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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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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숟가락 뺏자는 오세훈의 182억원짜리 ‘무한투정’

위법행위 수두룩한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강행…총선·대선 겨냥 ‘무상 시리즈’ 내놓는 한나라당의 진짜 모습은?
등록 2011-07-28 10:09 수정 2020-05-02 19:26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6월16일 서울 지역 초·중학생 전면 무상급식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청구 서명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표본조사만 했을 뿐인데 이 서명지 가운데 약 40%가 허위로 작성된 사실이 드러났다. 오 시장 쪽이 임명한 심의위원들은 ‘시간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전수조사를 거부했다. 한겨레21 이종찬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6월16일 서울 지역 초·중학생 전면 무상급식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청구 서명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표본조사만 했을 뿐인데 이 서명지 가운데 약 40%가 허위로 작성된 사실이 드러났다. 오 시장 쪽이 임명한 심의위원들은 ‘시간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전수조사를 거부했다. 한겨레21 이종찬

‘핵심과제5. 교육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교육복지를 통해 교육비 걱정을 하지 않고,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교육행복국가를 만든다.’
-0~5세 영·유아의 보육 및 교육을 국가가 완전히 책임진다.
-고등학교까지 무상 의무교육을 확대해나간다.
-초·중·고교 학습지원형 방과후학교 무상교육을 지원한다.
-서민·중산층 무상급식을 확대한다.

오세훈만 모르는 ‘바뀌지 않으면 망한다’

진보정당들의 공약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지난해 보편적 복지를 당헌에 추가한 민주당의 공약도 아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체질을 바꾸겠다는 한나라당 자료집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지난 7월20일 “모든 국민이 더불어 행복한 선진복지국가” “서민이 행복한 나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나라당 뉴비전 공청회’를 열었다.

앞에 언급한 내용은 ‘선진복지국가 달성을 위한 10대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다. 당 의사결정기구의 토론과 의결을 거치지 않은 ‘연구 결과물’ 수준이지만 한나라당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두 개의 큰 선거가 있는 권력재편기를 앞두고 ‘바뀌지 않으면 망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친서민을 강조해온 홍준표 대표는 공청회 축사에서 “10년 야당 생활 끝에 어렵게 잡은 정권을 다시 내줄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한나라당의 체질을 서민정당으로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지킬 것은 지키되 낡은 틀은 과감하게 깨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복지정책에 대해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해온 한나라당의 자료집에 등장하는 무상 시리즈(무상 보육교육비, 무상 의무교육, 무상급식)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나라당은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무상급식 논란이 불거지자 ‘부잣집 자녀들에게 공짜 밥을 줘야 하느냐’는 주장을 펼치며 필요한 사람에게만 시혜를 베푸는 식의 선별적 복지를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준비한 ‘뉴비전’ 가운데 무상급식과 관련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이렇다.
-농산어촌 지역은 완전한 무상급식을 제공한다.
-도시지역은 소득수준을 고려하여 소득수준 하위 70%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한다.
-저소득층 학생 자녀는 방과 후 석식, 방학 중 중식까지 무상 지원한다.

사실 논리적 일관성이 있으려면 영·유아 무상 보육·교육비도 소득수준에 따른 차이가 있어야 하는데, 한나라당의 ‘뉴비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한나라당 논리대로라면 부잣집도 영·유아 보육·교육비를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지원받는다. 유독 소득수준이 강조되는 분야는 무상급식 정책이다. 다른 분야가 ‘미래’인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최대 관심사인 ‘아이들 밥 문제’는 ‘현재’이기 때문이다. 예산 규모로 보면 영·유아 무상 보육·교육비가 학생들의 급식비를 훨씬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돈 더 드는 무상보육은 부유층에도 전면 실시

