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화 이후 경찰도, 군도, 정보기관도 더는 힘을 쓸 수 없었다. ‘법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때 불법적 폭력을 일삼던 과거의 권력기관을 대체한 것이 검찰이었다. 검찰은 법률이란 합법적 수단을 썼고, 사법시험을 통과한 엘리트로 구성돼 있었다. 게다가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한, 강력한 권력이었다.
검찰은 군사독재 정부의 대통령들을 처벌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문민정부의 대통령과 그 가족, 측근들도 그 칼날을 피하기 어려웠다. 대기업 총수들도 검찰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곧 검찰의 과잉 수사와 표적 수사가 횡행했고, 권력의 감시자에서 권력 그 자체로 변질됐다.
처음으로 검찰 개혁 깃발을 든 것은 노무현 정부였다. 그러나 검찰을 집권자의 손아귀에서 풀어주는 개혁(검찰 독립성 보장) 방식은 실패했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이 그 희생물이 됐다. 검찰 개혁 깃발을 다시 든 것은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의 방법으로 검찰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권 초기 검찰을 통한 적폐 청산 수사,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 등 치명적 실수로 인해 검찰 개혁은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검찰 개혁은 되살아날 수 있을까. _편집자주
2020년 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 1년 가까이 계속된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충돌이 벼랑 끝에서 끝없이 이어진다. 12월10일 윤 총장이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서 중징계를 받고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더라도 다시 윤 총장이 행정소송과 가처분 신청 등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또 두 사람뿐 아니라 양쪽 지지 세력까지 함께 충돌했기에 이번 사태의 여파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충돌은 검찰 개혁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를 두고 벌어졌다. 월성 원전 문제에 대한 전격적인 수사나, 지휘·감독자인 추 장관에 대한 전면적인 반발을 보면, 검찰의 권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안에선 2020년 1월 법률 개정에 이은 2차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검찰의 전쟁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이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 네 가지 열쇳말로 풀어본다.
독이 든 술잔을 마시다
모든 논란은 인사 실패에서 비롯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9일 만인 2017년 5월19일 윤석열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차장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에 파격적으로 임명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검찰 개혁을 가로막은 악수였다.
당시 윤석열 차장검사는 직급이 낮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기 어려웠다. 통상 차장검사는 고등검찰청(고검) 검사와 지방검찰청(지검) 차장, 대검찰청(대검) 기획관, 지청장 등 여러 직책을 거쳐야 지검장이 되기 때문이다. 지검장이 된 뒤에도 작은 지검과 큰 지검을 모두 거쳐야 서울중앙지검장 후보가 되는 게 관행이었다. 당시 윤 차장검사는 여주지청장과 대구고검·대전고검 검사를 했을 뿐이고, 지검장 경험은 아예 없었다.
심지어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당시 고검장 보직이던 서울중앙지검장의 직급을 지검장으로 한 단계 낮추기까지 했다. 청와대는 그 이유를 “(고검장이자 다음 총장 후보인) 서울중앙지검장이 총장 임명권자(대통령)의 눈치를 많이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윤석열 차장검사를 발탁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청와대 성의에 보답이라도 하듯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적폐 청산 수사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여줬다. 10년 이상 논란거리였던 기업 ‘다스’의 소유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임을 밝혀냈다. 사법부까지 수사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 거래 혐의(직권남용죄)로 구속·기소했다. 조현오·강신명 등 전 경찰청장을 각각 여론 조작, 민간인 사찰 등의 혐의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정치 관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런 ‘쾌도난마’ 수사로 여론의 지지를 받았고, 문재인 정부도 만족시켰다.
그러나 이는 독이 든 술잔이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적폐 청산 수사는 성과가 있었지만, 정권 초기에 추진했어야 할 검찰 개혁의 기회가 날아갔다. 개혁 대상인 검찰이 개혁 주체가 돼버렸고, 힘이 커져 검찰 개혁이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17일 윤석열 지검장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 인사 역시 기존에 고검장급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던 관행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을 중용하기 위해 두 번씩이나 관행을 무시하고 인사 특혜를 베풀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특수부 검사 윤석열을 적폐 청산 수사를 위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는 쓸 수 있었다. 그러나 검찰 개혁을 해야 하는 검찰총장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를 총장으로 임명한 일은 아주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검찰주의자’ 윤석열이 ‘정권 후반기에 뒤통수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그를 총장으로 선택했다. 2019년 7월25일 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말했다. 그 발언은 부메랑이 됐다. 이철희 지식디자인연구소장(전 민주당 의원)은 “인사 실패였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주의’를 해소하는 일인데 ‘검찰주의자’를 총장으로 임명했으니 검찰 개혁이 잘되기 어려웠다. 당시에도 우려가 컸는데, 몇 사람이 밀어붙였다”고 했다.
검사 직접 수사 범위에서 빠진 건 ‘공안’뿐
윤석열 검찰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수사의 칼날을 휘두르는 이유는 문 정부가 추진한 법·제도적인 검찰 개혁의 실패 때문이라는 해석도 많다. 검찰 개혁 정책에 검사의 수사권 폐지 같은 핵심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검찰의 힘을 빼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법률이 시행된 지 몇 달이 지나도록 국민의힘의 반대에 막혀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6월21일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조국 민정수석이 함께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보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도 크게 줄지 않았다. 합의문은 검사의 수사 범위를 △부패 범죄 △경제금융 범죄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 △방위사업 범죄로 제한했는데, 이는 기존에 검사가 수사하던 중요 범죄를 대부분 넣은 것이었다.
게다가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가 국회와 법무부를 거치면서 확대됐다. 2020년 1월 국회에서 통과된 검찰청법에는 대형참사가 추가됐다. 2020년 8월 고시된 검찰청법 시행령에선 마약 범죄와 사이버테러 범죄가 다시 더해졌다. 기존에 검사가 직접 수사하던 중요 범죄 가운데 빠진 것은 공안 범죄 정도였다.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축소한다는 애초 검찰 개혁은 물거품이 됐다. 검찰 개혁론자인 황운하 민주당 의원(전 대전경찰청장)은 “처음부터 검사의 수사권 폐지를 중심으로 논의했어야 한다. 수사권이 검찰의 핵심 문제인데도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 길로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사의 직접 수사를 축소해 검찰의 권한 남용을 막고, 수사-기소 권한을 분리해 경찰과 검찰이 서로 견제하게 하며, 검찰을 기소와 인권 보호 중심 기관으로 바꾼다는 검찰 개혁의 취지가 무색해진 일이었다. 어설픈 개혁으로 검찰은 수사권뿐 아니라 검사 2천여 명과 직원 8천여 명, 예산 등을 거머쥔 거대한 조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검찰 개혁 벼랑 끝②…문재인, 검찰 통제 고삐를 놓치다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96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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