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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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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평화적 해결’에 손을 잡다

사드·북한인권 등 한-미 정상회담 ‘성공’ 평가…

문재인 대통령 불안해하던 미국 보수세력 안심
등록 2017-07-11 20:27 수정 2020-05-03 04:28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악수하는 모습. 두 정상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합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악수하는 모습. 두 정상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합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워싱턴에서는 ‘노무현 정부 2.0’이 탄생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상당히 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인들에게 노(No)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밝혔을 때 이 시각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가 인터뷰에서 관련 발언을 직접 한 게 아니라 과거 발간된 책의 내용을 소개한 것이라는 해명이 있었지만 ‘문재인=노무현’이란 선입견을 크게 바꾸지 못했다.

문정인 특보 발언, 오토 웜비어 사망 악재

5월9일 대선 직후 열린 공개 세미나에서 한 한반도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의 한-미 관계 전망에 대한 질문에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이뤄진 일을 설명했다. 한-미 관계의 미래를 묻는데 새 정부의 면면은 분석하지 않고 과거 일만 거론하는 게 답답했다. 그만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의구심, 특히 대북정책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문제와 관련한 불안감이 보수 인사들 사이에 뿌리 깊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한-미 정상회담 직전까지 이 분위기는 크게 수그러들지 않은 듯 보였다. 특히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의 발언이 화제를 모았다. 이에 대해선 전혀 새로운 발상이 아니라 합리적 여론 탐색용 제안이란 시각이 있었지만, 대북 방위 태세를 약화하는 발상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 보수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 자체를 부당한 처사로 치부하는 듯해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필자에게 털어놓았다.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은 ‘제재’보다 ‘관여’에 방점을 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 내 반감을 키웠다. 미 의회에선 웜비어의 고향인 오하이오주와 그의 모교 버지니아주립대학이 있는 버지니아주의 연방 상·하원 의원뿐만 아니라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 등 지도부가 나서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고 대응 입법 조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CBS 인터뷰에서 웜비어의 사망 과정에 북한의 중대한 책임이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의 대북정책에 큰 차이가 없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한 노라 오도널은 문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를 가진 광인’이라 부른 김정은과 왜 대화하려는 거냐”는 ‘돌직구’를 던졌다. 웜비어 사망에 경악한 미국인들의 시각이 묻어난 대목이었다.

비핵화 전제조건은 비현실적
북한은 7월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전 연합뉴스

북한은 7월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전 연합뉴스

상황은 이렇게 흘러갔지만 정상회담 직전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나누는 전제조건으로 ‘비핵화’를 상정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할 경우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겠다는 문 대통령의 견해에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이 6월15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입장은 바뀐 게 없다”고 한 것이 불씨가 됐다. 한국 언론은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려면 북한이 비핵화해야 한다”는 노어트 대변인의 말을 전하며 대북 대화의 전제조건에 한국과 미국의 엄청난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전후 맥락을 꼼꼼히 따져 ‘신참’ 국무부 대변인이 한 말의 진의를 재확인했어야 한다.

문제의 브리핑이 있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국무부 쪽에서 들려온 소리는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진정성 있는 비핵화 관련 조치를 취해야’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였다. 이는 미 국무부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기도문처럼 암송하던 것으로 “미국 입장은 바뀐 게 없다”는 노어트 대변인의 말과도 일치한다. 지난 4월 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만으로는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비핵화가 대화의 전제조건이란 것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이 안보와 경제발전을 이루려면 핵 프로그램을 해체해야 한다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 역시 대화의 전제조건을 설명한 게 아니다. 사실 비핵화가 이뤄진다면 미국이 애써 북한과 대화할 이유는 별로 없다. 나아가 북한이 미국과 대화 재개를 위해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대변인실로부터 “한반도 비핵화 협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북 대화에 열려 있다”, 즉 비핵화는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닌 ‘대화의 의제’라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지만 한국 쪽의 ‘오해’는 사라지지 않았다. 필자가 만난 미국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 의아해하며 국무부 대변인이 살짝 말실수를 한 게 틀림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해프닝과 미국 쪽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한-미 정상회담은 큰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게 미국 조야의 대체적인 평가다. 무엇보다 한국 정치가 격동의 시기를 마감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개인적 친분을 쌓으며 협력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 민감한 현안이던 “사드 배치 결정에 변함이 없고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한국 쪽의 설명을 미국이 이해했고, ‘최대 압박과 관여’를 통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양국이 합의해 한-미 간 대북정책에서 엇박자가 날 것이라는 워싱턴의 우려도 불식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도발과 ‘합법적인’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맞바꿀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혀 보수 인사들을 안심시켰다. 대북 대화 재개의 ‘올바른 조건’에도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하기로 한 만큼 문재인 정부가 ‘햇볕정책’을 무리하게 서둘러 부활시킬 것이라는 미국 조야의 의구심도 한풀 꺾였다.

‘큰 사고 없이 잘 끝났다’는 평가

한국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북한 인권 문제가 거론되고 책임 규명과 인권 개선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특히 웜비어 사망을 계기로 미국 역시 북한 인권 문제의 직접적 당사국이 됐다. 여전히 미국 시민 3명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만큼, 북핵 협상 재개 과정에서 북한 인권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사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북한인권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워싱턴에서 북한 인권은 더 이상 대북정책의 부차적 요소로 치부될 수 없게 됐다. 대표적 협상론자이자 1994년 북-미 기본합의(제네바 합의)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도 대북 협상을 재개할 때 인권을 의제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한국에선 아직까지 미국 조야의 이런 분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 전문가들 상당수가 북한 인권 관련 질문을 받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 정부도 북한 인권 개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장기적 해결 방안을 모색 중임을 강조하면서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선거 캠페인성 발언이 쏟아져나오는 것을 보고 정상회담이 자칫 실패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했다. 정상회담 직전 모두 발언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하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미국 노동자에게 이로운 것을 원한다며 미국 우선주의를 여과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공동 언론 발표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와 철강에서 한국이 불공정무역을 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지적했다. 사실 미국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핵과 한-미 동맹 등 안보 문제가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되고 한-미 FTA 재협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 시점에서 최우선 과제로 삼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미국은 이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준비에 돌입했고, 중국과 독일 등 대규모 무역 적자 상대국을 상대하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미국 통상 압력 걱정은 적당히

정상회담 이틀 전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전화 언론 브리핑에서 자동차와 철강 부문의 무역 불균형이 주요 의제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처지에선 사드와 북핵 문제에서 한국과 상당한 조율이 된 만큼 무역 불균형 해소에 진전이 있었음을 과시하며 이 문제를 정상회담의 주요 성과로 꼽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자동차와 철강 두 부문에만 집중하고 미 의회에 한-미 FTA 재협상 계획을 언제 통보할지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미국의 통상 압력 가능성을 지나치게 앞서나가 우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언론 보도를 보면 공동성명 내용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했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는 공동성명 문구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반면 “북한에 대한 인내는 끝났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동 언론 발표 자리에서의 발언이 긴급 타전됐다. 회담이 끝나고 7시간 만에 공동성명이 발표된 탓도 있었겠지만, 언제나 뉴스를 몰고 다니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미국 언론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점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한국에 통상 압박을 가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미국이 우방국에 공격적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독립기념일 연휴를 앞둔 금요일 오후 백악관 공동 기자회견은 미국 언론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다. 오히려 독립기념일에 맞춰 북한이 강행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미국 언론은 북한이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결국 대화밖에 방법이 없는지 계속 묻고 있다.

김연호 미국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SAIS)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USKI 워싱턴 리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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