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은 물론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체포 또는 구속 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규정한다. 특히 개정 형사소송법은 이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수사방해나 수사기밀 누설 등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피의자 신문 때 변호인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과거 수사기관은 피의자 신문에 변호인이 참여하는 것 자체를 수사방해로 간주했지만, 이러한 주장은 이제 설 땅이 없다.
상당수의 형사 피의자·피고인은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치소에서 행동의 자유가 박탈당한 채, 그리고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신문을 받거나 재판을 받는다. 인신 구속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심리적·육체적으로 취약해져 낙담, 무기력, 자포자기 등의 상태에 빠진다. 정몽헌 현대 회장의 자살을 떠올려보라. 난해한 법률 용어와 그 실천적 의미, 피의 사실과 공소 사실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수사기관의 신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수사기관의 집요한 신문에 맞서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하다. 변호인은 피의자가 막강한 국가 형벌권과 부딪칠 때 사용할 수 있는 ‘창’과 ‘방패’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무죄 추정이 되는 형사 피의자·피고인이 자신의 인권 보장과 방어 준비를 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핵심적 권리다. 이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시민의 기본권 보장이나 실체적 진실 발견도 어려워진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권리의 보장이 피의자의 자력(資力)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이 권리의 혜택이 변호인 선임을 할 수 있는 소수의 ‘가진 자’에게만 돌아간다면, 다수의 ‘못 가진 자’에게 이 권리는 추상적인 법적 장식물로 전락한다. 이 경우 이 권리 자체에 대한 회의나 비난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국선변호제가 있지만 이는 기소되기 전 단계의 형사 피의자에게는 전혀 제공되지 않으며, 그 변호의 질도 여전히 미흡하다. 국선변호제의 확대·강화가 절실한 시기다.
조국 한겨레21인권위원·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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