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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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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 프레임’으로 제 발에 족쇄 채운 국민의힘

20%대 지지율에도 수구보수에 갇혀… 소통·협치는커녕 내부 비판에도 거부감
등록 2022-11-14 11:02 수정 2022-11-14 23:10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2022년 11월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 일정 관련 브리핑 도중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언급하며 울먹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2022년 11월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 일정 관련 브리핑 도중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언급하며 울먹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입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2022년 8월17일)에서 한 약속은 깨졌다. 10월29일 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이 압사한 이태원 참사는 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참사 전후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경찰청장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은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대통령은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매일 찾아 추도했다.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6개월을 이렇게 맞았다. 고물가, 고금리, 공급망 불안 등 경제위기, 북한 미사일 발사 시험 등 안보위기에 이어 많은 사람이 서울 도심에서 목숨을 잃는 안전위기까지 겪었다.
국민의 실망감은 여론조사 결과에 그대로 투영됐다. 코리아리서치가 문화방송(MBC) 의뢰로 11월7~8일 전국 성인 1001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33.4%, 부정평가는 59.7%였다. 긍정평가는 한국방송(KBS) 조사(11월6~8일, 전국 성인 1천 명, 한국리서치)에선 30.1%였고, 에스비에스(SBS)는 28.7%(11월7~8일, 전국 성인 1006명, 넥스트리서치)였다.
30% 전후의 긍정평가는 역대 대통령(1년차 2분기 기준)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나쁜 성적표다.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83%)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62%)도 높았다. 빠르고 과감한 개혁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 덕분에 국민의 지지를 모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도 75%로 높았다.(전국 성인 1001명 갤럽 조사,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윤석열 정부 6개월을 대통령과 집권세력, 경제, 안보 등 분야별로 나눠 분석했다. 윤석열 정부와 함께 여당인 국민의힘의 난맥상도 짚었다. _편집자주

2022년 11월8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전 국민의힘 의원)이 ‘이태원 참사’ 관련 국정감사에서 메모장에 ‘웃기고 있네’라고 쓴 장면이 <이데일리>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김 홍보수석과 옆에 앉은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전 새누리당 의원)이 나눈 필담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통령실의 이태원 참사 대응을 질타하는 와중에 오간 메모다.

이태원 참사 2주도 안 돼 바뀌는 말들

김 홍보수석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반성한다”면서도 “(필담 내용은) 이태원 참사와 전혀 관계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해명했다. 다음날인 11월9일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관련 발언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야당에선 ‘이게(이태원 참사가) 웃기냐’는 비판이 나오고, 누리꾼도 ‘이게 국민을 대하는 저들의 마음가짐’이라는 댓글을 다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당사자들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논란 직후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죄송하다”고 했지만, 11월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선 “사과하고 퇴장까지 하지 않았나. 더 이상 뭘 하란 말인가”라고 말했다.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자기들끼리 표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다. 들킨 게 잘못”이라고 에스비에스(SBS) 라디오에서 말했다.

이 장면은 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 지지율이 20%대에 이른 정치력 실패에도, 정부와 여당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준다. 정부·여당은 강성 지지층 이외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당선 인사에서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까지 야당 의원이나 지도부를 만나지 않으면서 영수회담을 거부해왔다. 2018년 4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현 대구시장)가 영수회담을 하고, 2018년 11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합의문을 발표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청와대 경험이 있는 한 야권 인사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더 적극적으로 하자고 해야 하고, 싫든 좋든 여야 대표가 만나 얘기도 나눠야 하는데 안 한다”며 “야당을 비판하는 것 말고 메시지가 없고 지난 정부 탓만 하는데, 집권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이 초짜인 대통령의 중심도 잡아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11월10일 페이스북에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끝내 민심을 깨닫지 못하고 역주행한다면, 여당이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며 “매가리 있게 시시비비를 가려서, 대통령이 잘하면 도와주고 잘못하면 견제해야 한다. 국민의힘이라면 국민의 편에 서야지 그깟 공천 협박 때문에 권력에 아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이 국민의힘 내에서 공감을 얻는다고 보긴 힘들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검사 틀을 못 벗어나고 있다”면서도 “여하튼 우리 당은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 불편해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유 전 의원이 쓴소리를 이어가자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김재원 전 최고위원, 김기현 전 원내대표 등이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11월8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옆자리에 앉은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메모장에 ‘웃기고 있네’라고 적었다. 이데일리 제공

김은혜 홍보수석은 11월8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옆자리에 앉은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메모장에 ‘웃기고 있네’라고 적었다. 이데일리 제공

강성보수 텃밭 공천받으려 ‘윤심’ 눈치만

국민의힘 내부의 ‘윤심’ 눈치 보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의석 지역별 분포를 보면, 수도권 121석 중 국민의힘이 가진 의석은 17석에 불과하다. 대부분 의석은 강원도와 영남에서 나온다. 특히 국민의힘 의원 지역구 93곳 중에 공천만 받으면 당선 가능성이 큰 ‘보수 텃밭’이 60곳 이상이다. 의원들은 강성보수 성향의 지역구 민심을 의식하거나, 지역구에서 공천받기 위해 민심보다 ‘윤심’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2023년 전당대회에서 뽑힐 차기 당대표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 선거는 ‘윤심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힘이 ‘조국 사태’ 등 반사이익으로 집권했음에도 당내 ‘탄핵 정국 때 우리가 옳았고 당을 떠난 바른정당계가 틀렸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또다시 ‘개혁보수’보다 ‘수구보수’ 이미지에 갇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수도권을 놓쳐 다음 총선에서도 과반이 안 됐을 때 정부를 어떻게 끌어갈지 우려된다. 더 결집할 지지층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정치적 분열 심화에 대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11월5일)이 끝나면서 국민의힘의 메시지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월30일 회의 머리발언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여당의 한 책임자로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정부·여당은 사고 수습과 사상자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드릴 말씀이 없다’던 태도는 11월2일 ‘질타’로 변했다. 정 위원장은 “네 번이나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의 현장 판단이 왜 잘못됐는지, 기동대 병력 충원 등 충분한 현장 조치가 왜 취해지지 않았는지, 그 원인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중략) 우리는 책임을 어디에도 미루지 않겠다”고 말했다. ‘책임을 미루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질타의 대상은 정부·여당이 아닌 ‘현장의 경찰’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정치적 도구화’ 아닌가

이제 국민의힘은 ‘정쟁화’란 프레임으로 말한다. 국민의힘은 11월10일 야권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요구에 “안타까운 죽음을 정쟁 도구로 삼는 것은 인륜에도 반하는 행태”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애도하고, 책임과 방지책을 묻는 것을 ‘이재명 비리 물타기’ ‘정권퇴진운동’ ‘슬픔의 정치 도구화’ 등 원색적 표현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아직 가족의 빈자리를 실감하지도 못하는 유가족,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 참사 재발 방지책을 논의해야 하는 정치권에 이 프레임은 족쇄가 된다. 20년 가까이 여의도에서 일해온 국민의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 분열이 심해져 새 정부에서 통합적 행보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정권 초기부터 이런 국민의 기대를 실망시켰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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