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냄새나는 한국의 인종차별

성공회대 연구교수 보노짓 후세인, 버스에서 심한 욕 듣고 ‘모욕죄’로 고소…
인종차별 행위를 처벌하는 첫 사례 될까
등록 2009-08-14 07:06 수정 2020-05-02 19:25

스물여덟 살의 보노짓 후세인은 삼겹살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매일 아침마다 삼겹살을 먹을 순 없다. 오전 10시,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 연구소에 출근해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후세인이 나고 자란 인도 아삼은 차 생산지로 유명하다. 영국인들이 마시는 홍차의 원산지가 아삼이다. 다른 차에 비해 향이 강하다. 그는 어머니가 아침마다 마련해주시던 ‘아삼 티’와 라이스 케이크가 그립다.

인도인이 들은 “You Arab, you Arab!”

출퇴근시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후세인.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사진 김하늬 인턴기자

출퇴근시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후세인.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사진 김하늬 인턴기자

후세인은 버스를 좋아한다. 버스에선 혼자 앉을 수 있다. 여럿이 끼어 앉는 지하철보다 낫다. 2년 반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지하철이 쾌적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에 지하철을 주로 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불쾌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은 같은 지하철에 올라탄 백인들에겐 다른 시선을 줬다. 후세인은 불쾌했다. 버스는 덜 쾌적하지만 덜 불쾌했다.

그래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잠에 취해 종점까지 가버렸다. 운전기사는 한국인 승객의 어깨를 손으로 치며 깨웠다. 운전기사는 후세인에게 다가와 발로 툭툭 차며 깨웠다. 한국인에게는 공손했고, 후세인에게는 무례했다.

그 다음부턴 버스에서 잠들지 않았다. 7월10일 밤 9시, 부일교통이 운영하는 에메랄드빛 52번 시내버스를 탔을 때에도 후세인은 잠들지 않았다. 경기 부천에 살다가 서울 구로역 근처로 이사하는 날이었다. 이삿짐을 옮겨주려고 30대 초반의 한국인 한아무개씨가 찾아왔다. 한씨는 후세인의 친구다. 아시아 시민단체인 ‘아레나’(ARENA·새로운 대안을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에서 2년 전 만났다.

두 사람은 버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후세인은 한국인들의 ‘시선’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아레나 한국 지부 회의에서 나왔던 주제들을 의논했다. 그 순간, 후세인의 위태롭던 한국 생활이 마침내 밑바닥부터 무너져내렸다.

“더러운 ××!” 버스 안에는 10여 명이 타고 있었다. 한가로운 버스 안에서 그 목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후세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한 사내의 손이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아래위로 갖춰입은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후세인이 돌아보자 그가 외쳤다. “더러워, 너 더러워. 이 개××야!” 그의 손가락이 연방 후세인을 향했다. 후세인은 놀란 눈으로 그저 그를 바라봤다. “너 어디서 왔어, 이 냄새나는 ××야.”

사람이 앉지 않는 옆자리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양복 사내’는 영어로 물었다. “웨어 아 유 프럼(Where are you from)?” 후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유 아랍, 유 아랍(You Arab, you Arab)!” 사내가 말했다. 후세인은 한국말이 서툴지만, “적어도 몇몇 한국 욕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게다가 그의 몸짓과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고 나중에 회고했다. 참다 못해 후세인이 물었다. “왓 이즈 유어 프로블럼(What is your problem)?” ‘양복 사내’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답해주지 않았다. 그냥 “아랍(Arab)!”이라는 짧은 영어만 반복했다.

후세인은 아랍과는 별 상관 없는 사람이다. 그는 천생 인도인이다. 인도인의 기원을 굳이 따지자면, 유럽계 아리아인과 아프리카계 드라비다인의 혼혈이다. 신문사 편집장인 후세인의 아버지는 무슬림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힌두교도다. 인도 중산층에서 태어난 후세인은 부모의 종교 가운데 어느 것도 믿지 않는다. 뉴델리의 델리대학에서 현대사를 전공해 2003년 졸업했다. 이후 환경·인권 운동 분야에서 일했다. 2년 반 전,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에 유학을 왔고 이내 연구교수가 됐다.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종차별이 그의 관심사다. 후세인은 아랍은커녕 중동 문제와도 별 상관이 없다.

그래도 후세인은 한국에 살면서 이유 없이 욕을 먹었다. 사람들은 그의 곱슬머리와 까만 피부, 쌍꺼풀이 짙은 큰 눈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타면 사람들은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았다. 후세인이 앉으면 옆자리에 있던 사람이 자리를 옮겼다. 손으로 코를 막고 자리를 옮겼다. 공연히 그를 툭 치고 지나가거나 욕을 했다. 백인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후세인은 항상 이런 일을 겪었다. 그때마다 참았다.

