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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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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직업정치인의 모호한 정체성

[반대심문] 승부수에 매달리기보다 빈약한 콘텐츠 채우기가 급선무
등록 2017-03-22 22:05 수정 2020-05-03 04:28
‘반대심문’에선 각 대선 주자의 담당 기자가 취약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이번호에선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분석했다. 그의 저서들과 대선을 앞두고 낸 경제공약집, 일부 드러난 정책 공약, 누리집을 통해 공개한 정치·경제·교육·복지 등 정책 비전을 두루 살폈다.
안 지사는 5개월여 탄핵 국면 동안 대선 후보로서 지지도를 15%포인트 이상 끌어올렸다. 야당 후보의 지지율 상승,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등 행운이 따랐다. 궁지에 몰린 여당을 활용한 대선 전략도 주효했다. 단숨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항마로 자리매김했다. 박근혜 탄핵 덕을 단단히 봤다.
안 지사는 5월 치러지는 ‘장미 대선’ 후보들 가운데 유권자의 호감을 가장 많이 얻는 후보로 꼽힌다. 그러나 정책을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스로를 ‘직업정치인’이라고 자랑스러워하지만, 어떤 이들은 안 지사를 ‘정치 기술자’로 폄훼한다. 그는 5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통합과 협치를 앞세운 ‘대연정’ 카드를 던졌다. 이 대목에선 ‘지나치게 우클릭했다’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그가 든 것은 성배일까, 독배일까? _편집자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02년 노무현 캠프에서 일하며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일등 공신으로 꼽혔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대선 과정에서 기업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사진)된 뒤 징역형까지 살았다. 그는 받은 돈 가운데 일부를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02년 노무현 캠프에서 일하며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일등 공신으로 꼽혔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대선 과정에서 기업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사진)된 뒤 징역형까지 살았다. 그는 받은 돈 가운데 일부를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나는 뒤집어놓아도, 세워놓아도, 집에서 놀아도, 밖에 나와도 정치인이다. 인간 안희정과 정치인 안희정을 구분하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은 문신처럼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되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자신을 ‘직업정치인’이라고 부르는 데 서슴없다. 대개 정치인들이 법조계, 학계, 언론계, 재계 쪽 이력을 앞세우며 굳이 ‘전업 정치인’이란 타이틀을 기피하는 것과 견줘도 이례적인 태도다.

안 지사는 스스로 ‘직업정치인’임을 각성한 게 1994년부터라고 말한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을 맡아 노무현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을 도운 게 계기가 됐다. 당시 그가 적은 메모에는 “사회적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주의, 독재권력과 천박한 자본의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합리와 이성이 작동하는 사회로 전환, 분단된 약소국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세 가지 정치적 목표’로 쓰였다. 그는 이때 정치에 인생을 모두 바쳐도 좋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고백했다.

직업정치인의 삶을 산 지 23년 만에 그는 대선 후보 지지율 2위에 올랐다. 최근 몇 달간 독보적 선두를 유지해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안 지사는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공개되는 상위 6위권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두 번의 기회가 왔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탄핵 국면이 본격화하면서 야당 잠룡 가운데 하나인 그의 지지율이 덩달아 4%대로 반등했다. 지난 2월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갑작스런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충청도 표심이 현직 도지사인 안 지사에게 몰리면서 지지율이 단숨에 두 자릿수로 치솟았다. 3월27일 당내 경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 적합도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결승 같은 본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선 후보 지지율 2위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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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돌출적 사건 덕분에 돌연 강력한 대권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부상했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안 지사는 중도보수층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확장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정치적 소명을 ‘문신’처럼 몸에 새겼다는 안희정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대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안 지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해졌다. 특히 ‘직업정치인’으로서 권력을 쟁취하는 방법론과 승부수에 천착한다는 비판은 뼈아픈 대목이다. 그가 정치적 외연 확장을 위해 내놓은 ‘대연정’과 관련한 논쟁이 대표적이다.

