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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를 찾기 위하여

등록 2020-12-18 16:38 수정 2020-12-19 00:15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사진기자단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는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정직 2개월로 결론 났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징계 청구를 할 때 사실상 해임을 시사하며 한 얘기를 돌아보면 좀 김이 샌다. 어려운 길을 굳이 더욱 어렵게 돌아왔는데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다. 이게 끝도 아니다. 윤석열 총장의 법적 대응이 남았기 때문이다.

추미애 장관 교체는 불가피하다. 대통령에게 심각한 법적·정치적 부담을 안겼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추 장관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지만 속은 쓰릴 것이다. 그럼에도 업적을 치하한 것은 명예로운 퇴장이 아니면 정치인 추미애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대통령이 “법무부와 검찰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고 했으니 이제 공은 윤 총장 쪽으로 넘어갔다. 추 장관의 사의 표명에도 행정소송을 강행하겠다고 하는데, 근거가 분명치 않은 징계에 대한 억울함도 있겠지만 검찰 수장으로서 독립성 침해를 용인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생각이 클 거로 추측한다.

그러나 이렇게 버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실익도 없다. 검찰 독립성 침해는 이제 정치적 평가 대상이다. 개인 권리의 구제를 위한 쟁송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윤 총장이 모든 법적 다툼에서 승리해도 검찰 조직의 혼란은 가중될 뿐이다. 장관급 고위 공직자답게 처신하고 남은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번 일로 정권이 주장하는 ‘민주적 통제’의 명분은 적잖은 상처를 안게 됐다.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 한다.

검찰 조직은 능력주의를 근거로 한 엘리트 체제의 총아다. 이 정권이 법무부 장관을 비검찰 출신으로 한 것과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내건 것은 이런 특성에 대응하기 위해 엽관제(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나 대통령이 정부 모든 공직을 임명하는 방식) 요소를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보통 사람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동부 엘리트 특권에 맞서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주창했다. 엽관제는 이때도 특권계층을 통제하기 위한 주요 무기였는데, 지역 정치가 부패와 나눠먹기의 온상이 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잭슨주의의 전통은 부정부패 일소를 무기로 삼은 혁신주의자들이 주류화하면서 신진 엘리트 계층에 자리를 내줬다.

이 사례에서 얻을 교훈은 ‘민주적 통제’가 ‘자기 파벌’에 좋은 일로만 비쳐서는 명분을 잃는다는 거다. 윤 총장에 대한 정권의 공격은 검찰 개혁이 이 함정으로 끌려가는 빌미가 됐다. 국민이 보기에 윤석열 검찰의 희생자들이란 권력자 또는 초엘리트 계층의 일원일 뿐이어서 개혁의 대의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거다.

대의를 되찾기 위해선 ‘우리 편’이 아니라 ‘약자’를 위한 개혁이라는 걸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당 사람들은 권력에 대드는 검찰을 비난하는 데 열중하면서 약자에 대한 횡포에는 무관심해왔다. 권력을 향한 수사의 모든 순간에 ‘불순한 의도’를 덧씌울 게 아니라 필요한 수사엔 전적으로 협력한다는 의지를 실제로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로 생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 총장을 겨냥할 게 아니라 대통령의 공언대로 권력 주변을 깨끗이 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도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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