실제 A씨는 “울산공장도 10여 년 전부터 열처리로를 바꾸고 유해환경을 개선해갔다”고 말한다. 석면은 국내에서도 이제 사용할 수 없다.

A씨는 산업재해 신청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때 사용하던 장비가 없어졌는데 (노동자가 산재 원인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서) 뜬구름 잡는 거 같습니다. 약을 장기 복용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온 정신이 착 가라앉는 게…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요. 그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에요.”

자동차 산업계에 또 다른 A씨가 얼마나 될지 가늠되지 않는다. 고통의 ‘뿌리’만 확인된다. 국내 자동차 관련 63개 완성차·협력업체 등 사업장에서 9044종의 발암물질 및 독성물질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는 조사보고서가 나왔다. 이 제품 가운데 9.7%가 석면·벤젠·크롬 등 발암성 1~2급 물질을 함유한 ‘위험군’에 속한다. 1급 발암성 제품 사용 비중만 4.2%다. 37.3%가 니켈·노말헥산 등 발암성 3급·기타독성 물질의 ‘주의군’이다. 기업 비밀로 성분명이 제공되지 않는 제품도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발암성 2급은 “암의 발암성 기전 등 여러 근거에 의해 사람에게도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물질”이며 3급은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사람보다는 동물실험 등에서 밝혀진 결과로서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물질”로 정의된다.

이번 보고서는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금속노조(각 지회 또는 지부)가 지난 3월부터 6개월여에 걸쳐 현장 실태조사를 한 끝에 도출됐다. 발암물질 분류는 유럽연합, 국제암연구소, 국립독성프로그램, 미국환경청, 미국국립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의 기준을 따랐다. 가령 벤젠을 1급으로 분류한 기관이 한 곳이라도 있으면 벤젠 제품은 1급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조사 결과, 현대차 울산공장은 전체 평균치보다 많은 발암성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용 제품 1501종 가운데 발암성 1~2급 물질이 함유된 제품이 175종(11.7%), 발암성 3급·기타독성 물질이 함유된 제품이 602종(40%)을 차지했다. 유해요소가 없는 제품은 649종(43.2%)이었다.

기아차 화성공장은 발암성 1~2급 제품이 79종(9.3%)으로 전체 평균치와 비슷했고, 발암성 3급·기타독성 제품이 384종(42.8%)으로 평균보다 높았다. 완성차 업체의 규모가 큰 탓도 있을 것이다.

 

현대차 노조 “4년간 생산직 43명 암으로 사망”

조사 결과는 완성차 쪽보다 협력·부품업체의 작업환경이 더 유해하다고 말한다. ㅌ사에선 33.3%, ㄱ사 28.6%, ㄷ사는 8.3%가 발암성 1급 제품으로, 최악의 여건을 드러내 보였다.

발암성 1급 물질인 벤젠만 보자. 도료나 세척제, 희석제 등의 원료다. 혈액암에 치명적이다. 볼보자동차는 발암물질 기준치인 함유량 0.1% 초과 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기준치 초과 제품을 8개 사업장(12.7%)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기아차 화성공장을 포함해 현대차 협력업체인 울산의 ㄷ사, ㅌ사, ㅁ사, 충남의 ㅇ사 등이 해당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큰형이 경영하는 현대차 협력업체 다스는 남양케미칼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벤젠 함유량이 0.8%로 조사단이 확인한 제품 가운데 가장 높았다.

대·중소 작업장의 여건 차이가 크다. 현재 현대·기아차는 도장 작업이 자동화됐다. 노동자가 직접 도료 등에 노출될 공산이,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하청 작업장보다 낮다.

실태조사단 쪽은 “특히 자동차 시트나 범퍼 제조회사에서 많이 사용하는 이형제(금속 간 분리를 돕는 제품)는 스프레이로 분사하므로 벤젠에 대한 고농도 노출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ㄷ사는 환기장치가 있는데도 노동자들이 벤젠에 노출되고 있다고 조사단은 전한다.

국내 사용 금지 물품인 석면 또한 계속 검출된다. 이번 조사 사업장에서는 브레이크 부품, 주조 공장 단열재 등에서 발견됐다.

A씨와 달리, 고통조차 사라진 이들이 현대차에 기록돼 있다. 이 입수한 현대차 노동조합의 ‘조합원 암 사망자 현황’을 보면, 2006년 9월~2010년 9월 4년 동안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직 암 사망자만 43명(여성 1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위암 13명, 췌장암 8명, 간암 7명 순으로 사망자가 많다. 이어 혈액암과 폐암이 각각 5명이다. 대장암(2명)·담도암·소장암·직장암으로 숨진 이는 5명이었다. 연령(사망시점)별로 구분하면, 40대 34명, 50대 8명, 30대가 1명이다.

이는 노동조합이 자체 파악한 것으로 A씨와 같은 암 발병자나 퇴직 이후 사망자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게다 노동자들이 여러 부서를 순환근무하고 현직 사망자만 일부 추적된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 노동자의 암 발병률 또는 사망률이 얼마나 높은지 분석하긴 어렵다. 현대차 쪽은 “직업성 암을 이유로 산재 승인을 신청한 수치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다만, 2008년 국내 남성의 암 사망률 통계(통계청)와 비교해볼 만하다. 폐암이 24.9%로 가장 많다. 간암(19.4%), 위암(15.3%), 대장암(8.8%), 췌장암(4.9%), 담도암(3.9%) 순으로 비중이 높다. 백혈병은 아홉 번째로 2%다. 현대차 암 사망자의 경우, 국내 남성 암 사망자와 견줘 백혈병이 압도적으로 높고 췌장암도 상대적으로 높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국내 암 사망자의 연령 구분은 안 된다. 대신 암 발병자의 연령별 통계(2007년)를 보면, 35~64살 남성은 위암, 간암, 대장암, 폐암, 갑상샘암 순으로 발병률이 높다. 거칠게 견주자면, 위암과 간암의 비중은 비슷하지만, 현대차 암 사망자 쪽은 백혈병·폐암·췌장암이 도드라진다.

