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8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YTN 사옥 뒤편에서 ‘구본홍 사장 출근저지 투쟁’을 하기 위해 150여 명의 기자들이 모였다. 박순표 기자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구본홍 사장이 7월2일부터 4일까지 사흘 동안 하룻밤에 79만원짜리 호텔방을 잡아놓고 박선규 청와대 비서관과 만났답니다. 하룻밤에 79만원이랍니다. 사장도 되기 전에, 회사돈을 물 쓰듯이 쓰고 다닙니다. 도대체가 말이 되는 일입니까.” 이날 는 ‘구본홍 YTN 사장이 청와대 박선규 비서관을 한 호텔 방에서 만났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이 만난 7월2일은 구본홍 사장이 ‘날치기 사장 선임안 통과’로 사장이 되기 전이다. 노종면 YTN 노조 위원장도 목소리를 높였다. “업무보고는 회사에서 받지, 왜 호텔에서 받습니까. 워낙에 구 사장이 그 호텔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또 종로구 수선동에 있는 레지던스를 빌려서 쓰고 있습니다. 보증금이 3천만원에 매달 350만원씩 낸답니다. 전임 사장들 중 누구도 그런 일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본홍 사장을 피상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반대하는 구본홍 사장은 이틀 전인 10월6일 오후 6시 노종면 위원장, 권석재 사무국장 등 현 노조 집행부를 포함해 현덕수 전 노조위원장 등 6명을 해고했다. 729호 표지이야기 기사에서 “올바른 투쟁 역사를 만들고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던 우장균 기자도 해고자 명단에 포함됐다. 또 임장혁 돌발영상팀장 등 6명은 정직, 박소정 기자 등 8명은 감봉, 13명은 경고 조처를 당했다. 업무방해, 인사불복종 등이 이유였다.
해고 당한 이들은 이틀 뒤인 8일에야 ‘해고’를 실감했다. 기사를 송고하고 취재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접속하는 회사 뉴스 서비스 시스템과 메일센터 등의 접속을 차단당했기 때문이다. 6명 ‘해직기자’들의 출입증도 사용할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
노종면 위원장은 “사실 그동안 바빠서 해고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전자우편을 확인하려고 메일센터에 접속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는데 안 열리더라. 출입증도 막아버려서 회사에 들어갈 수도 없더라. 결국 동료 출입증을 빌려서 회사에 들어갔다. ‘아, 내가 잘렸구나’ 잠시 개인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현덕수 전 노조위원장은 씁쓸해했다. 노조위원장에서 경제부 차장으로 복귀한 현 기자는 농림수산식품부와 통상교섭본부 등을 출입한다. 현 기자는 “통상교섭본부 홍보실에서 이번주 수요일 정례 브리핑에는 꼭 와달라고 전화가 왔다. 회사 뉴스 시스템에 출입처 관련 인계 사항을 올려두려고 접속했더니 접속이 안 되더라. 통상적인 해고라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전자우편을 정리하고 업무도 인계할 여유를 주는 것이 순리 아닌가. 우리 회사가 이렇게 빡빡한 덴지 몰랐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해고는 자아실현의 수단과 생계수단 두 가지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사 14년차인 그의 실급여는 1년에 6천만원이다. 매달 500여만원의 급여가 끊기는 셈이다. 현 기자는 “아내가 교사다. 외벌이하는 후배에 비해서는 생계 부담은 좀 덜하지만, 그래도 가정에 타격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고당한 6명의 기자들은 집에서 해고 사실을 알까봐 걱정했다. 조승호 기자는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그리고 4살배기 세 아이에게 말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말하려면 아빠가 해고당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아빠가 왜 해고당했는지까지도 말해줘야지 아이들도 충격을 덜 받고 의미를 이해할 것 같은데, 아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말하는 것을 미뤄두고 있다.” 고향에 계신 어른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멀쩡히 직장 잘 다니다가 갑자기 ‘실업자’가 되면 부모님들이 걱정하실 테니….” 그가 말을 흐렸다.
부모와 아이들에겐 해고 사실 숨겨동료들의 연대는 눈물겹다. 해고 조처가 있은 다음날부터 동료 기자들은 보도국장실 등 간부·인사위원들을 찾아가 징계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왕선택 정치부 기자는 10월8일 보도국 간부 회의실을 찾아가 “이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좋은 건물로 옮기고 잘 먹고 잘 사는 거 아니예요. 돌발영상도 노종면, 얘가 만들었어요. 제가 외교통상부에 나가서 당당할 수 있는 것도, 후배들이 그동안 다 잘했기 때문이에요. 선배들이 버젓하게 양복 입고 넥타이 입고 앉아 있는 것도 다 후배들 때문이에요. 근데 그들을 자르다니요. 그러면 안 됩니다. 움직이셔야 합니다. 제발”이라며 눈물로 하소연했다. 이야기를 듣던 여러 노조원들도 함께 울었다. 징계 대상자가 되지 않은 다른 기자들은 “나도 징계하라”고 나서고 있다. 황순욱 기자는 “출근저지 투쟁을 징계당한 33명만 한 것은 아니다”라며 “같은 출근저지 투쟁을 YTN의 수많은 기자들이 했는데, 딱 33명에 대해서 경고, 감봉, 정직 심지어 해고까지 하니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고 말했다. 황 기자는 “지금 동료 기자들이 우리의 징계 사유를 모아서 ‘나도 징계하라’고 건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조 게시판에는 ‘희망펀드’를 조성하자는 글도 올라왔다. 해고자, 감봉자 등을 위해 한 사람당 10만원씩 매달 월급에서 이체해 이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내용이다. 이에 “좋다”라는 댓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투쟁은 한층 더 가열차다. 이날부터 YTN 노조는 ‘블랙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방송에 출연하는 모든 앵커와 기자들이 검정 옷을 입고, 검정 넥타이를 매기로 했다. 노조 조합원 33명의 징계로 YTN의 ‘공정방송’ 의지가 꺾였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알리는 투쟁이다. 정유신 기자는 “블랙투쟁이 끝이 아니다. 아직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해고까지 남발한 회사 쪽은 이제 카드를 다 써버렸을 것”이라며 “해고는 최악의 수”라고 말했다.
이미 10월9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구 사장 퇴진’ 이야기를 꺼냈다.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사장 선출 과정에서 용역을 부르고 기자를 대량 해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징계를 되돌리라”고 말했다. 김창수 자유선진당 의원은 “이번 YTN 해고·징계 사태는 사장 내지 인사위원회의 월권적 행위”라며 “과잉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영택 민주당 의원은 “다른 자리도 많을 것 같은데 후배들을 희생시키고 갸륵한 충정을 꺾으면서까지 사장을 계속 하고 싶은가”라며 사퇴를 권하기도 했다. 구본홍 사장은 ‘날치기 주총’을 통해 선임된 지 석 달을 넘긴 상황에서도 갈등만 더욱 키우고 있어 ‘사장으로서의 능력’이 의심받고 있다.
여당 의원도 징계 철회 촉구해고된 뒤에도 조승호 기자는 공정방송 점검단으로서, 노종면 노조위원장은 국정감사 참석과 투쟁 전개 등으로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매 순간순간 ‘이기는 싸움’이 되게 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현덕수 기자는 “메일함이 막혔고, 출입증이 막혔다. 이제 25일 월급날이 되면 다시 한 번 해고 사실을 절감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 싸움이 갈지 모르겠다. 한 달이 될지, 5년이 될지 모른다. 그 과정이 힘들겠지만 부당한 징계인 만큼 원상 복구될 것이라고 믿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투사가 되기를 원하는 시대인 것 같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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