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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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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X, 왜 외국X 만나고 다니냐”

‘후세인 모욕’ 보도 뒤 “외국인 남편과 동행 때 폭언 경험” 국내 여성들 제보 잇따라…
대기업 회장 등 독자들 “대신 사과” 뜨거운 반향
등록 2009-09-18 04:45 수정 2020-05-02 19:25

9월11일 새벽 12시30분, 인도 출신의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아파트 단지 사이의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이제 200m만 가면 집이다. 맞은편에서 20대 중반의 남자가 걸어왔다.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다. 근처에 사는 주민일 게다. 별 생각 없이 엇갈려 지나쳤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티셔츠 사내’가 흠칫했다. 후세인 교수는 그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초가 지났을까. 그 남자가 갑자기 뒤돌아서 후세인 교수에게 소리쳤다. “그의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몸짓과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고 후세인 교수는 말했다.
후세인 교수는 걸음을 재촉했다. ‘티셔츠 사내’도 빠른 걸음으로 따라왔다. 연방 위협적인 몸짓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두려움에 빠진 후세인 교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집중해 들을 수 없었다. 후세인 교수는 달리기 시작했다. ‘티셔츠 사내’도 달렸다. 간신히 집에 도착해 문을 걸어잠근 후세인 교수는 112에 신고했다. 두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양복 사내’에 이어 ‘티셔츠 사내’다.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서울 도심 거리를 걷고 있다. 사진 한겨레 자료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서울 도심 거리를 걷고 있다. 사진 한겨레 자료

후세인 교수 밤길에 봉변당할 뻔

다시 만난 ‘양복 사내’는 정중하고 공손했다. 예전과는 딴판이었다. 지난 7월10일, 그는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에게 욕설했었다. “냄새나는 더러운 ××”라고 말했다.( 773호 줌인 ‘냄새나는 한국의 인종차별’)

“당신이 그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나의 실수였습니다.” 인천지검 부천지청 형사2부 조사실에서 ‘양복 사내’ 박아무개(31)씨는 후세인 연구교수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담당 검사가 두 사람을 함께 불러 자초지종을 듣는 자리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 꼭 한 달 만인 지난 8월 중순이었다.

검사가 박씨에게 물었다. “후세인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박씨가 후세인 교수에게 말했다. “절대로 인종을 차별하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정중하게 용서를 빌며 고소 취하를 부탁했다. 후세인 교수는 “무척 예의 바른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예의 바른 사내’에 대한 고소는 취하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어떤 기록도 남지 않을 테니까요. 이 사건이 공식적으로 기록되길 바랐으니까요.”

결국 부천지청은 지난 8월28일, 박씨를 모욕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 이후 형 확정까지는 보통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언론은 인종차별에 대한 국내 첫 처벌이라고 크게 보도했다. ‘티셔츠 사내’가 후세인 교수의 얼굴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일 것이다.

정작 부천지청 쪽은 담담하다. “보통의 고소 사건과 마찬가지의 잣대와 방법으로 조사하고 기소했다”고 부천지청 관계자는 말했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따로 있지 않은 데서 비롯한 일이다. 벌금 액수에 대해선 “같은 유형의 사건에서 내국인에게 적용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50만원 이상 100만원 이하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액수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밋밋한 검찰의 태도는 전향적인 독자의 태도와 비교된다. 후세인 교수에 대한 의 보도 직후, 수많은 독자들이 댓글과 전자우편으로 “대신 사과해달라”는 뜻을 보냈다. “기사를 읽고 마음에 큰 응어리가 졌습니다. 후세인씨에게 너무나 미안합니다. 대신 전해주세요. ‘후세인씨, 양복의 사내는 잊어주세요. 한국에는 더 상냥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건강하세요.’”(김명수)

중고생·대학생·유학생·노동자·주부·교사 등과 어울려 대기업 회장도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이런 이유 없는 폭력과 폭언의 대상은 바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소중한 고객입니다. 그들의 고국에서 (우리 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으로 우리는 현대 문명과 풍요한 사회를 유지합니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비이성적 행동을 볼 때마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부끄럽습니다. 후세인 교수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해주세요.” 박용만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의 글이었다.