무상급식, 그리고 서울시의 주민투표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당론은 엄밀히 말해 없는 상태다. 홍준표 대표와 황우여 원내대표가 7월20일 “중앙당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은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당내에서 합의가 모아진 상태는 아니다. 홍 대표가 당론화하려는 시도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민생과 복지를 강조했던 유승민 최고위원은 “주민투표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무상급식에 대한 당론이 정해져야 한다. 그래야 (당이) 주민투표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찬성할지 반대할지 결정되는 것 아닌가”라며 당론 결정을 위한 의원총회 소집을 제안했다. 남경필 최고위원도 “무상급식만큼 상징적으로 우리 당과, 또 국민이 다르게 보는 이슈가 없다. 투표 결론이 났을 때 새로운 갈등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치적 타협을 (통한 투표 철회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 참석자는 아니지만 오세훈 시장과 경쟁관계에 있는 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한나라당은 그동안 중요한 보편복지 제도를 추진해온 세력이고 무상급식도 가급적 하자는 입장”이라며 “애들 밥 안 주는 게 보수는 아니지 않느냐”고 에둘러 비판했다.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시 여부는, 한나라당의 당론 채택과 무관하게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서울시 주민투표청구심의회(이하 심의회·의장 권영규 서울시 행정1부시장)의 청구 요건 심의·의결→오세훈 시장의 청구 수리·주민투표 발의’로 8월23~25일 치러질 것으로 점쳐진 주민투표가 복병을 만났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야 5당이 모인 ‘오세훈 심판! 무상급식 실현 및 서울 한강운하 반대 시민행동 준비위원회’가 서울행정법원에 ‘주민투표 청구 수리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민투표청구심의회가 법적·절차적 하자가 있는 주민투표 청구를 일방적 표결을 통해 유효한 것으로 의결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죽은 이도 투표청구…오세훈 버전 백골징포?

서울행정법원이 집행 정지 여부를 가리는 데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실제 주민투표 청구 요건을 달성했는지다. 심의회는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운동본부)가 주민투표를 청구하며 제출한 서명부 81만5천 건 가운데 51만2천 건(62.8%)이 유효해 주민투표청구요건(41만8005명)을 충족한 것으로 심의·의결한 바 있다. 당초 청구 요건의 2배 가까이 서명을 받아 제출한 만큼 무효와 중복을 빼더라도 기준선을 무난히 넘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청구자와 사실상 한통속이라는 비판을 받는 심의회가 확인한 것만 해도 무려 37.2%가 가짜였다. 사망자, 이민자는 물론 무상급식을 주장해온 인사도 포함돼 있었다. 상식선에서 보면 전체 서명의 40% 가깝게 허위로 드러난 만큼 전수조사를 할 만도 한데, 오 시장과 서울시 공무원이 임명한 심의위원들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표본조사로 대체해 일부만 무효 처리했다.

또 다른 쟁점은 주민투표 문안이다. 심의회가 결정한 문안은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1안)와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2011년), 중학교(2012년)에서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2안)다. 여론조사도 작은 표현의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따라서 공정한 투표를 진행하려면 최소한 투표 문안에 대해서는 조율과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심의회는 표결 처리를 시도했다. 민주당 쪽 심의위원인 김광수 시의원은 이를 거부하며 퇴장했다. 지난 2월 처음 제출된 주민투표 청구 대상이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주민투표’였다가 이후 ‘단계적 무상급식과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주민투표’로 바뀐 점을 고려하면, 일관되게 투표 결과를 오 시장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명백한 위법 판단할 법원 결정 주목

선진복지국가와 서민행복을 강조하며 ‘부자정당’ 이미지를 벗어나겠다는 한나라당, 영·유아 보육비와 교육비는 무상으로 지원해도 무상급식은 못하겠다는 한나라당, 온갖 탈법과 편법을 동원해가며 182억원의 예산이 드는 주민투표를 밀어붙이려는 오세훈 시장에게 어정쩡하게 끌려다니는 한나라당 가운데 어느 쪽이 본모습에 가장 가까울까.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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