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 대학생이 가장 지지하는 차기 대선주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과 전국 10개 대학 학생기자단이 대학생 1천 명을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정치이념 조사를 보면, 유시민 전 장관은 전체 973명의 유효 응답자 가운데 209명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805호 표지이야기 ‘보통대학 경쟁학과 불행학번’ 참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위(159명)에 그쳤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61명)와 오세훈 서울시장(60명)이 뒤를 이었다.
은 지난 1년간 유시민 전 장관에게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거절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전국 4개 대학 언론인의 ‘호출’에 유 전 장관이 즉각 달려왔다.
백진 편집장은 유시민 전 장관에게 진보를 물었다. 이승빈 편집국장은 6월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대신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택한 유 전 장관이 ‘바보 노무현’의 길을 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진혁 교육부장의 관심사는 선거 연합이었다. ‘군소 정당’ 국민참여당이 야권 전체의 승리를 위해 협상 결과가 조금 불합리하게 느껴지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었느냐고 물었다. 경기도지사 출마와 함께 “단계적 무상급식 실시, 4대강 사업 비협조로 저지”를 내세운 유 전 장관에게 구예훈 편집장은 좀더 강한 선거 공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시민 전 장관과 4개 대학 언론인의 간담회는 4월20일 오후 회의실에서 열렸다.
백진 대학생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대학생이 가장 지지하는 대선주자로 꼽혔다. ‘유시민이 생각하는 유시민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유시민 나도 그 이유가 진짜 궁금하다. 사방에서 욕먹는데, 젊은이들은 왜 좋아할까. 나에 대한 언론 보도나 다른 정치인의 발언을 보면 좋은 게 거의 없다. 모두 비판이고 욕인데,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백진 이번 대학생 정치이념 조사를 보면 진보와 보수를 혼동하는 ‘이념 착시’ 현상도 두드러졌다. 유 전 장관이 생각하는 진보는 뭔가.
유시민 나는 진보의 개념을 폭넓게 본다. 포괄적으로 보면, 억압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진보다. 물질적 결핍과 불합리한 제도, 낡은 의식 등이 빚어내는 억압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진보다. 현실정치에서는 민주당부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그리고 국민참여당까지 모두 진보로 본다.
이진혁 대학 사회에서 쓰는 진보 개념과 거리가 있다.
유시민 대학에서는 진보신당류의 진보가 통용된다. 특정한 정책과 연관된 것, 이걸 찬성하면 진보, 이걸 반대하면 보수라는 식이다. 진보는 그렇게 폭이 좁은 개념이 아니다. 어떤 고정화된 기준을 갖고 진보와 보수를 가르니까 ‘명품 진보’ ‘짝퉁 진보’라는 말이 생긴다. 그게 다 도그마다.
백진 20대가 보수화됐다는 주장에 동의하나.
유시민 나는 대학 사회가 진보적이었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유신 시절에도 백에 아흔은 그냥 말없이 공부만 했다. 다만 6월 항쟁 때처럼 일시적으로 넓은 공감을 이루는 정치적 목표가 제시되고, 그것이 대중의 욕구로 자리잡을 때 많은 사람이 진보와 보수를 따지지 않고 거리로 나온 경험은 있다. 그렇다고 1970년대 후반 대학가 전체가 진보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의 대학생이 특히 보수적이라고 말할 근거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백진 낮은 투표율 등 20대의 정치적 무관심도 많은 우려를 낳는다. 20대가 정치에 등 돌리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유시민 지금 20대에게 민주주의란 어제 내린 눈과 같다. 내릴 때는 아름답지만 하루 지나면 질척거리고 시커멓게 쌓이고 언다. 성가시다. 우리 때는 그게 없어서 너무 가지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학생들은 당연히 있기 때문에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MB 정부가 들어서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조금 달라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내 책임도 있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 개인적 혹은 집단적 학습에 이은 내면화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지금 20대는 MB 정부 출범을 계기로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보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그래서 별 걱정 안 한다.
이승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 자서전 를 집필했다. 유 전 장관에게 노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유시민 처음에는 ‘최선을 다해서 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당당하게 살려고 한 사람’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 통념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비춰 스스로 당당한 방식을 택한 사람이다.
이승빈 유 전 장관이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뒤 민주당은 “노무현의 정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분열주의적 행태”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의 정신’이 무엇인가.
유시민 내가 생각하는 노무현의 정신은 ‘사리취의’(捨利取義)다. 이익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한다는 뜻이다. 노 전 대통령이 이익을 추구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지만, 이익과 의로움이 충돌할 때 그는 의로움을 택했다. 어렵게 자라서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됐는데, ‘부림 사건’ 변론을 계기로 1980년대 긴 시간을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려고 통일민주당 세력을 끌고 보수 기득권 세력에 투항했을 때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며 혼자 남았다. ‘이로움’을 버리고 ‘의로움’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노무현 정신의 핵심이다.
이승빈 유 전 장관이 ‘노무현의 정신’을 지키려 했다면 ‘바보 노무현’처럼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도 경기도가 아닌 대구에서 출마했어야 하지 않나.
