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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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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니컬러스 보너,

25년간 북한 여행하면서 구한 디자인 전시
등록 2019-01-26 14:54 수정 2020-05-03 04:29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전’에 전시된 선전 포스터.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전’에 전시된 선전 포스터.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전’에 전시된 선전 포스터.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전’에 전시된 선전 포스터.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인민들의 수요를 원만히 충족시키자!”(2008년) “인민 생활을 책임지고 돌보는 실속 있는 일군이 되자!”(2010년) “만풍년을 위해 농촌에 더 많은 화학비료를 보내자!”(연도 미상) “갖가지 상품을 지역별 계절별 계층별 수요에 맞게 공급하자!”(2000년)

북한의 선전 포스터에 쓰인 문장은 강한 어조를 자랑한다. 문장 끝부분에 어김없이 붙는 느낌표(!)는 강렬함을 더한다. 명령문에 가깝다.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 목표를 인민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몇 번만 곱씹어 읽으면 이들 문장이 포스터 제작 당시 국가적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을 알 수 있다. 앞 문장들은 이렇게 다시 읽힌다. ‘인민들의 수요가 충족되지 않고 있다’ ‘인민 생활을 돌볼 사람이 없다’ ‘농촌에 화학비료가 없다’ ‘상품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북한의 선전 포스터 역사는 결핍의 역사다.​

포스터 그림은 더없이 화려하다. 오방색(노랑·파랑·하양·빨강·검정)의 알록달록한 색깔이 그림을 가득 채운 공산품과 곡식을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인물은 시종일관 만족스러운 듯 밝은 표정이다. 양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 북한은 사진이 보편화된 최근까지도 손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1945년 분단 이후 북한 정부는 인민에게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포스터를 활용했다. 평양에 있는 ‘만수대창작사’에 소속된 예술가들이 손으로 직접 포스터를 그렸다. 정부가 포스터의 그림과 문구를 승인하면 컬러 사본 인쇄물이 전국 공공장소에 배포됐다. 1975∼2008년 이렇게 제작된 북한의 포스터 중 일부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됐다.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전’을 통해서다.

포스터를 수집한 사람은 영국인 니컬러스 보너. 영국 맨체스터의 공원 관리인이었던 보너는 조경학을 전공하고 리즈베킷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중국 건축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1993년 가을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가 북한에 들렀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평양은 베이징보다 아름다운 도시였다. 대동강과 보통강이 도시의 공원을 관통하며 흐르는데 탄식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경관이었다.” 보너는 첫 방문에서 북한에 매료됐다고 회상했다.

한국 공항 통과 못한 장난감총·만화책 영국으로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전’에 전시된 만화책 표지.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전’에 전시된 만화책 표지.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우리는 오늘날에도 북한의 ‘흑과 백’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절제된 색상이 가득한 나라에서 눈길을 끌 정도로 알록달록하고 빛나는 밝은 색상의 사탕 상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보너가 전시회 안내문에 밝힌 북한 디자인을 수집한 이유다. 북한의 디자인을 합법적으로 유출할 방법이 없었던 외국인 보너의 첫 수집 대상은 사탕 포장이었다.

북한의 매력에 흠뻑 빠진 보너는 정기적으로 북한을 여행할 수 있는 베이징으로 이사한 후 여행사 ‘고려투어’를 만들었다. 이후 25년 넘게 북한을 드나들면서 북한 사람들과 신뢰를 쌓은 그는 북한의 선전 포스터, 우표, 만화책, 포장지, 만화책 등으로 수집품을 늘려갔다. 보너는 인터뷰에서 “수집품을 모으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북한 친구들은 자신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일상의 디자인을 수집하는 것에 어리둥절해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모은 1만여 점의 디자인 중 200여 점을 선정해, 지난해 봄 영국 런던의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공공 전시관인 ‘하우스 오브 일러스트레이션’에 전시했다. 해당 전시는 전시관 개관 이후 최다 관람객을 동원했다. 베일에 가려진 국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디자인 전시라는 특이점이 주목을 받았다.

영국에서 전시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 세계 순회 전시 첫 국가로 한국이 선정됐으나, 개최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시품 중 일부가 공항 세관을 통과하지 못했다. 전시 계획 단계에서 “문제가 없다”고 했던 정부는 막상 전시품이 공항에 도착하자 비상을 걸었다. 전시를 주최한 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22일 전시를 앞두고 공항에 전시품이 도착했는데 세관에서 내용물을 하나하나 다 확인했다. 만화책 101권을 이틀에 걸쳐 다 읽었다. 국가정보원도 확인했다고 전해들었다”고 했다. 결국 초대장 두 장, 장난감총 하나, 만화책 여덟 권은 영국으로 반송됐다. 반입 금지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전시회장을 찾은 관람객의 반응은 연령대에 따라 갈렸다. 20·30대 젊은 관람객은 “최근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레트로(복고) 디자인과 비슷해 힙하다”고 평가했다. 40대 이상은 ‘새마을운동 포스터’와 비슷한 북한 포스터를 보며 한국의 과거를 떠올렸다. 국가 주도로 경공업을 부흥시키려 했던 한국의 과거 정부 디자인과 닮은 점이 많아서다.

2030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같아 힙해”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전’ 포스터.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북한 그래픽디자인전’ 포스터. 컬쳐앤아이리더스 제공

전시품 중 통조림에 담긴 내용물이 있는 그대로 그려진 상품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보너는 “북한의 생필품 이미지는 상품이 무엇인지 전달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해당 상품을 광고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사기업이 물건 판매를 위해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북한도 최근에는 컴퓨터 디자인과 프린터가 보급되면서 손으로 그린 디자인을 보기 힘들어졌다고 보너는 설명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정부 주도’와 ‘프로파간다’(선전)이다. “북한에서 디자인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정치적 목적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북한 정부는 디자인의 목적부터 제작 과정까지 모두 엄격하게 통제한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해도 바뀌지 않는 부분이다.”

보너 “인민의 삶 보여주고 싶어”

보너는 전시 안내 책자에서 북한 정부와 선전 너머에 있는 인민의 삶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북한과 선전적인 이미지를 연결하는 일반적인 시각 때문에 간과하기 쉬운 섬세함과 인간미를 보여주고 싶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난 흑백을 보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는 4월7일까지 계속된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보너와 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으나, 그의 개인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기사는 전시회 관람을 바탕으로 전시회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보너가 외신과 한 인터뷰 내용 등을 참조해 썼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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