그러나 7월10일엔 달랐다. 이번에는 한국인 친구가 함께 있었다. 한국인 친구는 한국인 사내에게 한국말로 항의할 수 있었다. “왜 그래요?” 함께 있던 한씨가 ‘양복 사내’에게 물었다. “넌 정체가 뭐야? 조선× 맞냐?” 그가 한씨에게 빈정댔다.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던 ‘양복 사내’는 한씨가 끼어들자 점점 그들에게 다가왔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 냄새나. 이 더러운 ××야.” 후세인은 한국 사람들의 냄새를 피한 적이 없다. 어떤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한테서 마늘과 김치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후세인에겐 그런 냄새가 익숙했다. 인도 음식에도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다. 후세인은 한국 사람에게 냄새가 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사내는 그에게 냄새가 난다고 한다. 사내는 급기야 세 번째 손가락을 치켜들어, 이날 발언 가운데 세 번째로 영어를 썼다. “퍽 유, 퍽 유(fuck you, fuck you).”

옆에 있던 한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복 사내’의 양복 깃을 잡았다. 경찰서에 함께 가자고 요구했다. 사내는 그녀의 종아리를 발로 찼다. “조선×이 새까만 자식이랑 사귀니까 기분 좋으냐?” 한씨는 버스기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기사는 “조금만 더 가면 경찰서가 있으니 세워주겠다”고 했다. 다른 승객들은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양복 사내’는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가운뎃손가락을 보이며 연거푸 “퍽 유(fuck you)”를 외쳤다. 버스 앞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어느 40대 여성 승객이 사내에게 그만하라고 말했다. 후세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까지 욕보이는 ‘양복 사내’에게 화가 났다. 아무 말도 않고 그저 고개만 가로젓던 후세인은 더 참을 수 없었다. 그도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나중에 맞고소를 당하는 빌미가 될 행동이었다. “너무도 충격적인 상황인데 말도 못하고 행동도 할 수 없어 ‘딱 한 번’ 그렇게 했다”고 그가 나중에 말했다.

서울 강남역 대로에 홀로 서 있는 후세인. 한국인의 차별 속에 외롭게 서 있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사진 김하늬 인턴기자

서울 강남역 대로에 홀로 서 있는 후세인. 한국인의 차별 속에 외롭게 서 있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사진 김하늬 인턴기자

“백인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15분 뒤에 52번 버스가 경찰서 근처에 섰다. 사내는 내리지 않으려 했으나 후세인과 한씨가 양팔을 끼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만하라”고 말리던 여성 승객 한 명이 증인이 돼주겠다며 함께 내렸다. 중년의 이 여성은 “앞쪽에 앉아 있어서 모든 대화를 다 듣진 못했지만, ‘더러운 새끼’ ‘아랍’이라는 말로 욕하는 것을 들었다. 후세인씨를 테러리스트로 취급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나중에 증언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린 ‘양복 사내’는 경찰서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사내는 한씨의 팔을 손톱으로 꼬집고 비틀었다. 그렇게 100m 정도를 옥신각신하며 경찰서로 갔다.

부천중부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밤 9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양복 사내’는 사건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내가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일이 커졌다….” 경찰이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양복 사내’가 일어서서 나가려 했다. 깜짝 놀란 한씨는 “저 사람이 도망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경찰관에게 말했다. 경찰관은 “왜 당신이 상관하느냐. 도망가면 경찰이 해결하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씨는 기억한다. 경찰서 쪽은 “청문감사관실을 통해 당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 등을 조사했지만, 전혀 그런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어쨌든 ‘양복 사내’는 경찰서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5분이 지났다. 다른 경찰관들이 경찰서로 들어왔다. 처음에 있던 경찰관이 이들에게 사건 경위를 전했다. ‘양복 사내’가 진술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씨가 이의를 제기하며 울음을 터뜨리자, 경찰관은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가 울자 ‘양복 사내’는 “오버하고 있다”며 비아냥댔다. 한국말을 못하는 후세인은 경찰서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세 사람은 다시 경찰차에 탔다. 부천중부경찰서 관할인 계남지구대로 향했다. 경찰서에서 바로 조사를 벌이지 않은 데 대해 경찰서 쪽은 “우선 관할 지구대가 조사를 한 뒤, 경찰서로 넘기는 게 관행”이라고 밝혔다. 경찰차에 함께 탄 경찰관은 서로 화해하라고 제안했다. 한씨는 “그 경찰관이 ‘한국에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경찰차에서 후세인은 이날 처음으로 길게 말했다. “나는 반드시 법적 절차를 밟아 모든 일이 기록되는 것을 원한다. 이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이다. 내가 백인이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한씨가 통역했다. 부천중부경찰서 쪽은 “자체 감사 결과, 합의를 종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만에 하나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하더라도, 사건을 원만하게 합의 처리할 수 있다고 알리는 것은 경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저녁 9시50분께 계남지구대에 도착했다. 경찰은 세 사람의 신분을 확인했다. 후세인도 신분증을 냈다. 법무부가 발급한 외국인등록증과 성공회대가 발급한 연구교수 신분증이었다. 신분증을 받은 경찰은 후세인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그의 외국인등록증에는 ‘E-1’이라고 적혀 있었다. ‘E-1’은 전문직 비자를 뜻한다. “1982년생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교수가 됐느냐고 경찰이 물었어요. 교수라는 사실을 좀체 믿지 않으려고 했지요.” 한씨의 회고다.

