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북면 일대 산림보호구역에 있는 ‘금강소나무 숲길’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생태여행지다. 지역공동체는 자연을 보전하려고 가이드 동반 예약 탐방제를 도입했고, 여행자는 잘 보전된 자연을 누리고 알아가며, 주민들은 숲길 탐방 운영과 안내에 핵심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 이런 특징을 두루 갖춘 여행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당장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걷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뿐. 지난 십수 년간 우후죽순 늘어난 걷기여행 길의 현실을 짚으며, 자연과 문화·역사 속에 파묻히기 좋은 길 10곳도 함께 소개한다._편집자주
“여기 달뿌리풀이 보이네요.”
4월26일 서울 여의도동 샛강생태공원,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염형철 공동대표가 피처럼 마른 풀을 보여주며 말했다. 샛강방문자센터를 뒤로하고 샛강역을 향하던 중이었다. 달뿌리풀은 뿌리가 달려나간다는 의미로 이름이 붙여진 풀이다. 잎이 바람을 맞은 듯 한쪽으로 향해 있다. 이전 ‘억새군락’은 생태교란종인 가시박이 “시커멓게 덮여 있었다”.
생태교란종 식물을 ‘걷어내며’ ‘걷’는 ‘걷걷 생태여행’을 위해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생태교란종은 무섭게 자라나서 생태계 다양성을 해치는 종이다. 환삼덩굴은 하루에 70㎝까지도 자란다. 이렇게 자라기 위해 줄기에 물이 잔뜩 들어가 있어야 하고 물로 가득 찬 덩어리가 나무를 누르게 된다. 나무로 가는 빛을 차단하면 나무는 고사하게 된다. 가시박도 4~8m 길이로 높이 자라면서 나무 전체를 덮는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2019년 생태교란종을 걷어내는 일을 자임하고 샛강생태공원에 들어왔다. 조은미 한강 이사장은 가시박이 걷히던 지난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2019년 봄 덩굴째로 나무를 덮는 가시박의 잔해를 걷어서 일차로 숨통을 틔우고, 4·5월쯤 새순이 난 것을 뽑았다. 한여름에는 낫이나 도구를 사용해서 뽑아냈다. 2020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겨울의 시커먼 잔해를 걷어낼 일은 없었지만 봄이 되자 가시박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났다. 2020년 여름 홍수로 10일 넘게 잠겼을 때 기세가 많이 꺾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달뿌리풀, 억새가 들어섰다. 이뻐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억새군락이 이름을 회복하고 있다. 계속 가던 염 대표가 생태연못 부근에서 머리를 숙여 풀을 하나 쓱 뽑아낸다. “며느리밑씻개입니다.” 고개를 숙인 참에 더 살피니 부근에 꽤 많이 올라와 있다. 홀쭉한 잎새의 며느리밑씻개는 줄기에 가시가 많은 풀이다. 이후 비슷한 풀인 듯해 “여기도 있네요” 했더니 염 대표가 손사래를 치며 “그건 다른 풀이에요” 한다.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한 며느리배꼽이다. 며느리배꼽은 홀쭉한 이파리 중간에 잎자루가 달렸다. 며느리밑씻개도 그렇고 며느리배꼽으로 부르는 이름이 속상하다. 며느리밑씻개는 가시덩굴여뀌로 순화해서 부른다. 초여름이 되면 ‘여뀌’ 이름 붙은 다른 풀처럼 별사탕 같은 분홍색 꽃이 올라온다. 며느리밑씻개는 교란종까지는 아니지만 빨리 자란다. 빨리 자라면 다른 풀을 압도해 밋밋한 풍경을 연출하게 된다.
1997년 들어선 서울의 가장 오래된 생태공원인 샛강은 갈 곳 없는 동물들의 의지처가 돼가고 있다. 2019년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 철새인 흰배뜸부기, 2020년 멸종위기 관심 대상인 두꺼비가 나타나 한강 생태계가 점점 더 개선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2021년 수달이 돌아왔다. 4월 ‘수달의 흔적’을 발견했다. 하수구에 발자국이, 바위에 배변 흔적이 포착됐다.
