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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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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삼키는 괴물의 등장!

등록 2005-02-21 15:00 수정 2020-05-02 19:24

불치병 ‘소나무 재선충병’ 전국 확산 일로… 매개충 타고 나무 속 들어가 무섭게 번식 뒤 말려 죽여

▣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2월15일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과엔 연방 전화벨이 울렸다. 하루 전인 14일 농림부 장관이 주재하고 전국 지자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소나무 재선충병 확산저지 특별대책회의’가 열리자 각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재선충병 피해를 보도하기 위해 문의해온 것이었다. 신상철 산림병해충과 과장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었다면 벌써 난리가 났을 텐데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치지 않는 나무병이라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라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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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만 이미 당해… 백두대간 위험

각종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뽑혀온 한국인의 나무, 소나무 관리에 빨간 불이 켜졌다. 치료약이 없어 일단 걸리면 죽기 때문에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병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산림청은 속속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미 피해를 입은 지역에 1~3차 단계별 확산저지선을 구축하고 이미 감염된 나무는 4월까지 완전히 베어내는 한편, 피해 지역 내 소나무의 벌채·이동을 금지하고 조경수 등 살아 있는 나무를 옮길 때는 재선충 감염 여부를 확인받은 뒤 반출하기로 했다. 올해 안에 ‘소나무 재선충 방제특별법’을 제정해 피해목을 무단 반출·이동할 경우엔 벌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반면 피해 나무를 신고하면 5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기존 산림법엔 처벌 규정이 없어 감염 위험이 있는 목재의 이동을 원천 봉쇄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유례없는 고강도의 처방을 내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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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발병한 재선충병은 1970년대까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소나무들이 시름시름 앓다 죽어가는 바람에 현재 일본에선 역사적 가치가 높은 조경수를 제외하곤 소나무 자생림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일본처럼 일찌감치 피해를 입었던 대만에서도 소나무는 ‘숲’이 아니라 ‘섬’처럼 존재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선 1988년 부산 동래구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했는데 해운대 솔숲 등을 초토화하며 위력을 떨쳤으나 한동안은 부산 일대에서만 발병할 뿐 잠잠했다. 그러다 1997년 전남 구례와 경남 함안, 1998년 경남 진주에서 잇따라 발견되더니 급기야 지난해엔 경북 포항·경주, 경남 하동·창녕·고성을 비롯해 제주도에까지 확산돼 지금까지 38곳의 시·군·구 소나무숲 1만7천ha를 파괴했다. 산림청 고기연 산림보호지원팀장은 “포항에까지 병이 확산됐다는 것은 백두대간 줄기를 타고 중부지방까지 퍼질 위험이 높다는 뜻이기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80년대 한창 맹위를 떨친 솔잎혹파리만 해도 수간주사 등을 놓으면 치료가 가능했다. 그러나 재선충병이 발견된 나무는 이미 감염이 한창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에 베어내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다. 잘라낸 뒤에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 나무 속에 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유충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통한 죽음만큼 장렬한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병든 나무 전체를 태우는 소각법은 산불로 번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 나무를 한 그루씩 베어내 한데 모아 태우거나 토막내 톱밥·칩으로 잘게 부순다. 또는 죽은 나무를 쌓아놓고 약제를 뿌린 뒤 비닐로 꽁꽁 묶어 목질 안에 숨어 있는 유충이 탈출하기 전에 죽여야 한다. 송충이나 솔잎혹파리 피해를 입은 소나무는 죽어서도 쓰임새가 있지만 재선충병에 걸리면 ‘명예로운 죽음’은 불가능하다.

예방제 비싸고, 매개충 처치도 어렵워

재선충은 0.5~1mm 크기의 선형동물로서 혼자서는 나무를 옮겨다닐 수 없고 반드시 솔수염하늘소를 매개로 하여 나무 조직에 침입한다(그림 참조). 본래 어린 소나무가지 껍질을 벗겨 갉아먹고 사는 솔수염하늘소는 재선충병 발생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살고 있던 소나무 해충이다. 소나무 신초를 먹고 자란 솔수염하늘소는 가을이 되면 송진이 잘 분비되지 않는 병든 나무를 골라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수피를 갉아먹으며 자라다 겨울이 되면 나무 속 목질부에 터널을 만들어 월동을 한다. 애벌레는 이듬해 봄에 번데기가 됐다가 20일 정도 지나면 성충이 되어 나무 밖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외래종인 재선충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솔수염하늘소의 피해는 제한적이었다. 재선충이 솔수염하늘소에 붙어 살면서부터 문제가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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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수염하늘소가 번데기인 시절 번데기방 주위에 붙어 있던 재선충은 하늘소가 성충이 될 때 가슴 부분에 붙어서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솔수염하늘소가 소나무 가지를 갉아먹을 때 함께 나무에 침입한다. 나무 밖에서는 혼자 움직일 수 없지만 일단 나무 조직 안에 들어가면 제 세상이다. 나무 속 곰팡이 등을 먹고 사는 재선충은 줄기·가지·뿌리 속을 상하좌우 자유롭게 이동하며 수를 늘려간다. 재선충은 보통 5일 정도 지나면 산란이 가능한데 25~30도의 높은 기온에선 빠른 속도로 증식해 재선충 1쌍이 20일 뒤에는 20만 마리까지 늘어난다. 이처럼 수적으로 늘어난 재선충은 나무 조직 안에서 수분과 영양분이 이동하는 통로를 막게 되고 3주가 지나면 솔잎이 시들고 색깔이 변하며 1달 정도 지나면 잎 전체가 갈색으로 변하며 죽기 시작한다.

솔잎혹파리의 경우엔 소나무잎 1쌍이 매달린 잎집에서 혹파리 알이 부화해 자라는 도중에 잎을 말려 죽이는 것이었다. 혹파리가 왕성하게 번식해도 나무 전체가 금방 죽지는 않았을뿐더러 수간주사로 혹파리 애벌레에게 해로운 성분을 놓으면 치료도 가능했다. ‘솔잎혹파리살이먹좀벌’이란 천적도 있었다. 반면 재선충병은 나무 속에서 살기 때문에 농약을 뿌려 죽일 수 없다. 예방책이 있다면 아직 감염되지 않은 나무에 미리 살선충제를 주입해 재선충이 들어오면 바로 죽도록 일일이 주사를 놓는 것이다. 그러나 살선충제 한병이 5만원이나 되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같은 희귀목을 중심으로 접종할 수 있을 뿐이다.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를 죽이기 위해 항공방제를 하기도 하지만 생태계 파괴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부산에서는 환경운동단체의 반대에 부닥쳐 2000년대 초반 항공방제가 중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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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목재의 이동 “각별한 주의를"

그동안 재선충병 감염 경로를 살펴보면 목재의 이동과 관련이 깊다. 솔수염하늘소의 이동 거리는 수km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서는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97년 구례에서 발병했을 당시엔 화엄사 금정암 개축공사가 한창이던 때였고, 함안에서도 우드칩공장 옆의 소나무에서 재선충병이 발견됐다. 감염된 소나무 목재가 이동하며 병을 옮긴 것이다. 건축공사장의 목재뿐 아니라 땔감이 쓰이는 곳을 통해서도 감염되기 쉽다. 몇년 전부터 성행한 찜질방에서 흔히 쓰는 소나무 장작도 각별히 주의해야 할 감염 통로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과 신상철 과장은 “소나무 재선충병을 지금 잡지 못하면 20년 안에 국내의 모든 소나무가 사라질 것이다. 담당 공무원들도 애써야 하겠지만 국민들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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