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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음식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코로나 뉴노멀]
1부 3장 기후위기와의 전쟁
등록 2020-06-02 07:37 수정 2020-06-13 04:41
코로나19 사태의 한 원인으로 공장식 축산이 지목된다. 2017년 8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동물권옹호 시민단체들이 공장식 축산과 감금틀 사육, 살충제 사용을 반대하는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코로나19 사태의 한 원인으로 공장식 축산이 지목된다. 2017년 8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동물권옹호 시민단체들이 공장식 축산과 감금틀 사육, 살충제 사용을 반대하는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_편집자주

‘코로나19 사태의 원인은 공장식 축산이다.’ 언뜻 명쾌해 보이는 이 주장에는 해명할 부분이 적지 않다. 직관적으로 사실인 것 같지만,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일으킨 범인은 정식 명칭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라는 병원체다. 바이러스의 기원은 안갯속에 묻혀 있지만, 아마도 박쥐(숙주)에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병원체)의 일종이 변이해 다른 종을 거쳐 인간에게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들어와 호흡기와 폐에 염증을 일으키지만, 돼지나 닭 등 공장식 축산 체제의 숙주에게는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바이러스 감염 경로만 보면, 코로나19 사태는 공장식 축산과는 관계가 없다.

피해의 파괴력을 키우다

지금까지 공장식 축산에서 기르는 동물에게 가장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 병원체는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였다. 청둥오리 같은 야생 철새의 숙주에서 이 바이러스는 감기처럼 가벼운 질환을 일으키며 퍼진다. 그러나 이것이 난민수용소처럼 빽빽하게 채워진 공장식 농장으로 들어갈 경우 달라진다. 폐사율이 80~90%에 육박한다. 우리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146만 마리의 닭, 오리 등의 살처분과 예방적 살처분을 목도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특히 숙주가 사는 환경의 특성은 사태를 판이하게 뒤바꾼다.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숙주가 사는 농장은 소규모로 산재했으며, 농장끼리 연결망은 간헐적이었다. 가축이 몰살해도, 피해는 작았고 확산하지 않았다.

반면 현대의 밀집형 공장식 축산 환경은 감염병을 파괴적으로 바꿔놓았다. 농장은 밀집되고 거대화됐다. 10층 넘는 아파트형 닭장(배터리 케이지) 한 칸에 닭 서너 마리가 날개 한 번 못 펴고 알을 낳다가 2년 만에 죽는다. 올림픽 수영장에 먹물 한 방울 떨어지듯, 이곳에 바이러스가 떨어진다면? 수만~수십만 마리가 폐사한다. 게다가 농장은 네트워크화돼 있다. 사료나 축산물을 운반하는 차량 등이 각 농장을 수시로 연결한다.

과거 농장은 바다에 떠 있는 뗏목이나 보트 같았다. 지금은 대형 크루즈선 몇 대가 긴밀히 연결돼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물론 이 크루즈선은 과거보다 청결하고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방역도 철저하다. 워낙 크고 튼튼해 폭풍우에 안전하지만, 한 번 침몰하면 수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생태계 전체를 봤을 때, 감염병이 휩쓴 뒤 회복탄력성이 낮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가 겪은 조류인플루엔자 사태와 다르다. 그때와 달리 가축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에서 돼지·닭 각각 1천만 마리가 살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축산가공업이 발달한 미시간주의 지역신문 <디트로이트타임스>는 5월 초 돼지 농장주 밥 디큐이스의 곤란한 처지를 전했다.

“보통 일주일에 트럭 절반 분량으로 55~60대에 돼지를 실어 도축장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7대, 이번주에는 6대밖에 안 나갔어요.”

애먼 돼지들이 죽고 있다

그가 돼지를 출하하지 못한 이유는 코로나19로 도축장이 다른 시설과 마찬가지로 ‘록다운’(폐쇄)됐기 때문이다. 타이슨푸드나 스미스필드푸드 같은 대형 육류가공업체가 운영하는 도축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사이에서 코로나19가 퍼졌다. ‘탐사보도를 위한 미드웨스트 센터’는 수시로 도축장의 코로나19 현황을 집계하는데, 5월21일 현재 도축장 관련 확진자가 1만5800명, 사망자는 63명이다. 관련된 도축장만 193곳이다.

도축장의 컨베이어벨트가 멈추자, 고기가 되지 못한 돼지들이 농장에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돼지 농장주가 처음 겪는 일이다. 늦게 출하하는 만큼 사료비 부담이 커진다. 돼지 출하 시기에서 6개월이 넘어가면 표준화된 고기의 품질이나 풍미에도 문제가 생긴다. 주판알을 튕겨보면, 살처분하는 게 손해를 줄이는 길이다. 돈육생산자협의회(NPCC)는 9월까지 미국에서 살처분해야 할 돼지가 약 1천만 마리라고 추정했다. 도축장 운영이 중단되자, 고깃값은 폭등했다.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닭고기, 쇠고기 등의 가격은 지난해보다 높게 형성됐고, 일부 소매점에선 육류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한쪽에선 비싸서 고기를 못 먹고, 다른 한쪽에선 고깃감을 죽이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이른바 ‘육류 대란’을 통과하며 미국에선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미 푸드테크 신생 벤처기업이 콩 등 식물로 만든, 진짜 고기 못지않은 풍미의 육류 대체재를 생산하면서 채식 열풍이 거세지는 상황이었다. ‘임파서블푸드’는 감염병 사태 와중인 4월, 슈퍼마켓 777곳에 제품을 추가 공급한다고 밝혔다. 채식 햄버거인 ‘임파서블 버거’의 매출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경쟁업체 ‘비욘드미트’는 1분기 매출 9707만달러(약 1198억원)를 올리며 흑자 전환했다고 밝혔다. 육류 대란의 틈새를 비집고 푸드테크 식품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채식은 몇 차례 유행을 타며 사회 전체로 퍼지는 중이다. 푸드테크가 이룬 기술적 성취가 엔진으로 작용했다면, 정부와 기관은 채식 지원 제도를 도입하며 이를 떠받치고 있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가공육과 붉은고기를 각각 발암물질 1군과 위험물질 2A로 지정한 것은 각국의 정부가 고기에 대해 다른 시각을 받아들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영국에서는 쇠고기 요리를 하지 않는 대학이 나왔고, 독일에선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고기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올리자는 논의가 있었다.

‘비건 경제’의 시발점 될까

코로나19 사태는 음식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영국은 1990년대 광우병 사태를 겪으며 동물복지 축산이 전면화됐다. 코로나19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공장식 축산의 고장난 경제시스템을 겪은 미국에서 ‘비건(엄격한 채식주의) 경제’는 이번 사태를 기회로 안착하고 있다. 더불어 대량의, 중앙집중적인 고기 생산 체제도 동물복지를 강화하고 분산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선택의 주체는 바로 직관적으로 진실을 볼 수 있는 ‘우리’다.

남종영 <한겨레>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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