<한겨레21>이 선정한 체인저스(혁신가)이기도 한 염형철 대표는 당시 체인저스 인터뷰에서 “한강 복원은 수달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제1355호·1356호 인터뷰 참조). “수달은 하천 유일의 포유류로 하천이 되살아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조합 한강에서는 2021년 초 수달을 모니터링하고 먹이를 주는 ‘수달언니들’을 모집해 교육했다. 이전 한강 지류 조사로 수달이 올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어서다. 현대아산병원 부근의 성내천과 고덕천의 수변생태구역에는 수달이 살고 있다. 이번에 흔적을 남긴 수달은 새 가족을 꾸리기 위해 보금자리를 찾아나선 것일 수도 있고, 동정을 살피러 와본 것일 수도 있다. 수달은 수컷이 15㎞, 암컷이 8㎞를 하루에 움직인다.
4월에 수달 흔적을 발견한 뒤 카메라를 2곳에 설치해 살펴보고 있다. 수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최대 2천~3천 평 규모로 출입금지 구역 3곳을 만들었다. “멸종위기종 서식지 보호를 위한 공간이므로 출입을 삼가하여주십시오”라는 안내문도 달아놓았다. 이렇게 ‘금줄’만 치는 것도 시민을 믿어서다. “시민들은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안내를 잘 따릅니다.”(염형철 대표)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2020년 4월부터 한강사업본부의 위탁을 받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공원 전체를 관리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쓰레기를 주우며 산책하거나(줍깅), 월요일 아침(7시 또는 8시)에 ‘얼리버드’(탐조)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시민과 함께 공원을 관리하는 게 목표다. 2020년 100명을 모집해 공원관리 온라인수업을 하고 조를 짜서 생태탐방을 한 뒤 ‘샛숲지기’를 임명했다. 염형철 대표는 ‘샛강다움’을 지키는 관리 가운데 중요한 원칙으로 ‘시민 관리’를 든다. 제거 등의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 ‘적정관리’도 있다.
여러 곳의 풍경을 둘러보며 염 대표는 “자연스럽죠?” 하고 물었다. “여기 이 풍경이 되게 자연스럽고 좋아 보이죠? 하지만 엉킨 풀을 뽑아내고 빽빽한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서 만들어진 풍경입니다.” 자연스러운 풍경 뒤에 인공의 손길이 있다. 샛숲지기와 조합 한강이 보이는 일과 보이지 않는 일을 꾸준히 해온 결과다. 물빠짐이 좋도록 흙길을 황톳길로 바꿔 다지고, 물줄기를 틀어 샛강을 만드는 일은 눈에 보이는 일이다. 반면 물고기가 자유롭게 오가도록 강줄기에 돌담을 치거나, 도로 소음을 차단하려고 사철나무 6500그루를 심거나, 빽빽하게 들어선 느릅나무를 뽑아 다른 허전한 곳에 옮기는 일은 ‘보이지 않는 손’들이 하고 있다. 계단이 너무 가파르지 않도록, 도랑 턱이 계단과 잘 이어지도록, 썩은 데크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일 천지다. 물길을 바꾸고 푸름의 위치를 바꿀 때 실패도 경험했다.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싶을 때도 있지요.”(염형철 대표) 여의교 아래 심은 꾸지나무는 거의 살아남지 못했고(나무를 잘못 골랐다), 강에 놓은 돌담 옆으로 강줄기가 생겨나 흙이 무너져내리기도 했다.
샛강을 구성하는 식물과 동물에 이끌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속도도 점점 느려지고 있다. 염 대표는 “예전에는 자전거를 타러, 달리러 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걸으러 오는 사람이 많고, 더 나아가 자연을 관찰하러 오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고 전한다. “도랑에 붕어 한 마리가 죽으면, 이전에는 연락이 하나도 없었는데 요즘에는 몇 통씩 제보가 옵니다.” 자연관찰 애플리케이션 ‘네이처링’에서 샛강공원은 주요한 자연관찰 미션이 되고 있다.
5월이 되면서 ‘생태교란종 3종 세트’(상자기사 참조)의 습격이 시작됐다고 조은미 이사장이 말한다. “오늘(5월4일) 꽤 많이 보이더라고요.” 가시박은 5월, 아직 어릴 때 뽑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1362호 표지이야기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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