 

볼보의 사용금지 물질로 국내 공장 바닥 세척
» ① 한 주물 사업장에서 주물사를 이용해 틀을 만들고 있다. 1급 발암물질인 결정형 실리카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②산업안전보건법상 2009년 1월1일부로 석면이 함유된 제품의 사용이 금지됐지만 자동차 공장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③ 인천의 한 사업장에서 상표도 없는 도장용 스프레이를 사용하고 있다. 회사는 “자동차 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때문에 값싼 화학제품을 들여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④ 1급 발암물질 벤젠이 포함된 이형제를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탱크에 보충하고 있다. 사진은 모두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제공.

» ① 한 주물 사업장에서 주물사를 이용해 틀을 만들고 있다. 1급 발암물질인 결정형 실리카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②산업안전보건법상 2009년 1월1일부로 석면이 함유된 제품의 사용이 금지됐지만 자동차 공장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③ 인천의 한 사업장에서 상표도 없는 도장용 스프레이를 사용하고 있다. 회사는 “자동차 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때문에 값싼 화학제품을 들여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④ 1급 발암물질 벤젠이 포함된 이형제를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탱크에 보충하고 있다. 사진은 모두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제공.

김신범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실장은 “전체 남성의 암 발생률 순위와 비교하면, 췌장암과 혈액암 비중이 높고, 폐암도 대장암에 비해 높다. 케이스가 적기 때문에 문제적 상황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현대차의 경우 혈액암과 폐암은 직업 관련성을 따져볼 이유가 충분하며 췌장암이 높은 이유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발암물질에 노출된다 하여 모두 암에 걸리진 않는다. 흡연자가 모두 폐암에 걸리지 않고, 삼성전자 생산직이 모두 백혈병에 걸리지 않는 것과 같다.

조사단은 개연성에 주목한다. 도장·용접·도금 작업에서 발견된 니켈·크롬 등은 폐암과 비강암, 도장·세척 작업 등에서 발견된 벤젠은 혈액암, 주조 작업과 열처리 작업에서의 석면 등은 폐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곧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암 발병이나 사망을 ‘직업성’이라 규명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 현대·기아차 홍보담당자는 “산업 전반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발암물질에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암의 원인 규명이 안 된 상태에서 산재로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기아차의 B(40대)씨는 지난해 9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았다. 1990년 광주공장에 입사한 뒤 트럭제조부, 소형제조 도장과에서 일했다. 역학조사를 통해 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쪽은 “(백혈병) 원인이 될 만한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개연성은 있으나, 노출 추정 기간이나 누적 노출량 등을 고려할 때 이들에 의해 유발됐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냈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업계에선 발빠르게 유해물질을 규제해간다. ‘클린카’를 국가가, 소비자가 요구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볼보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사용금지(블랙)·주의(그레이)·안전대체(화이트) 물질을 구분하고 있다. ‘볼보리스트’라 불린다. 이질산 니켈이나 크롬산 납 제품 등의 사용을 금지한다.

볼보차가 블랙리스트로 제한한 물질이 국내에선 공장 바닥 세척제로 사용된다.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발견된 노닐페놀 에톡실레이트다. 볼보차가 금지하는 물질의 10%가량(959종)이 국내 공장에서 사용된다.

조사단 쪽은 “(본질은) 자동차 업계에서 직업성 암이 개념화도 안 된 상태라는 점이며, 때문에 발암물질이 안 들어간 제품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지나치게,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암 산재 인정 근거 마련 시급해”

유해물질 관리 수준부터 선진국과 크게 차이날 수밖에 없다. 업계와 노동자 모두 위험성에 대한 인식조차 희박하단 얘기다. ‘직업성 암’조차 자·타의로 개인 몫이 됐을 가능성을 말한다.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에서 산재 상담을 돕는 문길주 국장은 “노동자가 어떤 물질을 사용하는지도 모르고, 회사가 그런 정보를 주지도 않아, (위험을) 알 권리와 피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이 문제가 불거지지 않은 것도 ‘내가 운이 없어 걸린 병’이라며 드러내지 않은 탓”이라고 말한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암환자가 산재로 인정된 경우가 전무하단 사실은 해서 놀랍지 않다. 현대차는 조사단 쪽 주장이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작업현장을 꾸준히 개선하고 정기검진 등을 하고 있다”며 “현대차 내 암 발생률은 국내 암 발생률보다 현저히 낮다. 우리는 국내 산업을 통틀어 (유해물질 관리에) 가장 신경 쓰고 우수하다고 평가한다”고 말한다.

현대·기아차 노조는 이번 발암물질 진단사업 결과보고서를 지난 9월 완성했으며, 금속노조는 이를 포함한 전체 결과보고서를 11월16일에 발표할 예정이다.

현대차 이경훈 노조위원장은 “현대차 노조 사상 최초로 진행된 발암물질 진단사업”으로 규정하며 “조합원들이 고령화돼가고 장기적으로 유해물질에 노출돼온 것을 감안하면, 직업성 암의 산재 인정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고 보고서에서 말했다.

삼성전자는 직업성 암을 주장하는 노동자와 대결을 택했다. 현대·기아차는 어떤 선택을 할지 노동자가 이제 처음으로 묻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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