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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5돌 기획 ②] “2024년, 초록 꿈 이뤄주세요”

수원칠보산자유학교 아이들과 그려본 15년 뒤 상상화, 그리고 희망사항
등록 2009-03-25 04:10 수정 2020-05-02 19:25

“아픈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병원이 폐쇄됐으면 좋겠어요.” “태양열로만 가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요.” “마당에는 바로 떠먹을 수 있는 샘물이 있고 그 옆엔 동물들이 뛰어다녀요!”
초등 대안학교인 수원칠보산자유학교 3학년 13명의 아이들이 작은 교실에서 둘러앉아 쉴 새 없이 조잘댔다. 3월11일 수요일 오후 2시 미술 시간, 이날은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란 주제로 공동작업을 하는 수업이 한창이었다.

다 그린 협동작품을 들어 보이는 수원칠보산자유학교 3학년 학생들. 기념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장난을 치느라 바쁘다.

다 그린 협동작품을 들어 보이는 수원칠보산자유학교 3학년 학생들. 기념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장난을 치느라 바쁘다.

‘곰신’이 없어지고 주상복합 찬밥?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는 사이, 눈을 들어 교실 창문 밖 하늘을 본다. 학교 앞 작은 마당에 햇빛이 가득하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15년 뒤, 2024년엔 어떤 세상이 올까? 어떤 것이 없어지고 무엇이 새로 생겨날까? 생각이 자란다.

우선, ‘곰신’이 없어지지 않을까? ‘곰신’은 ‘고무신’의 줄임말로 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을 뜻한다. 인터넷 카페 ‘짬밥 같이 먹기’에만 15만 ‘곰신’이 ‘근무 중 이상 무’다. 군복무 기간이 줄어들고 유급지원병제가 도입되고 병력감축안이 포함된 ‘국방개혁 2020’이 발표된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설레었다. 한데 지난해 말 한나라당은 ‘국방개혁 2020’의 전면 재검토를 추진했다. 서로 다른 미래를 원하는 이들, 그래도 2024년에 희망을 걸고싶다.

“전주시는 올해 건축된 지 15년 이상 된 32개 노후 아파트 단지에….” 뉴스가 떠오른다. 피식 웃음이 난다. 2024년이 되면 우리가 오늘 환호했던 재건축 아파트나 뉴타운, 초고층 주상복합도 그저 ‘노후 아파트’로 남고 말 것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달동네에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싶어하지 않을까.

겉은 소박해도 집안은 더 똑똑해 질 게다. 어쩌면 집 스스로가 청소를 하는 ‘로봇 인테리어’가 가능해 질지도 모른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이미 기술 개발이 돼 15년 후엔 상용화 될지도 모른다니 기대된다.

그나저나 핀란드 의회에는 15개 상임위 중 미래위원회가 있어 총리실과 17명의 위원이 ‘15년 뒤 미래사회에 대한 비전과 발전 전략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데, 우리 정부의 ‘15년 뒤 비전’은 뭘까. 땅을 파고, 초고층 건물을 허가하고, 일제고사를 보게 하고, 사이버 모욕죄를 만드는 게 미래 준비 작업일까.

“이것도 한번 보실래요?” 미술 선생님이 불쑥 스케치북 몇 개를 건넨다. 이틀 전 같은 학교 6학년 아이들이 그린 ‘15년 뒤 미래 모습’이란다. 스케치북마다 검정색·회색 등 어두운 색깔이 가득하다.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반쯤 물에 잠겨 있고 자동자에선 시커먼 매연이 곧장 하늘을 향한다. “아이들이 지구온난화와 환경문제를 가장 걱정했다”는 설명이다.

6학년은 “지구가 물에 잠길까 걱정”

거의 완성 단계인 3학년 아이들의 협동작품을 바라봤다. 커다란 종이 가득 파란색과 초록색이다. 게시판에 ‘내 꿈은 자동차 디자이너’라고 쓴 하성이는 계속 자동차만 그렸고 화가가 되고 싶다는 소담이는 장애가 있는 같은 반 친구를 돕고 있었다. 아이들의 검은 절망을 걷어내고 초록 꿈, 파란 꿈을 이뤄주는 것은 어른들의 과제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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