후세인과 함께 있던 친구의 모멸은 묻혀

그러나 후세인 교수의 친구 한아무개씨의 마음은 편치 않다. 후세인 교수와 버스를 같이 타고 있었던 한씨는 당시 “조선× 맞느냐”는 욕설을 들었다. 그도 박씨를 모욕 혐의로 고소한 당사자이자 피해자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 보도에서 한씨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주자·외국인과 친구 또는 가족으로 지내는 한국인, 특히 한국 여성들이 입는 피해는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죠.”

보도 직후 서울에 사는 27살의 김아무개씨가 전자우편을 보냈다. “한국 중년 남성들의 따가운 시선과 모욕”에 대한 경험을 들려줬다. 김씨의 남편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백인이다. 부부는 지난해 12월3일을 잊을 수 없다. 혼인신고를 한 날이었다. 예기치 않은 모욕을 당한 날이기도 했다.

부부는 명동 거리를 나란히 걷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양복을 차려입은 한국인 중년 남성이 걸어왔다. ‘중년의 양복 사내’는 고개를 흔들고 혀를 끌끌 찼다. “에잇, 양공주. 더럽게….” 김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중년의 양복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 “양공주, 더러운 년, 창녀, 후커(hooker), 호어(whore)” 등의 욕설을 2개 국어로 쏟아냈다. “네 부모가 불쌍하다. 어디서 너 같은 것을 낳았느냐. 너 영어는 할 줄 알면서 그 남자 옆에 있는 거야?” 참혹했던 그날의 기억에 대해 김씨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경찰서에 바로 끌고 가겠다”고 썼다.

또 다른 독자 최현정(37)씨는 영어학원 강사다. 3년 전 뉴질랜드인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은 혼혈이다. 아버지는 파키스탄에서 이민왔고, 어머니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백인이다. 그의 외모는 파키스탄 출신인 아버지 쪽을 닮았다. “함께 있으면 한국 남자들이 저를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수많은 한국 남자를 놔두고 왜 외국놈을 만나고 다니느냐’, 그 눈길들이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했죠.”

정작 신기한 일은 따로 있었다. 남편이 유창한 영어를 시작하면 한국 남자들의 눈길이 사그라졌다. “말하지 않고 입 다물고 있으면 계속 쳐다봐요. 그런데 동남아 사람처럼 생겼는데도 영어를 아주 잘한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눈길을 돌려요. 후세인 교수의 영어는 유창하지는 않다. 그의 영어가 ‘네이티브’(navtive) 수준이었다면 ‘양복 사내’도 좀더 정중하게 대했을까.

일부 독자들은 ‘외국인 차별’이 아니라 ‘외국인 범죄’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청년이라고 밝힌 김아무개씨는 취재진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공장 내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한테 욕설과 협박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경기 일산에서 벌어진 러시아인들의 한국인 집단폭행 사건을 거론하면서 “외국인이 내국인을 상대로 이렇게 심각한 폭력을 저지르는 나라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를 대신해 후세인 교수에게 물었더니, “아주 간단한 문제”라고 답한다. “범죄는 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합니다. 한국인, 외국인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한국인에 대한 모욕을 처벌하는 법이 없어도 괜찮습니까? 외국인 범죄 비율은 항상 과장됩니다. 설사 외국인 범죄가 있다 해도 외국인에 대한 모욕과 차별을 처벌하는 법은 그것대로 있어야 마땅하죠.”

인종차별 금지 법안 제출 예정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이번 일을 계기 삼아 ‘인종차별 금지 법안’을 9월 정기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인종·국가·민족·피부색 등을 이유로 악의적인 인종차별을 하면 국가인권위의 시정 명령을 거쳐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뼈대다.

그 법이 만들어지면 후세인 교수는 안심할 수 있을까. ‘티셔츠 사내’에게 쫓기던 9월11일 새벽,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2명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친절했으나 후세인 교수의 진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통역을 부탁했다. 경찰이 사건을 이해했을 때는 새벽 2시30분이었다. ‘티셔츠 사내’의 종적이 사라진 뒤였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신체적 위협을 당한 건 처음입니다. 한국에서 사는 게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됐어요.”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지 물었다.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제 알아서 조심하는 것. 아무 보호막 없는 약자가 지닌 유일한 무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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