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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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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몰래 당원입니다”

‘당원’ 활동 밝히면 취업과 승진에서 암묵적인 차별… “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정치혐오증’ 사회의 초상
등록 2015-01-31 04:01 수정 2020-05-02 19:27
지난해 12월19일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다양성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10년 넘게 활동하며 현재 국회의원 5명을 둔 정당이 한순간에 ‘대한민국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정당’으로 전락했다.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10만 명의 진보당 당원들에게 찍힐 ‘낙인 효과’를 우려했지만 한 명의 힘은 미미했다. 대한민국 사회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을 향해 ‘종북 세력’이라며 마음껏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시선을 좀더 확장해 주변을 둘러보자. 사회적 낙인은 과연 통합진보당에만 해당하는 얘기일까. 한국 사회에서 ‘당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일일까. 은 ‘정치적 다양성’이 실종된 대한민국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이런 사회가 어떤 문제점을 일으키는지 분석했다. _편집자
정치 혐오가 심한 한국 사회에서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려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행여 있을지 모르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정치 참여에 따르는 비용이 커질수록 정치는 시민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류우종 기자

정치 혐오가 심한 한국 사회에서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려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행여 있을지 모르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정치 참여에 따르는 비용이 커질수록 정치는 시민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류우종 기자

#1. 대학생 시절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당원으로 활동했던 나재형(30·가명·직장인)씨는 정당 경험을 부끄럽게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구직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별다른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력서에 정당 활동 내역을 적은 게 면접 때마다 문제가 됐다. 한 기업의 면접에서는 당 소속을 묻기에 민주당임을 밝혔으나 표정이 굳어진 면접관으로부터 “다른 곳에 가서 좋은 인재 되시라”는 말을 들었다. 그 뒤 비슷한 면접 과정을 몇 번 거친 나씨는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잘못해서 그때 그 시간을 (당에서 활동하며) 허비한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2. 새누리당 당원 박상민(37·가명·직장인)씨도 최근 당 활동을 이유로 껄끄러운 일을 겪었다. 당내 조직에서 직책을 맡게 된 박씨가 이 사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자 이를 본 거래처 직원이 “나는 당신이 왜 그런 당에 가입해서 직책까지 맡아가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당적을 갖는 것에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 굳이 숨기지 않았던 박씨는 사회생활을 하고부터는 태도가 달라졌다. 정치적 주제에 대해 말을 아끼게 된 것이다. 박씨는 “혹시라도 나와 정반대의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이 회사 임원으로 오게 되면 또 모르는 거 아닌가. 공연한 의견 충돌을 빚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가끔 또래 지인들로부터도 “그렇게 안 보이는데 왜 그런 활동을 하냐”는 말을 듣는다.

#3. 과거 민주당에서 선거운동 등 활발한 당원 활동을 했던 고아람(28·가명·직장인)씨는 한 방송사의 입사 시험에 최종 합격한 뒤에도 당원 활동 내용을 적은 이력서를 두 번이나 고쳐야 했다. 인사담당자는 “윗선에 최종 보고를 해야 하는데 서류에 이런 게 적혀 있으면 곤란하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야당 성향인 게 문제가 됐나 싶어 ‘민주당’이라는 말을 ‘정당’이라는 말로 바꾸자 인사담당자로부터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듣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고씨는 정당에서 활동했던 시간 전체를 이력서에서 들어냈다. 그는 “꼭 민주당이어서가 아니라 아예 정당 활동 기록 자체를 기업이나 언론사에서 꺼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씨는 현재 탈당한 상태다.

‘조직 생활 적응 힘들다’는 편견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상징적 사건 이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여러 정당 당원들의 위축감은 뿌리가 깊었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등 반정치적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특정한 당의 당원이 되는 일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당적을 가진 사람은 조직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기 힘들다’는 편견도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런 인식 때문에 앞의 사례에서 보듯 당원임을 밝히는 것이 실질적 불이익을 초래하는 상황까지 만들어진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 편견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평한 기회를 갖게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선입견 때문에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불이익이나 부정적 반응이 누적되면 사람들은 스스로 작아진다. 당적을 가진 사실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게 현명함을 몸으로 깨닫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불이익을 당하기 전에 ‘자기 검열’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욕구를 거세해버린다.

#4. 노동당원인 정수혁(26·가명·대학생)씨는 가방에 달고 다니던 당 배지를 최근에 모두 떼어버렸다. 자신을 신기하게 혹은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서다. 취업 스터디원으로부터 “입사 시험 때 그런 게 다 확인된다더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불편함’이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그는 “이제 곧 취업을 하면 (당적으로 인해) 승진 등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지금 스스로 정치적 성향을 너무 많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5. 이수민(24·가명·대학생)씨는 “지난해 여름까지 ‘그 당’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기웃거렸다”고 말했다. 입당 권유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당시 이미 그 당에 ‘종북’ 낙인이 찍혀 있던 터에 주변 사람들이 안 좋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모임에 나가는 횟수를 점차 줄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 역시 그건 좀 아니었나보다’ 싶다. 이씨가 말하는 ‘그 당’은 통합진보당이다. 그는 당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그 당’에서 발을 뺀 뒤 다른 진보정당에도 관심이 갔지만 입당할 생각은 없다. “제가 동의하든 안 하든 헌재에서 위법한 정당이라고 판결한 거잖아요. 만약 그때 발을 빼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안 좋게 봤겠죠. 취업에 제약도 있었을 테고. 자꾸 이런 식으로 스스로의 선택을 합리화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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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검열이 쌓이면 사람들 사이에는 애초에 정치적 견해를 갖지 않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는 것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인간은 ‘유적(類的) 동물’이다. 독립적이거나 합리적으로 사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나와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정당 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또 실제로 정당 활동이 불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나만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독려, 한국에선 숨기기 바빠