안 지사는 지난 2월2일 “새로운 시대 교체를 향해 도전하겠다. 정권 교체,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며 여야 공동정부 구성 방안을 제시했다. 반기문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문 전 대표와 여전히 큰 격차가 나던 상황이었다. 자신의 주요 지지 기반인 충청권 맹주가 사라진 시점에 맞춰 승부수를 던졌다. 한 달 뒤엔 “민주당의 개혁 과제에 동의한다면 연정 대상은 누구라도 좋다. 자유한국당도 좋다”며 한발 더 나아갔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 융단폭격이 쏟아졌다. 대권 경쟁자인 문재인 전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은 “적폐 세력과 손잡고 어떻게 적폐를 제대로 청산하겠느냐” “적폐 세력 말고 야당과 국민의 손을 잡아야 한다”며 역공에 나섰다. 당내에서 “안희정식 대연정은 촛불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란 비판이 나왔고,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조차 “헌법 개정 없는 대연정 제안은 본말이 전도된 정치공학적 접근”이라며 선을 그었다.

“자유한국당도 연정 대상”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보이는 안 지사의 ‘선의’ 발언도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2월19일 “누구라도 ‘선한 의지’로 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 박근혜도)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겠지만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문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뭇매가 쏟아졌다. 정치권뿐 아니라 안 지사의 정치적 기반인 충남 지역 진보 시민단체 회원 74%가 “안 지사의 ‘선한 의지’ 발언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 1월 출마 선언 과정에서 보수층 흡수를 노린 ‘공짜밥’ 발언은 그의 정체성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안 지사는 선언문에서 “세금을 누구에게 더 나눠주는 정치는 답이 아닙니다. 국민은 공짜밥을 원하지 않습니다. 시혜적 정치와 포퓰리즘은 이제 청산돼야 합니다”라고 했다. 복지 문제를 ‘공짜밥’으로 비유한 뒤, 시혜적 정치와 포퓰리즘의 대상으로 폄훼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안 지사의 보수층 끌어안기가 지나치게 ‘우클릭’되면서 정치적 태도마저 모호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은 공짜밥 원하지 않아”
2월19일 부산대에서 강연하는 안희정 충남도지사. 안 지사에 대해서는 ‘호감도 1위 대선 후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정책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20년 이상 직업정치인으로 얻은 경력과 오점이 공존한다. 정치는 그에게 ‘빛과 그림자’ 같은 것이다. 연합뉴스

2월19일 부산대에서 강연하는 안희정 충남도지사. 안 지사에 대해서는 ‘호감도 1위 대선 후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정책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20년 이상 직업정치인으로 얻은 경력과 오점이 공존한다. 정치는 그에게 ‘빛과 그림자’ 같은 것이다. 연합뉴스

‘확장성’ 문제가 ‘지나친 우클릭’이란 비판으로 번지자 안 지사는 정체성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3월17일 현재 안 지사 누리집(ahnhj.com) 첫 화면에는 ‘저 그대로 여기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강연 동영상이 떠 있다. 그는 영상에서 “경선에 임하는 제 정치적인 언사에 대해 ‘중도 우클릭’이라거나 선거 전략이라는 오해를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될 진보 진영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을 토대로 어떤 차기 정부를 구성할지, 헌법을 어떻게 작동시킬지, 어떤 외교통상·안보·국민통합 전략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우리는 토론해야 합니다. 저 그대로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모호한 정체성’ 논란이 빈약한 콘텐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은 안 지사의 또 다른 약점으로 꼽힌다. 정치 패널 구실에 적극적인 정봉주 전 의원은 최근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안 지사를 두고 “거대 담론, 언어적 유희가 있지만, (정책 내부로) 들어가면 정책이 없는 것”을 극복해야 할 최대 과제로 꼽은 적이 있다.

