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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식구에게 엄정하게

등록 2020-07-04 05:30 수정 2020-07-05 01:22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을 두고 서울중앙지검이 공개적으로 검찰총장을 들이받는 모습을 보며 ‘검란’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한상대 검찰총장 때인 2012년 말 신문에 많이 나온 표현이다. 검사들끼리 막장 수준으로 치고받은 사건에 너무 낭만적인 어휘를 쓴 것 아닌가 싶었다.

그때는 검사가 수사 무마 대가로 금품을 받고 피의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가 하면, 재벌 회장에게는 봐주기 구형을 하는 일이 문제가 됐다. 그런데 한상대 총장은 뼈를 깎는 개혁이 아닌, 자기 자신과 조직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중수부장이 총대를 메고 사퇴를 건의하자 감찰을 지시하고 이를 언론에 알렸다. 중수부를 없앤다고도 했다. 이에 반발한 검사들이 “총장 사퇴”를 외치며 총장실로 몰려갔다. 당시 ‘들이받는 쪽’의 입장을 언론에 전달한 게 윤석열 검사였다. 결국 한상대 총장은 그만뒀다.

다 아는 옛날 얘기를 되짚어본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 길을 스스로 선택한 꼴이 된 게 아닌가 싶어서다. 수사든 감찰이든 조사받는 쪽은 누구나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는 ‘검언유착’이 아니라 ‘제2의 김대업 사건’이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관계를 보면 ‘검언유착’ 의혹을 충분히 제기할 만하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면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검언유착에서 ‘검’인 한동훈 검사장(사진 오른쪽)은 윤석열 총장의 측근으로 평가된다. 윤 총장은 과거에도 ‘보스 기질’이 있었다는 평가다. 엘리트 집단 내에서 신망을 얻는 데는 이런 기질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이란 공적 조직의 책임자라면 그것보다 우선해야 할 태도가 있다. 측근일수록 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언젠가 본인이 말했듯 ‘정무감각’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윤 총장은 사실상 이를 거부하고 측근을 감싸는 길을 선택했다.

과거와 달리 언론은 ‘검란’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외압’의 틀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정권에 부담을 주는 수사를 용인했기에 여당이 ‘찍어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거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렇게 보는 국민이 많다면 여당은 이 대목에서 정무감각을 발휘해야 한다. 언론에 대고 “내가 윤석열이면 벌써 그만뒀다”고 하거나 국회에 법무부 장관을 불러 “검사들에게 순치됐느냐”고 따질 일이 아니다.

‘외압’의 틀을 강화하는 것에 ‘피장파장’이란 인식도 있다. 현 집권 세력이 검찰총장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말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기여한 공을 평가한 것이겠으나, 장관 임명 강행에서 보듯 마지막까지 감싸준 것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많다. 문 대통령은 2010년 조국 전 장관이 쓴 책을 보고 친필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총애하는 대상이었다는 뜻이다.

‘5촌 조카’ 조범동씨 1심 재판에서 정경심 교수 코링크PE 실소유주설은 깨졌다. 하지만 당시 판단 기준은 죄가 되느냐와는 다른 것이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사태가 더 악화된 것은 정권이 조국 전 장관 문제를 정치적으로 안이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검찰이든 정권이든, 자기 식구에게 더 엄한 모습을 이제라도 보여줬으면 한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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