이런 왜곡된 인식의 근원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유권자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 한국 정당들의 행태에 1차적 원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에 대한 불신, 국회에 대한 불신이 낳은 참사다. 여야가 극단의 정치에 빠져 극단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당원이라고 하면 일단 편견을 갖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에 과연 진짜 당원이라는 게 존재할까. 자발성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려는 사람보다는 선거 때마다 기계적으로 ‘동원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한국 정당의 후진적 행태는 ‘정치혐오증’을 낳는다. 정연정 배재대 교수는 “정치가 실용적 가치를 갖는 게 아니라 협잡꾼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것도 왜곡된 정치 의식의 원인이다. 서복경 교수는 “오랜 권위주의를 경험하면서 우리나라에선 순응적 국민형이 바람직한 유권자형으로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한마디라도 더 하는 국민은 국가 발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졌고,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그런 담론을 바꿔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노조 같은 시민의 일상적 결사체조차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정당이라는 정치결사는 그보다 한 단계 더 큰 결의를 필요로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의 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공인경(33·국회의원실 근무)씨는 귀국한 뒤 미국과 한국의 상반된 분위기에 적잖이 놀랐다. 그는 미국에서 정당의 의원실이나 선거캠프에서 봉사활동을 한 대학생들이 추천서를 받아 정치나 사회, 법과 관련된 분야에 취업하는 데 혜택을 누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 하지만 공씨는 한국에서 정부기관 소속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민주당 당원 활동을 했던 것이 알려진 뒤 상사로부터 “찍히면 불이익을 받으니 당 활동을 절대 드러내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독일 의회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공씨는 “독일의 경우 정당에서 열심히 활동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는 등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분위기였는데 한국은 정말 다르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김경미 정치발전소 정책팀장은 “프랑스·네덜란드·독일 정당들은 공통적으로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 가입 등 정치 참여 기회를 자연스럽게 제공해, 정치인과 정치의 역할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정당 일체감’ 형성할 만한 정당 없어

미국·영국·독일 등은 특정 공무원 혹은 특정 정치 활동에 대한 제한 규정은 있지만 정당 가입 자체는 개인의 정치적 기본권이라는 측면에서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 아예 금지돼 있다. 지난해 3월27일 헌법재판소는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현행 정당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과 지역위원에 대해서도 정당 가입 금지 규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학교운영위원회에 정당원이 참여할 수 있는지는 각 지역 교육청별로 다르지만 대부분의 교육청이 정당 참여를 금지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립학교 운영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를 보면,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로 학부모위원 및 지역위원의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과 유럽은 정당 가입률을 비교해봐도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전체 유권자 가운데 정당에 가입된 유권자의 비율은 12.6%(2013년 기준)로 독일(약 3%), 핀란드(약 9.6%), 네덜란드(약 2.5%) 등 다른 국가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하지만 이 수치는 착시현상에 가깝다. 단순히 정당에 가입한 것을 넘어 실제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의 비율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특정 정당에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 수는 전체 유권자의 1.4%(2013년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두 거대 정당인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각각 전체 당원의 7.3%와 15.4%만이 당비를 납부한다. 나머지 당원은 허수일 가능성이 크다. 서복경 교수는 “유럽 국가나 미국 등에서는 당비를 납부하고 실제로 공천권도 행사하는 사람만을 당원이라고 본다. 당원 산정의 기준이 다르다. 단순한 당원 수가 아닌,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의 수를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정당 가입률이 낮다는 것보다 유권자가 ‘정당 일체감’을 형성할 만한 정당이 한국에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굳이 정당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시민들이 ‘나는 무슨 정당, 너는 무슨 정당’ 하고 자신의 사회·경제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정당을 바로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정당정치가 건강하게 뿌리내린 사회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유권자 사이에는 정당이 사회 구성원의 다원적 요구를 반영해 정책화하고 갈등을 줄이는 제도적 통로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지 않다. 그런 정당을 가져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 힘 빼기 ‘왜 이렇게 권력에 관심이 많냐’

한국 사회에 정당 가입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정치혐오증이 계속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권력을 견제할 수단인 ‘정당’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결국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에게 자기 멋대로 사회를 주무를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 박상훈 대표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언급하는 일은 기득권층에게는 이득이 되지 않는다. 기득권층이 민주주의의 힘을 빼놓는 방법이 바로 ‘너는 왜 이렇게 권력에 관심이 많냐’고 상대방을 몰아세우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제한다”고 지적했다. 정당이나 노조 등 결사에 가입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당파적’이라는 시선이 쏟아지는 것이 결국 사회에 다원적 목소리가 표출되는 것을 가로막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다원적 목소리가 표출되지 못하면 사회는 점점 더 양극으로 치닫고 불안이 심화된다. 정연정 교수는 “정당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투표 등 국민의 정치 참여율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정치 무용론도 확산될 것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나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낮아지고 민주적 기구들에 대한 수요도 전반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약육강식의 시장 논리가 사회를 점유하면서 사회적 불안정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진단했다.

일본처럼 한국 사회가 점차 우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 더 이상 정치판에 가지 않고,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할 사람들이 정치권으로 가게 되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리는 것이다. (보수정당의 독재가 고착화된) 일본이 가장 나쁜 경우다. 정치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정치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지 못하면서 변화가 불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인선 인턴기자 insun9782@naver.com·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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