실제로 3월16일 안 지사가 ‘안희정이 제안하는 시대 교체’라는 주제로 13가지 세부 정책을 공개한 과정이 그랬다. 이 자리에서 안 지사는 ‘공약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잦았던 것을 해명하면서 “대한민국 역대 정부가 합의했던 것이 제 정책이고 공약”이라고 말했다. “역대 정부가 이끈 국가 개혁 과제를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안 지사의 색깔을 드러낼 공약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나마 이날 공개한 정책 가운데 안 지사 쪽이 차별화한 게 ‘전 국민 안식제’였다. 안 지사는 “2012년 대선 때 한 후보가 제안한 ‘저녁이 있는 삶’에 모든 국민이 공감했다. 지금 우리는 너무 지쳐 있다. 전 국민이 10년에 1년은 쉬자”는 취지의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10년 일한 노동자에게 1년간 월급을 주며 쉴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정부와 공공부문에서 ‘전 국민 안식제’가 정착되면 이를 민간부문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10대 재벌 기업을 시작으로 상호출자제한그룹군, 금융기관 등에 이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구체적인 계획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공무원과 공공부문 노동자부터 제도의 혜택을 받게 되는데, 재원 마련을 위해 이들의 임금을 2~3년간 동결하겠다는 것이다. 민간 기업으로 확대하려면 거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다, 민간 기업이 대통령 입맛에 맞추기 위해 막대한 재원과 기업 환경을 바꾼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란 지적이 나온다. 일부 정규직만 혜택을 볼 가능성도 크다. 안 지사의 정책단장을 맡은 변재일 의원마저 “(정책의 현실성에 대해) 필요하다면 설명하겠지만 좀 자신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안 지사는 이날 9개 지방 거점 국립대학을 시작으로 모든 지방 국공립대학의 학비를 무상으로 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이에 대해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안 지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최고 수준인 사립대 등록금은 손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 고등교육의 80%를 사립대학이 감당하는 상황에서, 국공립대를 집중 지원하겠다는 것은 대학 교육 관련 정책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등록금 정책의 전부라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누리집에 공개한 정책 비전도 빈약

앞서 안 지사가 누리집에 공개한 정책 비전 내용도 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헌법 개정에 대한 안희정의 생각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안 지사가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개헌이 아니라 국민들이 어떤 나라에 살 것이냐에 대해 합의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는 일반론을 반복하는 수준이다.

경제 쪽에서도 ‘재벌이 공정한 시장경제를 방해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안희정의 재벌정책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를 개혁하겠습니다.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재정비하는 한편, 기업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경우 합당한 증여·상속세를 납부하도록 엄중하고 투명하게 집행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문제가 커졌던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찬성을 의식한 듯 “국민연금 등 공적 기관이 재벌의 경영권 방어에 이용되지 않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겠습니다”라고 언급했는데, 구체적인 수치로 문제점을 제시하거나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안 지사는 2월20일 경제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도 “정부가 주도했던 재벌 중심 구조를 시장질서 안에서 공정하고, 혁신적인 구조로 바꾸겠다. 대기업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순환·교차 출자 해소, 상속·증여세도 엄격하게 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캠프 쪽에서는 경제정책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것을 안 지사가 ‘부정확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며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재벌개혁 방안 불분명

1990년대 중반부터 정치인으로만 살아온 안 지사의 이력은 어떨까? 여기에도 엄격한 평가를 받을 만한 내용이 있다. 안 지사는 6건의 전과가 있다. 4건은 학생운동 시절에 생겼고, 2건은 정치활동을 하면서 생겼다.

특히 안 지사는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 캠프의 자금관리책으로 삼성 등에서 불법 대선자금 47억여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지금도 ‘삼성 장학생’이란 비판을 받는다. 이 사건으로 2003년 12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안 지사를 구속했고,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추징금 4억9천만원, 몰수 1억원형을 선고했다.

더 문제가 되는 건, 불법 정치자금 가운데 일부를 안 지사가 개인적 용도로 유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법적으로 수수한 정치자금 가운데 2억원을 안희정씨가 유용했고, 일부가 아파트 구입 비용으로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안 지사는 지난 2월 이후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와 민주당 대선토론에서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으로) 임시변통한 게 사실이어서 사과를 드렸다” “제 잘못이 맞다. 벌을 받았고, 공천 탈락 등 개인적 불행도 겪었다.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와 충남도지사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정치적 사면과 복권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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