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후배가 여행을 다녀왔다며 여행기를 첨부해서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여행이 어땠는지 궁금해 첨부파일을 다운받으려고 보니 확장자가 ‘hwp’, ‘한글’ 문서다. 나처럼 ‘한글’을 구입하지 않은 매킨토시(맥) 사용자는 안 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윈도가 아니면 ‘한글’ 뷰어도 없는데…. 관공서가 아닌 개인한테까지 시위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문서 못 열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비슷한 경험이 생각나 씁쓸했다.
지난해 대선 때, 시험 준비 때문에 고향 집에 갈 수 없어 부재자 투표를 신청하려는데 신고일을 몰랐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갔는데 공지도 없고 답답했다. 한 일주일 잊고 지내다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신고 마지막 날. 늦은 공지일자에 어이없고, 맥에서 깨지는 홈페이지에 황당하고, 아무 배려 없이 ‘한글’ 문서로만 된 신청서 공문에 화가 났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12월13일 부재자 투표일에 부재자 투표소로 갔다. 홍보 시기, 웹 접근성, ‘한글’ 문서의 폐쇄성 등을 거론하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했다. 선관위 소속이 아닌 많은 공무원분들이 “참고하려 한다”며 관심을 보여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지역 선관위는 사과와 시정 약속은커녕 무단 채증(?)에 “타당하면 연락주겠다”며 ‘인적사항’까지 요구했다. 덕분에 화가 났는데 어떤 높아 보이는 사람이 와서 “문서가 안 열리면 되는 곳에 가서 열면 되는 것 아니냐”며 훈계를 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공문을 내가 따로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열어야 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반박에 “전화로 민원을 넣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이 정도 일이 있었으니 선관위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총선 즈음해서도 홍보 외에는 바뀐 것이 없었다. 기가 차서 중앙선관위에 직접 전화를 했더니 민원 게시판을 활용하라고 한다. 들어가보니 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웹브라우저로는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쓸 수 있다 해도 몇 개월 전에 올라온 광고글투성이로 전혀 관리가 안 되는 게시판이니 쓰나 마나 아닌가?
결국 다시 전화해 ‘한글’ 문서로 된 공문을 PDF 파일로 변환해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번엔 금방 처리해주었지만,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전산 담당자는 윈도 외의 다른 운영체제와 그 현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항의를 받은 뒤에야 조처를 한 것일까?
웹 표준을 지키고 웹 접근성을 조금만 높이면 모두가 평등하고 편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문서도 ‘열린 문서 캠페인’에서 이야기하는 표준 문서 포맷(TXT·PDF·ODF)을 쓰면 윈도를 안 쓰더라도 누구나 읽거나 쓸 수 있다. 모든 운영체제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 오피스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왜 인터넷이나 전자문서에서 윈도만 기준으로 할까? 하긴 정부기관이 웹 표준(또는 웹 접근성)을 무시하고 익스플로러와 윈도만 생각해 독점을 방조하는 행위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으니…. 그나저나 이 친구는 내가 문서 못 연다고 답장 보낸 지가 언젠데 왜 아직 답이 없어?
김기홍 한겨레21 16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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