유시민 고민을 했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바보는 아닌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지향했지만 이루지 못한 목표가 있다. 그 목표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방법을 써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그가 좌절하고 쓰러졌던 과정까지 따라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쓰러진 그 시점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이승빈 유 전 장관은 2008년 총선 이후 경북대에서 ‘생활과 경제’ 강연을 통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경북대 학생들은 유 전 장관의 선택에 섭섭함을 갖고 있다.
유시민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떨어지는 것이 확실하다. 지난 총선 때보다 표는 더 얻을 것이다.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대구에서 떨어지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이는 노 전대통령이 간 길을 그대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정치를 한 시대와 지금은 시대 상황과 정치 구조, 유권자 성향 등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해보려는 것이다.
이승빈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가 된다. 이른바 ‘친노’ 후보로서 솔직히 추모 열풍에 기대하는 것은 아닌가.
유시민 이번 지방선거가 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다면, 평가 대상이 돼야 할 현 정권의 과오 속에는 분명 노무현 검찰 수사와 서거가 포함된다. (추모 열풍을) 기대한다기보다 서거 1주기가 선거와 겹쳐 있기 때문에 국민이 그 비극적 사건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본다. 국민의 의사가 선거에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구예훈 6월 경기도지사 선거의 핵심 현안이 무상급식이다. 유 전 장관은 다른 야권 후보와 달리 예산 문제를 들어 ‘단계적’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추진은 단계적으로 하더라도 선거 공약인데 좀더 강해 보이도록 ‘단계적’이라는 수식어는 빼는 게 나을 듯싶다.
유시민 그러다가 당선 첫해에 당장 못하면 ‘전면 실시한다더니 왜 사기치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MB 정권이 협조 안 해줘서 그렇다’는 식으로 핑계 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옹색하게 하기보다 성의를 다해 3개년에 걸쳐 전면 실시하겠다고 했다.
구예훈 유 전 장관은 현실적인 것 같다. 4대강 사업에도 ‘전면 중단’ 대신 ‘비협조로 일관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유시민 한강 본류는 모두 국가 하천이라 대통령에게 권한이 있다. 도지사가 해라, 하지 마라 할 권한이 없다. 다른 후보들이 ‘4대강 사업 전면 중단’을 외치는데, 토론회 하면 어떻게 중단시키겠다는 건지 물어보려 한다. 대신 도지사가 가진 권한으로 저지할 수는 있다. 그 방법이 ‘비협조’다. 공사 현장 과적 단속을 엄격히 한다거나 환경영향평가를 까다롭게 하는 방법이 있다. 과적 여부를 테스트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 기다려달라’고 할 수 있다. ‘4대강 중단시키겠습니다’에 비해 ‘비협조로 저지하겠습니다’ 하니까 좀 옹색하고 밀리는 느낌은 있는데, 이상해도 할 수 없다.
이진혁 야권의 선거연합 협상이 결렬됐다. 연합이 안 되면 야권이 패할 확률이 높다. 작은 정당이 연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분이 10%가 됐든 5%가 됐든 받아들여 연합을 성사시키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하지 않은가.
유시민 그건 ‘최소치를 확보했다’고 말하기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예컨대 경기도 31개 기초단체장 후보 가운데 민주당이 3개를 다른 야당 몫으로 내놨다. 그 가운데 하나는 도로 내놓으라고 한다. 민주당이 내준 지역은 자신의 후보가 없거나 당세가 없는 곳이다. 치킨 중에서 가슴살과 닭다리, 날개는 자기들이 먹고 작은 정당에는 닭 모가지와 갈비, 이런 부위를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이진혁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도 무산됐는데, 단일화 가능성은 이제 없나.
유시민 아니다. 단일화해야 한다. 다만 당 대 당 협상이 결렬됐기 때문에 후보들이 나서야 할 때다. 제일 예민한 사람이 후보들이니까. 나는 민주당 최고위원인 김진표 후보가 이런 안에 합의하자고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후보 대 후보로서 ‘귀하가 나 같으면 유불리를 떠나 이런 안을 받아들이겠나’ 이렇게 묻고 싶다.
이진혁 단일화가 성사되면 당선 가능성은 어떤가.
유시민 야당이 99% 이긴다. 합리적 방식으로 단일화되면 한나라당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선거다.
이진혁 승리의 가능성이 뚜렷하고 정책이 달라 연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단일화) 방안도 받아들여 야권이 일단 승리하는 것이 낫지 않나.
유시민 문제는 그렇게 되면 못 이긴다는 사실이다. 지금 여론조사 지지도가 4 대 2 대 2(김문수·유시민·김진표 순) 정도로 나온다. 여기에 심상정 진보신당 후보가 보탤 시너지 효과까지 계산할 때 이길 수 있다. 만약 명백히 불합리한 경선 규칙 때문에 좌절한 후보를 지지한 사람이라면 기분 좋게 투표장에 갈 수 있을까.
이진혁 야권과 시민사회가 진행해온 선거 연합 협상을 보면 애초 국민에게 약속한 것과 다르다. 정책 연합과 명분이 아니라 이해관계만 충돌하고 있다. 야권 지지층이 아직 선거 연합에 기대해야 하나.
유시민 정치인들이 하기 싫은데도 국민의 강력한 기대와 요구가 있으니 지금까지나마 정치 협상이 이어져왔다. 전체적으로 타결되지는 않았지만 ‘완전 합의’를 이룬 지역도 상당히 있다. 선거가 임박할 때까지 연합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
진행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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