인종차별을 처벌하는 규정 따로 없어

계남지구대의 경찰관 한 명은 후세인에게 반말을 했다고 한씨는 증언했다. “아저씨, 한국에 몇 년 있었어?” 그 경찰관은 한국인인 한씨와 ‘양복 사내’에게는 존댓말을 썼다. 얼마 뒤 ‘양복 사내’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후세인과 한씨는 그를 외면하거나 피했지만, ‘양복 사내’는 “그냥 합의하자”고 거듭 말했다. “한국인끼리 그러지 말자”고 한씨에게 말했다. 한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합의 제의를 거절당한 ‘양복 사내’는 “똘아이” “4차원” “상식이 없다”고 말했다.

“저리 좀 가요!” 한씨가 ‘양복 사내’에게 말했다. 경찰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이 사람 좀 떼어달라”고 했다. 경찰은 ‘양복 사내’에게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했지만, 더 이상 제지하진 않았다. 후세인과 한씨는 ‘양복 사내’를 피해 지구대 안을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밤 11시10분께, 그들은 계남지구대에서 다시 차로 이동했다. 부천중부경찰서에서 세 사람은 다시 조사를 받았다.

후세인과 한씨는 ‘양복 사내’를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상대 역시 모욕을 당했다며 맞고소했다. 부천중부경찰서는 세 사람을 불구속 입건했다. 현재 사건은 인천지검 부천지청에 송치돼 있다. 외국인이 인종차별을 이유로 한국인을 고소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법은 인종차별을 처벌하는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후세인이 기댄 한국 법규는 ‘모욕죄’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미국은 인종차별법을 만들어 관련 행위를 처벌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관련 법규가 없다”며 “유엔 등은 한국의 헌법에 규정된 차별 금지 조항에 인종차별이 빠진 점 등을 지적하며 시정을 권고하고 있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을 만들려는 인권단체의 노력이 계속 난관에 부딪혀왔다”고 말했다.

7월11일 새벽 2시30분, 5시간에 걸친 조사를 끝내고 후세인은 경찰서를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양복 사내’가 먼저 경찰서를 떠난 뒤였다. 그날 이후, 후세인은 더 심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 사건 때문에 혹시 또 다른 한국 사람이 그를 위협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31살의 회사원 박아무개씨로 알려진 ‘양복 사내’의 생각을 들으려 했으나, 경찰은 “모든 사건 기록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히고, 검찰은 “수사 당사자의 신원을 알려줄 수 없다”는 태도여서 직접 접촉할 수 없었다. 다만 부천중부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버스를 탔는데 앞에 있던 후세인이 남을 의식하지 않고 큰 소리로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화가 치밀어 심한 말을 한 것 같지만, 후세인도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욕을 하는 등 나에게 모욕을 줬다”는 게 박씨의 진술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부천지청 쪽은 “외국인과 관련된 사건인 만큼 신중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일 박씨에 대한 처벌이 이뤄진다면 인종차별을 모욕 행위로 인정하는 한국 최초의 사례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후세인은 ‘양복 사내’가 심하게 처벌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인종차별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제가 그날 그를 경찰서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한국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그걸 알지 못했겠죠.” 버스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후세인의 옆자리는 당분간 계속 비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코를 막으며 자리를 옮길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종차별을 연구하는 후세인은 당분간 그런 한국 생활을 계속할 계획이다.



성차별이 착종된 사건
동행 한국‘여성’에게 혀 차는 ‘중년 남자’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특성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착종돼 있다는 점이다. 보노짓 후세인과 함께 있었던 한아무개씨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조선×’이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씨는 예전에도 백인이 아닌 외국인들과 함께 있을 때 비슷한 일을 종종 겪었다. 특히 아시아계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면 “아무리 작게 이야기해도 주변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반면 백인들과 영어로 말하면 그런 일이 없었다. “오히려 긍정적 시선으로 관심을 가졌다”는 게 한씨의 기억이다. 한씨는 “이번 사건은 한국인 여성이 다른 민족과 동행한다는 사실 자체를 비도덕적이고 불순한 것으로 본 데서 시작됐다”며 “이는 순혈주의적 민족주의, 인종혐오, 가부장주의 등 세 가지 요소가 합쳐진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 8월2일 기자가 후세인을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같은 종류의 편견을 겪었다. 번화가인 서울 강남역에서 만나 커피숍까지 걸어가는 10여 분 동안, 행인들의 관심은 후세인과 그 동행인에게 쏠렸다. 커피숍에서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사람들은 후세인보다는 그와 함께 있는 ‘여성’ 기자에게 집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후세인과 같은 버스를 탔는데, 앞에 있던 중년의 한 남성이 기자를 보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돌아앉았다. 그는 기자의 귀에 들리도록 혀를 끌끌 찼다.
김하늬 인턴 기자

안수찬 기자 ahn@hani.co.kr·김하늬 인턴기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