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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김진숙 지도’가 복직한다면

등록 2020-10-31 02:00 수정 2020-10-31 09:11
한겨레 백소아 기자

한겨레 백소아 기자

국정감사장에서 정치인들이 추미애 윤석열 얘기만 하며 싸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장면도 있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동부 국감에 출석했을 때다.

현장에서 ‘김 지도’란 줄임말로 불리는 김진숙 지도위원은 35년 전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정년이 두 달 남았다는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병모 한진중공업 대표를 앞에 두고 특유의 농담을 섞어 자기만 복직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 물었다. 국회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복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진중공업 쪽을 압박했다. 한국노총 출신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적극적이었다. 21년간 해고자였던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도 말을 보탰다. 여·야·정이 한목소리를 내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결국 복직은 회사가 책임질 문제라는 점에서 정부와 국회의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당의 논리도 매각을 앞둔 한진중공업 처지에서 노사문제라는 ‘폭탄’을 남겨 인수기업에 부담을 줄 필요가 없지 않으냐는 거였다. 아무튼 이렇게라도 복직된다면 다행이다.

동료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을 겪고 장기간의 고공농성과 단식을 감행하며 본인도 병을 얻은 ‘김 지도’지만, 해고자가 국회에 나가 여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대한민국에선 축복이다. 코로나19를 핑계로 비명 한마디 못 지르고 해고당하거나 죽음에 이를 때까지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는 사례는 계속 늘고 있다. 이런 짐작조차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여론의 관심을 받은 또 하나의 노동문제는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이다. 사회적 압력이 커지고 국회의원들이 호통치는 데 이르자 택배회사들은 앞다퉈 과로사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론의 관심이 식으면 이 비용을 회사가 택배노동자들에게 전가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근본적 문제 해결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강화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이 대목에서 정치권의 움직임은 더디다. ‘김 지도’ 문제도 그렇다. 복직은 결국 노동권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거로 이어져야 하는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조차 쉽지 않다. 아직 될지 안 될지 모를 김 지도위원의 복직이 “그래도 김진숙은 복직시켰다”는 핑계가 아닌, 더 이상 노동탄압으로 인한 해고는 없다는 신호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얘기보다 언론의 주목을 끈 것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죽음이다. 언론은 앞다퉈 혁신가로서 이 회장의 면모에 주목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는 1등을 만들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희생하는 체제의 상징이다. 삼성이 인터넷신문을 국회 출입증으로 활용한다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폭로 역시 이걸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삼성에 ‘애니콜 화형식’은 필요 없다. 그런 점에서 이건희 회장의 죽음은 1등의 이익을 위한 희생을 정당화하는 사회의 마감으로 기억돼야 한다. 노동의 권리를 화형당한 애니콜처럼 여기는 시대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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