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참혹한 현실에서 빚어낸 구원의 순간

제6회 손바닥문학상 당선작 <춘향이 노래방>, 가작 <문 밖에서> <아무것도 몰라>…
총 294편 응모작품 신뢰 붕괴, 취업난, 고독사 등 우리 사회의 음울한 현주소 보여줘
등록 2014-12-02 06:44 수정 2020-05-02 19:27
지난 11월23일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제6회 손바닥문학상 심사위원인 최재봉 〈한겨레〉 선임기자(왼쪽), 김선주 언론인(가운데), 신형철 문학평론가(오른쪽)가 응모 작품 심사를 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지난 11월23일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제6회 손바닥문학상 심사위원인 최재봉 〈한겨레〉 선임기자(왼쪽), 김선주 언론인(가운데), 신형철 문학평론가(오른쪽)가 응모 작품 심사를 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제6회 손바닥문학상 공모전에 총 294편의 작품이 도착했다. 응모 편수는 지난해 248편보다 46편이나 늘었다. 세월호 참사, 비정규직 차별, 청년 실업, 장기 매매, 군대 폭력 등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담았다. 현실에 뿌리를 둔 이야기 속에는 세상을 향한 울분, 그리고 꺾일 수 없는 삶의 의지와 가치가 녹아 있었다. _편집자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알려주는 지표는 많다.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하위 수준인 걸 보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 나이 때부터 이미 괴롭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젊은이가 되면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최저임금도 못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용케 취직해도 불안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들은 감히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결혼한다고 해도 끔찍한 전세난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남녀평등지수 세계 최하위인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맞벌이를 해도 서울에서 전세 아파트 하나 마련하려면 이십 몇 년이 걸린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전쟁이어서 차라리 낳지 말자는 분위기인지라 출산율도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그나마 살아 있는 사람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자살하는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다.

착잡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손바닥문학상 응모작을 읽는 일은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다시금 확인하는 일이었다. 세 사람의 심사위원들이 착잡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읽은 작품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더 빼어나다고 판단한 작품은 4편 정도로 추려졌다.

는 지난 10월 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신의 주검을 처리해야 할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돈을 담은 봉투를 남긴 최아무개씨의 사연에서 착상된 이야기로 보인다. 사실에 약간의 살을 붙여 극화하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고, 그에게 빚진 직장 동료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그의 죽음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역할을 맡긴 덕에 이 이야기는 서사적 활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취지를 분명히 파악하기 힘든 마무리가 아쉽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는 현직 구청장인 화자가 자신을 구청장으로 임명한 시장의 불법적인 건축 인허가와 관련된 압력에 저항하다가 성접대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파멸하는 과정을 냉철하게 그린다.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가장의 비참한 모습이 개인의 선의지를 압도해버리는 시스템 자체의 악마성과 무관한 것이 아님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작법도 노련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짐작할 수 있는 내용 이상의 것이 있는가 하는 반문이 나올 만했다.

는 응모작 중 가장 안정적인 문장이 구사된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먼저 눈길을 끌었다. 대형 창고의 창고지기인 ‘나’가 중국에서 수입된 미꾸라지를 담은 냉동컨테이너로 밀입국하다 동사한 중국인 가족을 발견한 일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아픈 상처를 떠올리게 하고, 어쩌면 그와 비슷한 상처를 감당하게 될지 모를 위층 소년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한다. 서로 다른 곳에서 벌어진 일들이 자연스러운 감정적 흐름 속에서 연결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아들을 착취하는 어머니상을 실감나게 그린 것도 이채로웠지만, 이 작품 역시 서둘러 정리해버리는 식의 마무리가 결정적 결함으로 지적됐다.

당선작 은 홀로 노래방을 운영하는 금자씨가 겪은 최근의 사건을 담담히 전해준다.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단계회사에 들어간 청년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성년자라는 신분을 속이고 입장해 도우미까지 불러서 놀고는 신고할 테면 신고하라고 당당히 빠져나가는 일군의 젊은이들의 모습이나, 어쩔 수 없이 도우미로 일하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다가 일이 끝나면 금자와 소주 한잔을 나누는 미자의 모습 등이 생생하다. 이야기의 중심은 이틀을 일하다가 그만둔 청년이 일정 금액을 입금해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해서 금자의 선의를 낙담케 한 사건에 있다. 금자는 그의 불법을 적발해 이를 근거로 역으로 위협해 그의 협박을 스스로 철회하게 만들지만, 그 청년이 요구한 돈은 돈대로 입금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자신의 선의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마지막 할 일이 남아 있거니와, 청년을 자살로 몰고 간 회사를 신고함으로써 금자는 자신의 선의를 지키는 일 못지않게 이 세상의 악의에 맞서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실천’은 소박하지만 감동적이다.

‘감동’이라는 것을 분만해내고

이 소설이 소재의 새로움이나 문장의 세련됨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모든 응모작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문학이 현실의 참혹함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일 못지않게 할 만한 일은 그 속에서도 반드시 있어야만 할 구원의 순간들을 빚어내는 일이다. 그 구원의 순간이 과연 실제로도 있을 만한 일이라고 느껴지게끔 읽는 이를 설득해낼 때 소설은 ‘감동’이라는 것을 분만해낸다. 이 작품에는 바로 그런 감동이 있었고 그 점이 이 작품을 다른 수작들 틈에서 조금 더 빛나게 해주었다. 심사위원들은 고통스러운 작품 읽기의 와중에 이 건네준 그 구원의 순간에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고,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기쁘게 합의했다.

심사위원 김선주·신형철·최재봉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